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요가복을 미리 입는 것은 정말 좋은 습관이다. 집에 돌아오면 하기 싫어도 매트를 펴게 되니까. 아침 요가는 이렇게 습관으로 만들어야지.
계획대로 앨리스 먼로의 Hateship, Friendship, Courtship, Loveship, Marriage를 다 읽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서평을 쓰지는 못했다. 먼로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계속 생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엌 선반 정리를 했다.
점심을 먹고 싶지도 않아서 몽쉘 두 개로 때우고,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왜 난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고 나면 그다음 날은 이렇게 쳐지고 마는 걸까. 생각하다 문득, 나를 계속 짓누르던 거대한 질문에 마주했다.
나는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은가.
올해만큼은 매사를 제쳐두고 (육아를 제외하고) 소설만 쓰자고, 드디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고작 몇 시간을 끄적거리고, 이전 습작만 의미 없이 계속 고쳐댔다. 쓰지 못한다는 건, 정말 내게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건, 그저 내가 문학을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인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이 욕구는 가짜가 아닐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독자였지, 작가가 아니었다. 작가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꿈은 나의 서재에서 끝없이 책을 읽는 것, 아니면 바닷가에서 끝없이 책을 읽는 것, 정도이다.
그래도 문학을 하며 살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비평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사실 내 자존감은 대학원을 다닐 때 가장 높고 가장 낮았다. 비평을 할 때 가장 만족스러웠다. 지금도 서평을 끄적이고 있지만 독자를 위한 것도 아닌,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담은 독서 노트 정도인데.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친구랑 북캐스트나 해야겠다.
생각이 떠올랐고 갑자기 막 신났다. 가볍게,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우리끼리 책 수다나 떨자. 한국은 새벽인 걸 알면서도 흥분해서 카톡을 보냈는데 흔쾌히 그러자는 답장이 왔다. 안 자고 뭐해,라는 물음에 모르겠어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에게 통화를 제안했다. 긴 대화 끝에 나는,
일단 살자. 꿈이니 삶의 의미니 생각하지 말고 일단 살자,고 말했다.
먹고 자고 나랑 책 수다나 떨자고.
내일부터 당장 매일 수다를 떨어야겠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삶도 이렇게 가벼운 마당에 소설 하나 쓰는 거에 뭘 이렇게 무게를 싣나. 뭐든 쓰고 싶은 걸 쓰면 되지.
아이들이 하원하고 저녁을 차린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