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첫째 아이가 아빠에게 혼이 났다. 학교에서 상으로 받아온 팔찌를 억지로 액세서리 함에 넣으면서, “I am not even sad.”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빠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너는 상관없다,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하며 호되게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한참 있다 아이는,
“그냥 슬프지 않다고 말한 건데.”라고 말했다. 아빠는 그 말마저 비꼬는 것으로 들렸는지, 계속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한 거냐며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아이가 한 말을 남편이 너무 곧이곧대로 들은 것 같았다. 아이가 even이라는 말의 뉘앙스를 알기는 할까?
한바탕 혼을 낸 후에 기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아빠는 부엌으로 갔다. 풀이 죽은 아이가 터덜터덜 멋쩍어하며 내게로 왔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린아, 아빠에게 혼나서 속상하지?”
아이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 even이 무슨 뜻인지 알아?”
고개를 젓는다.
“even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빠가 아린이 말을 오해한 것 같아. 아린이는 속상하지 않아, 나 괜찮아, 하고 말하고 싶었던 거지? 근데 아빠에게는, 아빠가 뭐라 하든 난 모르겠다, 상관없다, 이렇게 들린 거야. 아린이 말이 그렇게 들릴 수 있어.”
아이는 even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설명하기가 퍽 어려웠다. 횡설수설하다 결국은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린이가 무슨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이 오해할 수 있어. 그럴 때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하고 말하면 돼.”
그때 아이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세상 선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나 슬픈데 괜찮아, 하는 것 같은, 5살의 어린 나의 딸이 지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표정.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린이가 많이 속상하구나. 그럼 그렇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속상해요, 해도 돼.”
아이는 울먹거리기는 했지만 끝내 울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툭하면 울던 아이였다. 잘못했다고 다그치는 게 아닌대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입을 삐죽거리며 곧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의 실수가 너무 분해서, 자기가 한 방식이 감히 틀렸다고 말하다니 억울해서, 아니면 정말 그냥 속상해서. 어떤 이유가 됐든 아이는 일단 울었다. 모든 감정에 일단 눈물부터 흘리고 보는게 너무 나 같아서, 아이가 안 우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억지웃음이라니. 이건 더 마음이 아프잖아.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린이가 속상하대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래요. 안아주세요.”
아이는 아빠에게 안기지 않으려고 삐죽삐죽 뻗댔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아빠에 대한 속상함이 아이의 뻣뻣한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랬어? 아빠가 오해했네. 미안해.”
다정하게 사과하는 아빠의 말에 그제야 슬며시 몸의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아빠를 안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안겨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이는 All About Feelings라는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 했다. 어려운 마음이, 아이가 이 책을 고르게 한 걸까? All About Feelings는 아이들의 감정 교육 책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감정이란 게 있다고, 모든 감정들이 다 소중한 것이라고 차분히 짚어주는 책이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가 자기감정을 잘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냥 억지 미소를 지음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감정의 다양한 결을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 있기를. 내가 왜 그런 감정을 겪는지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제나 자기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기를.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는 누군가에게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 지를 말하는 것이 항상 좋은 선택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Talk to someone about how you feel.
나는 오래도록 그 누군가가 나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내가 원인이라면? 내가 아이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한다면? 그럼 아이는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럴 때조차도 “엄마 때문에 내가 힘들어. 엄마 때문에 내가 속상해.”라고 아이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기 방어에 빠져서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여주지 못하고 변명만 늘어놓는 엄마가 아니길. 그래서 아이가 언제나, 심지어 사춘기 때조차, 아주 작은 창문이라도 내 쪽을 향해 열어놔 주길 나는 바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실수가 많은 엄마다. 가끔 아이에게, “네가 이렇게 해서, 지금 이렇게 됐잖아.”라고 말할 때가 있다. 너의 행동이 문제라는 식의 비난. 그런 말을 내뱉고 나면 나는 항상 흠칫 놀란다. 또, 내가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했구나. 나는 또 아이에게 치사한 엄마가 되었구나, 하고.
그런 나의 성급한 실수들이 아이를 쓸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빨리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마음은 자꾸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