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밤 Oct 12. 2020

가을, 석모도

석모도에 연륙교가 생긴 줄, 이제야 알았다. 자동차로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건너갈 수 있는 섬이 된 것이다. 배를 탈 생각에 신나 있던 아이를 달래며, 갑자기 주인을 잃은 새우깡 두 봉지를 들고 썰렁해진 연안 터미널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묘한 기분이었다.

배를 타는 대신 우리도 다리를 건너간다. 멀지 않은 섬과 섬 사이, 바다 위로 놓인 다리를 통과하는 데는 채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의 풍광도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쩐지 묘한 기분이다.


십 년 전 이곳 석모도로 엠티를 온 적이 있다. 건전하기 짝이 없는 교회 모임에서였다. 우리는 덜덜거리는 강화도행 시외버스를 타고 국도를 달려 반나절 만에 선착장에 내렸다. 그리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작은 펜션에서 밤새 마피아 게임을 하며 놀았다.


그 가을, 섬에서 좋은 기억만을 안고 돌아간 나는 이 년 뒤 부산 현장에서 주말을 맞아 올라온 남편과 토요일 오후, 즉흥적으로 차를 달려 다시 강화를 찾았다. 그 날, 나는 돌아오는 뱃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면서도 선비 같은 남자친구를 꼬드겨 부득부득 섬으로 들어갔다.


2020, 추수를 앞둔 논 풍경

또 가을이었다. 석모도의 황금 들녘은 뜨거운 가을 볕에 반짝거렸고 높은 구두를 신고 보문사에 오른 내 비루한 두 다리는 급격하게 풀려 후들거리던ㅡ기억이 생생하다.

산을 내려와 선착장을 향하는 사이 해는 이미 넘어가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나는 삼 년을 넘게 기다렸음에도 먼저 여행 한 번 가자고 청한 적 없던 남자친구에게 먼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밤이 깊었으니 오늘 하루 묵고 가십시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펜션에 들어가ㅡ펜션 사장님이 강력 추천해 주신 가게에서ㅡ치킨을 시켜 먹으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당시 부산에서 기차나 비행기로 서울을 오가던 남편은 차가 없었고 덕분에 매 주말 우리는 그런 남편을 불쌍히 여기신 아빠의 낡은 sm5를 빌려 타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 우리는 차에서 내리며 그만 도어등을 켜 놓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캄캄하고 인적없는 시골길을 지나던 어느 선한 분의 오지랖 덕분에 아닌 밤중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차 앞유리에 붙어 있던ㅡ물론 울 아부지의ㅡ휴대폰 번호로 배터리가 나갈 지 모르니 불을 끄시는 게 좋겠다는 친절한 연락이 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모님이 시골에 내려가 계신 주말이었고, 그 선한 어른께서는 차마 이곳이 강화군 석모도라는 사실까지는 알리지 않는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

나는 수화기 너머 “미등이 켜져 있다던데?" 라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네, 엄마. 네, 집이지요. 네, 내려가서 얼른 끌게요.” 끝까지 침착하게 대답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간신히 그 위기를 넘겼다.


섬으로 들어가는, 오 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팔 년 전의 그 가을밤을 추억하며 홀로 감상에 젖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토목 기사 출신인 우리 남편은 뒷자리에 타신 장인, 장모님에게 바다에 다리를 놓는 첨단 공법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어둑해진 시간에도 수월하게 차를 달려 섬을 빠져나오면서는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아진 펜션들 사이 우리가 묵었던 그 방은 어디였을까 하고, 창문을 열어 어둔 밤, 쏜살같이 지나는 국도변을 눈으로 쫓기도 했다. 이름도, 위치도 흐릿할 뿐이었지만 가을 밤의 서늘한 공기만은 그때 그대로였다.


2020, 연안 여객 터미널
2020, 외포리 선착장

섬을 나온 우리는 외포리 선착장에 들러 기어이 새우깡의 주인을 찾아 먹이를 던져 주었다. 오랜 세월 육지와 바다를 이어 주던 이곳 선착장은 이제, 언제고 사라질지도 모를, 그래서 벌써 그리운 풍경이다. 내 청춘의 작은 조각이기도 한 그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곯아 떨어졌고 엄마, 아부지와 우리는 집 근처 국숫집에서 가볍게 국수를 한 그릇씩 비운 뒤 1km 거리 각자의 집으로 쿨하게 해산했다. 일찍 잠든 아이 덕분에 맥주를 한 캔 딸 수 있는 여유를 누리며 남편과 나는 오늘 하루 어땠어? 이야기를 나눈다.


웬걸. 연륙교 시공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은 장인, 장모님을 태운 차 안에서 차마 과거를 고백하지는 못하였으나 역시 팔 년 전, 우리의 즉흥 가을 여행을 회상하고 있었노라고. 어두운 국도를 빠져나오며, 나처럼 그 이름 모를 펜션을 찾느라 바빴다고 말해주었다.




가을도 깊어간다. 이제 십 년차 부부로 접어드는 우리에게 먼 계절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는 꽤 소중하다.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이제 우리는 외딴 섬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언제나, 매일의 밤을 함께한다. 강산도 뒤바뀐다는 십 년의 세월. 무려 섬과 섬이 이어지고 너른 바다 가운데 다리가 놓이는 사이 그토록 애틋했던 하룻밤을 지나, 특별할 것도 없는 수많은 밤들을 우리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비록 세월이 흘러 그 낡고 허름한 펜션의 이름은 잊었어도. 언젠가 외포리 선착장에 영영 배가 뜨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그날의 밤은,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기억만은 여전히,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긴 여행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