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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삶 Jun 25. 2020

밥 해먹기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이랬단 말인가.

처음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본격적으로 어떤 삶을 꾸려 나갈지 이야기했을 때,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던 부분은 역시 가사 분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래도 둘다 집을 가꾸는 일에는 영 소질이, 아니 경험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항목들이 있는지는 대략 알지만,

누가 어떤 항목을 더 잘하고 소질이 있고,그나마 즐기면서 할 수 있는지는 둘다 잘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테스트, 이름하여 데모 기간을 거쳐보기로 했다.



일단 밥 해먹기는 요리부와 정리부였다.


요리부는 요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장한다.

메뉴선정, 장보기, 온갖 재료 손질, 요리까지가 요리부의 할 일이다.


정리부는 요리부가 만들어낸 요리를 맛있게 먹고난 후

식탁정리,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및 배수구, 싱크대 정리를 포함해 요리와 관련된 잡스러운 정리도 한다.


이렇게 요리부와 정리부로 나눠 데모기간 내내 일주일정도 해보고 일주일 끝나면 역할을 교환해보고 더 맞는 작업을 원하는 사람이 하기로 했다.



이게 우리의 처음 계획이었다.


모든 일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듯, 생각보다 계획대로 실천되지는 않았다.


처음 데모기간 자체 역시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나눠지긴 했다.

반드시 일주일 간격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메뉴를 제안한 사람이 그날 필요한 재료를 사와서 다듬고 요리를 하면,

요리의 보조자는 그때그때 나온 설거지와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했다.

같이 식탁을 차리고 식사를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요리를 한 사람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며 정리하고 후식을 준비했고,

정리하는 사람은 설거지 등 식 후 정리를 다 했다.


기본적으로 식사를 준비할 때건 치울때 건 둘다 서로를 보조하고 함께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힘을 모았다.

효율성은 약간 떨어지겠지만, 마음은 가볍다.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우리의 밥 해먹기 과정은 어느 정도 과정을 잡아가고 있다.

물론 누군가가 퇴근을 늦게하기도, 누군가가 지쳐서 쉬고 있기도 하기에 꼭 맞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서로 맞춰가면서 도와가면서 요리부와 정리부의 본분을 다 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둘다 잘하지만 정리를 좀더 즐기고, 나의 배우자는 요리를 더 즐긴다.




밥 해먹는 과정을 몇 차례 겪다 보니, 그간 몇 분만에 먹어 치운 식사시간이 준비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어이없다던 엄마의 말씀이 많이 생각났다.

차리고 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 합치면 1시간도 넘을 것 같은데, 앉아서 먹는 시간은 20분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맛있는 20분의 시간이 끝나면 피곤함은 덤으로 한가득 딸려오기까지 한다.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일들이. 그리고 먹고나서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밥 해먹기 노동을 하면서 감사한 지난 몇십 년이 있었음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몇십 년간의 오랜 경험은 그 분들을 능력자로 만들었다. 어쩜 그리 휘리릭 뚝딱! 음식이 나오고, 정리가 되는지.  

옆에서 참새마냥 받아먹을 땐 몰랐는데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굉장하고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경험치 좀 많이 쌓아서 다시 보답해드려야겠다.

휘리릭 맛있는 솜씨를 발휘하는 요리부와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을 만드는 정리부로 양가를 모셔봐야지.

언젠간! 커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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