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인생 첫 집을 매매했다.
코비드 19의 영향으로 매수자에게 매우 불리한 부동산 시장이었다. 매물이 거의 없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사람들이 웃돈을 몇 천만 원씩 얹어 집을 샀다. 덩달아 금리 인상으로 2%대였던 주택융자이율이 어느새 4-5%대까지 올라가 있었다. 타임스 데일리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집을 산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에피소드를 내놓았다.
우리는 미국 조지아주에 온 지 6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집을 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계약이 1년이어서, 계약이 끝나면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가자는 계획이었다. 렌트비도 덩달아 마구 올라가고 있어, 한 달 아파트 렌트비나 집 대출금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렌트비로 돈을 날리는 것보다, 그래도 자산이 될 우리의 집을 갖는 것이 더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금리는 오르는데 집값은 떨어지지 않아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질로우나 리얼터닷컴 같은 유명한 부동산 웹사이트들을 매일 검색해 보았다. 집 매물을 둘러보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요소는:
1. 예산
- 최소 20% 다운 페이먼트를 할 것. 그래야 PMI(융자보험)을 들지 않아도 된다.
2. 위치
- 학군이 좋을 것. (최소한 초등학교의 평가라도 좋아야 한다.)
- 남편의 통근 시간이 30분 내외일 것.
3. 싱글하우스
이렇게 세 가지였다.
한동안의 검색을 바탕으로 이사 지역 후보를 결정하고, 검색 필터에 예산을 넣으면 매물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운이 좋아 한두 개 매물을 찾아 세부사항을 들여다보면, 집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넷 검색으로 허탕을 치기를 몇 개월. 아파트 계약 만기가 4개월 안팎으로 남았을 때, 우리는 공인중개사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첫 만남에서 공인중개사는 지금 시장이 얼마나 매수자에게 불리한 시장인지를 먼저 설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집의 조건들과 희망 지역들을 알렸다. 그러고 나서 예산을 말하니 공인중개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지금 예산으로는 원하시는 동네에 집을 구하기는 힘들고요. 게다가 리세일 집들은 바이어들이 웃돈을 주면서 집을 사는 상황이라, 그걸 감안해서 집을 찾아보셔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저렴한 집을 골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 이럴 때는 차라리 리세일 집들보다 새로 짓는 집들을 매매하시는 게 더 쉬울 지도 몰라요. 아니면 타운하우스를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서 공인중개사는 지금은 학군이 그리 좋지 않지만,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어 학군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짚어주었다. 그곳에 한창 집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다고. 대신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아 일단을 대기를 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틈틈이 리세일 집들을 찾아보자고.
친절하고 꼼꼼하게 우리의 상황을 짚어주며 여러 대안을 제시해 주는 공인중개사에게 무척 감사했지만, 동시에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내가 원하던 조건들을 모두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거듭 생각했다.
그래도 리세일 집을 사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이었다. 누군가는 새 집이 훨씬 좋지 않겠냐고 물어보겠지만, 나는 서로 따닥따닥 붙어 지어진 새 집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 오래된 집이더라도, 우리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 넓어 아무 때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고, 앞마당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집을 갖고 싶었다. 나무가 많고 새소리가 나고 정원이 예쁜 단층집이 내 꿈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어느 정도 체념을 하며, 공인중개사가 보내주는 리스팅을 확인했다. 그중 한 집이 눈에 띄었다. 1999년도에 지어진 허름하고 작은 단층집이었다. 다운 페이먼트를 15%로 줄인다면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돈을 들여 살만한 집인가 싶었지만, 지금 시장에서는 나름 저렴한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게 될 초등학교의 평이 좋았다. 학군이 좋은 도시로 이사 갈 수는 없지만, 좋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5-10년은 여기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투어를 잡을 때 공인중개사는 비슷한 예산의 타운하우스 투어를 함께 잡아주었다. 직접 보고 비교해 보라는 배려였다.
투어를 가는 동네는 처음 가는 도시라 길이 낯설었다. 고속도로 출구로 나오니 그때 살고 있던 번잡한 한인타운과는 완전히 다른 미국 교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투어 할 집은 고속도로 출구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고즈넉한 동네였다. 큰 도로변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해 차 소리가 시끄럽지 않았다. 동그란 컬디색에 네 개의 집이 거리를 두고 지어져 있었다. 주변 집들보다 훨씬 허름하고 작았지만, 앞마당이 넓었다.
대만인 셀러가 우리를 맞이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마룻바닥 거실이 마음에 들었다. 작은 방 두 개가 마주 보며 거실 왼편에 위치했고, 오른쪽에는 생각보다 큰 마스터 베드룸이 있었다. 모든 것이 낡았다. 천장의 전등 커버와 실링팬들도,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도, 못해도 20년은 되어 보였다. 벽의 페인트 색이 어두워서인지 집이 전반적으로 어두웠고, (심지어 마스터 베드룸에 딸린 화장실 벽 색은 보라색이었다!) 집 크기에 비해 작고 좁은 부엌의 타일이며 캐비닛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촌스러웠다.) 바닥 부분이 다 썩고 기괴한 타일을 걸어둔 울타리가 감싸고 있는 작은 뒷마당의 반은 네모나고 더러운 덱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꽤 우거진 작은 숲이 있어 실제 우리 마당은 넓었고, 숲이 주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새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두 번째 투어로 둘러본 타운하우스는 첫 집을 더 근사한 옵션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3살짜리 첫째와 갓 2개월 남짓 된 둘째 아이와 살기에는 거실이 넓고 마당도 넓은 단층집만 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처음 투어한 집에 바로 오퍼를 넣었다. 집 인스펙션을 하지 않고, 현재 상태 그대로 (토를 달지 않고) 제시된 가격으로 사겠다는 조건이었다.
- 집의 나이에 비해 집 상태가 좋고요. 일단 집의 구조가 좋아서 괜찮아요. 다만 이미 집의 가치보다 비싸게 제시된 것 같으니 웃돈을 주면서까지 오퍼를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오퍼를 넣어도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충분히 거절당할 수 있지만요.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웃돈을 더 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었다.)
이렇게 첫 집에 덜컥 오퍼를 넣어도 되나, 얼떨떨했다. 최악의 부동산 시장에서 조급한 마음에 떠밀려 섣부르게 판단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 그래도 우리, 처음으로 집을 사겠다며 오퍼도 넣었네. 어른된 것 같다.
남편도 설레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날밤 우리는 첫 집의 첫인상과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감, 그리고 그 집에서 뛰노는 아이들에 대한 각자의 상상들을 이야기하며 늦은 시간까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오후, 공인중개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 축하합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밝고 청량하게 울렸다. 오퍼가 받아들여졌다. 우리에게 첫 집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