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 시민의 비행

2025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by 클레어

시부모님이 독일에 발령이 났다. 아버님의 70번째 생신이 있는 올해, 여름방학의 반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기로 했다. 연초부터 시가족들과 날짜를 맞추고 티켓을 구입해 두었다. 대륙 간 이동이니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아 제일 저렴한 베이식 이코노미로.




하루 전, 델타 앱에서 체크인 알람이 떴다. 평소처럼 체크인을 마치고 부치는 짐 비용까지 결제한 후 좌석을 확인하니 세 좌석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 45F, 46D, 47D. 완성하지 못한 북두칠성 같은 좌석 배치에 망연했다. 남편은 내일 공항에 가서 승무원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면 좌석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달랬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장거리 비행을 하는데, 당연히 바꿔주겠지. 그래도 불안해서 델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지만 대기시간이 1시간이 넘어 포기했다. 그래, 당연히 바꿔주겠지. 내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거겠지.


출국일, 남편은 오전 근무를 하러 출근했고, 나는 밤에 두 시간을 생떼를 부리며 난리를 친 둘째 덕분에 몽롱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첫째가 3일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해 밤샘 간호로 이미 지쳐있을 대로 지쳐있었는데, 전날 밤이 완전히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미리 짐을 조금씩 싸둔 덕분에 아침에는 할 일이 많지 않아, 집안 정리를 말끔히 해두었다. 공항에 우리를 데려다주고 혼자 집에 돌아온 남편이 쌓여있는 집안일에 기분이 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독일이 나라인지 프랑크푸르트가 나라인지도 잘 모르는 두 아이들이 한껏 들떠 "독일 독일" 노래를 불렀다.

"엄마, 빨리 독일 가고 싶어요!"

둘째가 여러 번 나를 재촉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다 함께 짐을 실어 중국집으로 향했다. 오후 6시 비행은 시간이 참 좋았다. 한인타운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간식을 조금 구입해 공항으로 향했다. 길도 안 막히고 주차장에 자리도 충분하고, 오랜만에 여유 있게 술술 풀리는 출국길이었다.




출국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델타 항공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델타는 애틀랜타를 허브로 두고 있어 언제나 붐비기에 크게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승무원과 체크인을 하는 줄, 셀프로 체크인을 하는 키오스크 줄, 키오스크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셀프로 부치는 줄이 뒤엉켜 있어 혼란스러웠다. 직원에게 사정을 간단하게 얘기했더니 키오스크로 가방을 먼저 부치고 게이트에서 좌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상하게 느껴져서 다른 직원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 직원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그래도 승무원과 이야기하려 줄을 섰는데, 알고 보니 가방을 부치는 줄이었다. 시간이 꽤 지체되기도 했고 기다림에 지치기도 해서 그냥 짐을 부치기로 했다. 한참 줄을 섰는데 그 승무원도 게이트에서 좌석을 바꾸라고 하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았다.


게이트로 들어서는 길, 지그재그 줄에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 남편은 아이들과 끝없이 인사를 했다.

"아빠도 같이 가면 안 돼?"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묻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조금 상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빠는 나중에 와서 일주일간 놀다 갈 거야."

시간 개념이 아직 잡히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말을 던지고 나는 짐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렵사리 짐 검사까지 마치고 마음이 급한 나는 커피도 사지 않고 게이트로 직행했다. 게이트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불안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물을 사러 가는 길에 델타 서비스 창구가 있어 들러 상황 이야기를 했더니, 게이트에서 바꿔야 한다는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보딩 한 시간 반 전쯤 직원이 오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정보로 가장된 위로를 받았다. 빨리 물병을 몇 개 구입해 돌아오니 정말 직원 한 명이 시스템 셋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앉히고 물을 먹이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직원은 나의 사정을 듣고 어린아이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어설프게 종이 한 장을 꺼내 예약 번호를 적다가 찍찍 긋고 좌석 번호 하나만을 물었다. 자기는 정직원이 아니어서 좌석 배정은 못 한다고, 보딩 타임까지 기다렸다가 정직원에게 다시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보딩 시간에 정직원에게 다가가 다시 문의해 보았지만, 그의 대답이 더 절망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랑 같이 앉으려면 베이식 이코노미를 구입하면 안 돼요."

"항상 이 표를 구입했는데 그동안 문제가 없었는데요?"

말하면서 문득 내 말을 의심했다. 생각해 보니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나마 조금 더 편한 자리들을 추가 비용을 더 내고 구입할 수 있는 옵션이 생기더니, 어느새 메인 캐빈과 베이식 이코노미로 나뉘지 않았던가. (나는 이 둘을 환불 가능 여부로 구분했다.) 예전에는 장거리 국제 비행에서 두 개의 큰 이민 가방을 무료로 부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첫 번째 짐은 $75, 두 번째 짐은 $100의 비용을 내야 한다. 다른 등급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코노미 좌석 안에 조금씩 단계가 생겨온 것이다. 이렇게 3등석에서 4등석, 5등석이 태어났다. 당연히 누리던 혜택들에 하나씩 가격표가 붙는 와중에 나는 그저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사 왔던 것 같다. 나는 어느새 5등 시민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져요. 베이식 이코노미는 복도석이나 창문석은 아예 주지 않으니까,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가 없어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오니까요."

컴퓨터 화면을 보며 "다 그룹이네," 그는 중얼거렸다.

