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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특명! 엄마의 도전

30대의 기록 #2 초보운전, 초보 딱지를 떼다

전업엄마와 외동 아이 조합은 가정 육아의 최적의 조건으로 분류되어, 어린이집 입소 순서에서 늘 끝으로 밀리고 밀렸다. 가까웠던 남편의 직장 어린이집은 여자-홀아비-남자 사원 순으로, 설령 홀아비 행세를 한다 해도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사람 많은 서울에 살 적에는, 천 명이 넘는 대기자가 상시 우리 앞에 있어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는 꿈도 꾸지 못했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고층아파트 일 층의 가정 어린이집에서 몇 번 연락이 왔지만 가서 둘러보고는 차마 보내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에는 단지 안, 걸어서 일 분 거리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에 찾아가 보았지만 순서가 되어야 들어올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아무리 전업 엄마라 해도 네 살이 된 아이와 종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웠다. 아이는 활발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구장이였으며, 모두 기관에 가고 난 오전의 놀이터에는 어울릴 친구도 없었다. 다행히 이듬해 봄, 동판교 노른자 땅에 들어선 새 주상복합 아파트의, 입주 일 년만에 문을 여는 어린이집 모집 공고를, 때마침 그 건물에 점심을 먹으러 들른 남편이 우연히 발견했고 우리는 발빠르게 입소 신청을 했다.

주민들의 깐깐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 어린이집은 그동안 아이가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어떤 기관보다 조건이 좋았다. 기관 운영만 몇 십년이라는 베테랑 원장 선생님의 말씀에도 꽤 믿음이 갔다. 처음부터 어린이집 용도로 지어진 건물은 넓고, 환했다. 교실마다 큰 창문도 있어 아이가 궁금할 때 바깥에서 쉽게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았다.


초보 운전인 내가 경부 고속도로 나들목이 있는 8차선의 대로를 운전해서 등원해야 한다는 것, 아파트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건물에 바로 주차를 할 수 없다는 마이너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면야, 그것도 이렇게 훌륭한.

달랑 한 번의 가르침 후 (그마저도 담배 태우는 시간이 절반), 갑자기 다리가 부러지고, 심지어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무리수를 두어 가며 나의 피 같은 돈을 떼어 먹으려던 도로 연수 선생님을 단호한 응징으로 때려 잡은 나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오직 스스로를 의지하며 운전대를 붙들었다.

서판교의 집에서 출발, 낙생 육교를 바라보며 좌회전을 한 뒤 판교 IC 근처 통근 버스들과 캠핑카, 장기 주차된 폐차들이 모여 있는 외딴 공터로 진입해 주차만 잘 하면 되는 코스였다.

아, 물론 다시 기어 나올 때는 그보다는 조금 어려웠다. 4차선 도로의 맨 오른 차선으로 진입한 뒤, 백 미터쯤 남아 있는 사거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왼쪽으로 세 번을 옮겨 좌회전 차선에 들어가야지만 우리 집 방향으로 유턴을 할 수 있었는데, 하원한 아이와 진탕 놀다가 퇴근 시간에 겹치기라도 하면 빈틈 없이 꽉 차 있는 차들 사이로 끼어들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줄줄이 달려오는 차들을 바라보며, 끼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깜빡이만 켜고 있기도, 결국 세 번의 차선 변경에 실패해 울며 겨자먹기로 직진을 하는 날도 허다했다.

공터에 무사히 차를 주차한 뒤에는 아이와 킥보드를 꺼내어 아파트 산책로와 이어진 개천을 따라 십 분을 걸어갔다. 오리들만 가끔 꽥꽥거리던 다소 황량한 개천이었다. 이른 봄에는 무척 추웠다. 매일 삼십 분씩 같은 길을 오가며, 늘 것 같지 않던 운전도 서서히 늘어 갔고 나중에는 복지관의 좁은 지하 주차장도, 이직한 남편을 데리러 가는 경부 고속도로와 강변 북로도 무리 없이 다녔다. 폐인 같은 몰골을 하고 종종 마주쳤던,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식사를 하며 받아다 준 상가 무료 주차권이 꽤 많이 모이자 나중에는 그 공터에 가지 않고도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안락함도 누릴 수 있었다. 정말,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한다.

킥보드 상비군, 훈련중

아침 열 한시부터 오후 세 시. 어린이집 생활에 엄마도, 주원이도 모두가 만족했다. (특히 엄마가.) 하원 후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파트 광장에 있는 네모 모양의 나무 데크에서 한 시간씩 킥보드를 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국가 대표 훈련처럼 꾸준히 달렸다. 엄마도 함께였다. 가끔 어린이집 친구들도 지나다 들러 함께 몇 바퀴 돌고 갔지만, 우리는 가장 처음부터 가장 마지막까지 데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직접 과일을 갈아주는 주스 가게에 가서 주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으로 주스를 한 잔 꼭 마셨고, 건물 윗층에 있는 아빠를 호출해서 얼굴을 보고, 놀이터나 분수를 더 들러,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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