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Royal Kingdom of Maroc. 2

음식들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

by 진성민

가끔씩, 너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뜨끈한 김치찌개가 떠오르곤 한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어머니가 한참 클 시기의 고등학교 아들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땅에 묻어 둔 장독에서 바로 꺼낸 김장 김치에 돼지고기 대신 멸치 한 줌을 넣어서 오랫 동안 끓여 낸, 지금으로 친다면 오모가리 찌개의 맛이 나는 김치찌개였다.

이제 오래 전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초로의 아들은 아직도 그 김치찌개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고 싶으면 사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흰 눈이 얼룩덜룩 쌓인 마당 한 편에, 쭈그리고 앉아서 땅에 묻은 김장독 뚜겅을 열고, 대형 비닐에 담겨 있는 빠알간 빛깔의 김치 포기를 꺼내시던 어머니의 분홍색 고무장갑과, 모자 대신 머리를 덮으셨던 보자기 같이 생긴 알록달록한 천이 기억이 난다.


겨울이면, 리어카에 담긴 나무궤짝에 동태를 가득 싣고, 동네 골목을 다 돌아다니며 동태가 왔다고 외치는 벙거지 모자의 상인들도 기억이 난다. 그러면 못 들으셨을 것 같은 어머니께 일부러 가서 "오늘 우리 동네에 동태장수가 왔나봐요?" 라고 물어본다. 나를 쳐다보며 씩 웃는 어머니는 결국 두어마리를 사셔서, 꽁꽁 언 동태를 씻고, 토막내어 두부를 잘라 넣고 한 솥을 끓여 주셨었다. 추운 겨울날 저녁, 아이 다섯은 동그란 모양의 밥상 앞에 붙어 앉아 거의 마시듯 뜨끈한 동태국을 퍼먹고는, 이내 노느라 추위에 언 빨간 볼이 더 빨개지면서 스르르 졸린 눈을 하다간, 결국 빨리 나가서 씻으라는 어머니의 손길을 등짝에 느끼곤 했었지...


음식은 그 사람의 기억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게는 김치찌개가 주는 기억 못지않게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먹었던 현지 음식들의 기억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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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의 식당에서 먹었던 타진 (Tajine).

입찰 준비를 위해서는 현지를 반드시 방문해서 현장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운전시간이 짧으면 4~5시간, 길 때는 12시간 이상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운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 동안 조수석에 앉아서 졸지 않게 말도 걸어주고, 업무 논의도 하고, 계속된 대화를 하는 것은 나로서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조수석에서 잔다면, 그 깜깜한 길들을 혼자서 어떻게 운전하겠는가 싶어서, 계속 말을 걸다가, 중간 중간 휴게소에 내려서 밥도 먹고, 재충전을 하고는 했다. 피곤한 몸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음식과 잠 아닐까? 잠은 포기했으니 음식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 음식은, 도기 그릇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원뿔형 뚜껑을 덮은 후 화덕에 넣어서 20~30분 이상 쪄낸 대표적인 모로코 음식이다. 우리나라 갈비찜 맛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얼마 정도인지 모르지만, 당시 기억으로는 우리 돈 1만원 내외였으니 모로코 물가로는 그리 싼 것은 아니었지만, 피곤한 몸으로 두툼한 고기와, 각종 야채를 빵과 함께 뜨끈뜨끈하게 먹으면 그나마 체력이 회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타진은, 그 힘든 일정 중간 중간에 위로가 되어 준 고마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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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는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인 우리와 정 반대로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부 지역으로 가면 지중해와 대서양을 동시에 품고 있고, 끝에 서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멀리 스페인 땅이 보인다. 이러다 보니 해산물 요리도 많다. 작은 도시의 허름한 식당에 가도 이런 해산물 튀김을 파는데, 바로 잡아서 튀겨 주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사진에 보이는 이 한 접시가 1인분이라고 해서, 정말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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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들이 금요일 오후에 먹는 특식, 쿠스쿠스 (Couscous) 이다. 타진과 달리 쌀가루를 같이 넣고 국물이 없게끔 쪄내는 것이 다르다. 일부러 큰 접시에 만들어서 가족이나, 동료와 나눠 먹는데, 사프란을 넣어 노오란 색깔이 예쁘고, 우리가 먹는 쌀밥 느낌이 나서 나름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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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나서 흔히들 마시는 민트차. 민트 잎이나 여린 줄기 자체를 통째로 넣어 우려 마시기 때문에 정말 향이 진하고 코가 뻥 뚫릴 정도로 상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단점은 너무 각설탕을 많이 넣어 우려내기 때문에 내 입맛에는 좀 달게 느껴진다. 왜 이슬람 사람들이 보통 단 것을 좋아하는지는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어진다. 물론 서구 사람들도 쵸코렛이나 아이스크림 등 단 후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 느낌에 유난히 이슬람 사람들이 더 단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Turkish Delight라는 후식도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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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먹는 간식도 기억난다. 말린 대추야자와 담백한 빵, 당일 아침에 짰다는 양젖, 여기에 거의 올리브 오일에 담겨있다시피 한 자른 토마토.


흙투성이 모자를 벗고,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먹던 그 흐뭇한 추억, 내게는 모로코가 주는 여러 기억들 중 하나이다. 김치찌개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듯, 이런 음식들을 보며 그때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모로코 친구들과, 당시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같이 갔던 길들, 같이 했던 일들, 그 뜨겁던 햇볕과 건조한 사막의 바람들 등등. 우리는 또 이렇게 늙어 가지만, 저 음식들을 내어 준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서, 다시 또 누군가의 Comfort Food로 기억될 것이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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