"이제 옆좌석의 승객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의아했다. 언제부터 가족들과 함께 비행하는 권리에까지 가격표가 붙게 된 걸까? 비용이 얼마이든지 간에 추가로 돈을 내지 않으면 내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극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항공 사업은 언제나 적자가 나고, 국가의 보조금이 없으면 운영 자체가 어렵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누리던 것들에 가격표가 붙으면서,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씁쓸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돌봄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비용이 청구되는 것. 돌봄의 영역이 한없이 개인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동안 나는 도박을 해온 셈이었다. 점점 확률이 낮아지고 있는 줄 모르고 좌석 배치라는 슬롯머신을 딸깍 딸깍. 항상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가 나왔으니까. 오늘 나는 처음으로 노란 바나나! 빨간 바나나! 사과! (어? 언제 빨간 바나나가 생겼지?)의 결과를 받고는 판돈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의를 하느라 보딩이 늦어져서 우리는 거의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미 만석인 3등석에서, 나는 5등 시민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차례로 아이들을 먼저 앉혔다. 내 대각선 앞에는 첫째 아이, 내 뒤에는 둘째 아이. 장거리 비행을 대비해 양껏 챙겨 온 장난감과 색연필, 스티커 등은 꺼낼 생각도 못 하고 일단 아이패드와 헤드폰만을 꺼냈다. 가방을 직접 앞 좌석 아래에 넣어줄 수가 없어서 첫째 아이에게는 직접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내 큰 가방과 아이의 작은 가방을 일단 내 좌석 위에 올려놓았다. 5열쯤 앞의 빈자리를 겨우 찾아 캐리온 여행 가방을 넣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벨트를 매어 주려 했는데 그러려면 이미 앉아 있는 옆 승객들 위로 몸을 굽혀야 했다. 당황해서 아이들에게 말로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하고 있는데, 당연히 잘 못하고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본 옆좌석의 승객들이 도와주었다. "Thank you." "Danke schön."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비행 내내 이어질 "I am so sorry"와 "Thank you so much."의 시작이었다.


좌석에 앉았다. 일단 나의 큰 가방과 둘째 아이의 작은 가방을 앞 좌석 밑에 쑤셔 넣었는데 들어가지 않아서 겨우 발을 내려놓을 공간이 남았다. 베개와 이불 3팩이 무릎 위에 쌓였다. 아이들에게 권했는데 둘 다 싫다고 해서 그것도 좌석 아래에 쑤셔 놓고 그 위에 발을 얹었다. 좌석에 무릎을 꿇고 올라와 아이들의 비행을 최대한 세팅했다. 그 와중에 첫째와 나의 좌석 스크린이 먹통이었다. 첫째에게 아이패드를 건네고, 둘째는 좌석 스크린을 켜주었다. 아이가 볼 게 없어서 "블루이 봐야 해! 그거밖에 없어!"를 외치고 힘겹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미 비행기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우리 가족을 옆 승객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아이들 밥을 준비해 주고, 벨트를 풀어주고, 음료를 트레이에 올려주는 등. 수치심이 몰려왔다. 내 왼쪽 옆의 승객은 똥 밟았다는 듯이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돈이 없어서 아이들과 떨어져 앉았다고 생각하겠지? 가장 저렴한 표를 구입했으니 정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더욱 부끄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연히 추가 비용을 냈을 거야! 우리 그렇게 못 사는 사람들 아닌데!' 마음이 시끄러웠다. 가난하다는 것은 민폐를 끼친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5등 시민으로 밀려난 나는 무력감과 수치심에 떨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참아가며, 음료와 식사를 받을 때마다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좁은 좌석의 틈 사이로 아이들에게 물건을 건네며, 한숨도 자지 못하고 9시간의 밤비행을 했다. 엄마가 옆에 없어 불안한 아이들도 한두 시간을 겨우 잤다. 떨어진 줄 알았던 첫째의 열이 다시 올라 약을 먹이고, 요의를 참아가며 긴 시간을 버텼다.




드디어 착륙이다. 벨트를 매고 마음을 풀으려는데 첫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안돼, 지금은 착륙 중이어서. 조금만 참아 봐."

"설사가 나올 거 같은데."

아이의 말에 어쩔 줄을 몰랐다.

"당장 나올 거 같아? 비행기가 땅에 닿을 때까지만 참아볼 수 없어?"

그때 갑자기 뒤에서 둘째 아이가 울기 시작하고, 아이의 옆 승객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가 토를 한 것이다.

급하게 벨트를 풀고 옆 승객에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탐탁지 않아 하며 눈빛으로 욕을 하는 것 같은 그의 얼굴을 보니 나도 울화가 치밀었다. 서운하고 서러웠다. 물티슈로 급하게 토를 닦아내고, 첫째 아이를 불러내어 셋이 화장실을 갔다. 둘째를 핑계로 첫째를 화장실에 데려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어 황당했다.


급한 일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좌석에 돌아오니, 둘째의 옆 승객이 내 자리에 옮겨 앉아있었다. 그가 내 목숨을 구해준 것 같이 고마웠다. 셋이 두 좌석에 앉으니 비행기는 속도를 거의 멈추었다. 벨트 사인이 꺼지고, 대부분의 승객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며,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세 좌석의 짐을 챙기고 캐리온 여행 가방까지 챙겨 나가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손이 떨려왔다.




입국 심사의 긴 줄에 들어서니 한 승객이 어린아이들을 동반하면 크루 줄에 가서 서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덕분에 빨리 입국 심사를 마쳤다. 드디어 독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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