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Sahara)에 서다
일을 하기 위해 갔던 모로코, 너무도 뜨겁고 건조한 기후 덕분에, 몸이 마치 살아있는 미이라가 되어 간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그들처럼, 우리도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고, 햇볕이 강해지는 점심 무렵에는 식사 후 숙소에서 시에스타(Siesta) 처럼 약간씩 낮잠을 잤다. 대신에 오후 늦게부터는 선선한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달 뜰때까지 일을 해서 진도를 맞췄다. 그러다보니 저녁 식사는 보통 9시~10시 되어서 하게 됐고, 정리하고 문서작업등을 하다보면 도로 한국 시간 아침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낮에는 가끔씩 불어오는 모래폭풍을 견뎌야 했는데, 이 때는 눈감고 귀막고, 마스크 낀 채 가만히 서 있는 수 밖에는 없었다.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요란한 소리속에서 지나가는 모래와 가끔씩 섞여 있는 빗방울 몇 개가 뺨을 때려도 그냥 가만히 서서, 그가 빨리 지나가 주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옛날에 어른들이 사우디나 다른 중동 국가에 가서 외화버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희들이 알겠냐 라고 말씀을 하실 때면, 참 낯설고,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막상 비슷한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다 이해가 가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땀이 빨리 빨리 말라서 보송보송한 상태에서 목마르니, 1.6L 짜리 물을 혼자서 하루에 11병이나 마시면서 일을 한 날도 있는데, 소변을 저녁에 숙소에 와서 딱 한 번만 본 적도 기억난다. 어찌나 소변보는데 아프던지. 수분과 염분 보충없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간 탈수증세로 바로 쓰러지기 때문에, 물은 여기서나 거기서나 목숨이고, 생명의 필수 조건이었다. 윗 세대 어르신들의 고생도 역시 겪어봐야 알게 되는구나...
휴일도 없이 일하다가 그들의 명절 기간이 되어 작업자들이 많이 고향으로 떠난 날, 우리도 하루 쉬어보자, 작은 봉고버스같은 차를 빌려서 우리도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다.
저 길이 기억이 난다. 자동차의 풍절음 소리만 요란했던, 그러나 내게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꼈던 길. 누구나 길을 지나지만 잠깐씩 그 길 위에 서서, 조용히 바라보면 길은 그냥 지나는 곳이 아니라, 내 발을 붙들어 주면서 "괜찮다, 조금씩 천천히라도 나아가면 된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이쪽으로 가면 된다" 고 속삭이는, 정말 어머니 같은 대지의 일부였던 것.
가다 보면 만나는 도시들. 이 곳에서 서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능선들의 윤곽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굽이치는 산맥들과, 누워있는 듯 하지만 사람들을 그 속에 품어주는 산줄기와 계곡과 푸른 오아시스. 한참을 바라보았던 저 흙갈색과 붉은 황토색의 아름다운 건물들...
그리고 나서 한참을 또 달려야 사하라를 만날 수 있다. Merzouga라는 도시까지 가니 이미 늦은 오후.
고운 모래가 쉬임없이 바람에 흘러 내리며 잘 들어보면 사각 사각 소리를 낸다. 가끔씩 모래 속에서 작은 도마뱀들이 고운 빛깔의 몸체를 숨기며, 사라락 사라진다. 시각에 따라, 각도에 따라 수시로 황토색, 노랑색, 분홍색으로 색깔을 바꾸는 모래 언덕들은,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사하라 사막이 아니었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많은 숨겨진 아름다움들이 내 눈과 귀로 직접 자신들을 드러냈다. 아주 잠깐씩만.
노을이 지고, 나는 나를 태워줬던 크고 맑은 눈망울의 낙타와 헤어지고, 다시 좁은 차에 구겨진 채 몸을 싣고, 거짓말처럼 밝게 빛나는 별들을 차창 밖으로 올려다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주 아주 오랜전에 사하라가 바다였다가 융기해서 지금의 사막이 되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는 길 곳곳에는 화석들이 널려 있었다. 큰 모래언덕이나 봉우리들은 물결 모양으로 나란히 누워 있었고. 나는 한 가게에서 딸에게 줄 선물을 샀다. 지금은 다 커버린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는) 그 꼬마 소녀에게 목걸이라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싶었다. 지금은 어디 있을까?
어디선가 빨간 망토를 두른 어린 왕자가 내게로 와서, "아저씨 눈으로 보지만 말고, 귀를 기울여 보세요. 온갖 살아있는 것들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들이 아저씨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을요." 이렇게 말하는 듯 했던, 사하라 사막 북부지역의 한 도시, 메르주가.
몇 년이 흘렀지만, 나는 그 길들과,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색깔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모래 언덕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도 구획이 있다면, 그들은 가장 안쪽 내밀한 작은 방에 숨겨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