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마트에서 울다, Crying in H Mart: A Memoir
이 책을 처음 본 건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H 마트 앱에서였다. 앱을 켜자 팝업창으로 이 책의 표지가 떴고, 나는 반사적으로 X를 눌러 창을 닫았다. 빨간 책 표지에 국수를 든 두 젓가락의 그림은 그럼에도 기억에 남았다. 그다음 같은 팝업창을 마주했을 때에서야 이것이 H 마트에서 제작한 광고 같은 것이 아니라 회고록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한인이 쓴 책이 올라왔다고? 읽어 봐야지, 생각하고는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이런 책이 있다며 링크를 보내왔다. 응, 나도 봤어. 답장하고는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 중에서 이 책에 흥미를 갖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H Mart
그런 곳이다, H 마트는. 미국에 와서 처음 H 마트에 갔을 때 느꼈던 안도감이란. 큰 한인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거기에서 알바도 꽤 오래 했다. 붕어빵도 팔고, 뻥튀기도 팔고, 선식도 팔고.
지금 첫째 아이에게 "마트 가자!" 하면 아이가 묻는다. "코스코? 타겟? 에이치 마트?"
첫 장, 'Crying in H Mart'는 매력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H 마트의 푸드코트를 묘사한 부분은 다양한 독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책에 빠져들 수 있게 잘 쓰였다. 나와 같은 미국의 한인들에게는 공감으로, 한국인에게는 낯선 반가움으로, 그리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많은 독자들에게는 이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남편은 말했다. 이 책으로 H 마트가 제대로 홍보됐겠는데?)
K-Mom: 한국인 엄마와 혼혈 딸의 간극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딸에게서 느낄 문화 차이였다. 딸과 나의 세대 차이에 (요즘은 변화가 너무 빨라서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이가 이전 조부모와 손주들의 차이와 같다고 한다) 더해질 문화 차이를 내가 현명하게 잘 다루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혼혈에 미국에서 자란 예술인이고 작가의 엄마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정주부다. 어린 시절의 회상들에서 묘사된 작가의 엄마는 나의 엄마처럼 K-Mom스러웠다. 나의 엄마와 엄마인 나를 동시에 바라보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읽을 때면 마음이 찌릿했다.
나도 역시 내 아이가 다치면 내 재산이 훼손당한 것처럼 화가 나고 속상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살덩이가 똑같이 찢긴 것 같아 아파서 화가 난다. 우리 엄마도 내가 다치면 화를 냈다.
나도 역시 내 아이를 칭찬할 때 "아이구우, 예뻐라!"가 제일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다. (오은영 박사님, 알아요. 좋은 칭찬 아닌 거 알아요.) 우리 엄마도 예쁘네, 가 제일 큰 칭찬이다.
나도 역시 외모지상적이고, 내 아이들의 얼굴이 작아서 뿌듯하다. 우리 엄마는 만날 내 얼굴 크기를 가지고 놀렸다.
작가는 엄마의 모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의 결핍이었다. 처음 내뱉은 단어가 '엄마'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한글학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언어인 한국어. 엄마가 계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할 때, 작가는 엄마 삶의 마지막 순간들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한다. 엄마의 마지막 말이 "아파"인 것이 한처럼 서린다. 엄마가 떠난 후 나미 이모와 서로의 상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진정으로 같은 아픔을 서로 깊숙이 공감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애도의 결핍이 된다.
우리 엄마와 나는 같은 언어로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다정하지 않은 엄마의 말들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기에 바빴다. 안 그래도 요구는 많고 인정은 하기 어려워하는 K-Mom인 작가의 엄마가, 익숙하지 않은 제2언어 영어로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칠 수 있었을까? 작가가 들었던 엄마의 진심은, 엄마 진심의 10%도 채 되지 않았을 것만 같다.
욕심쟁이 엄마인 나는 우리 딸들이 어떻게 해서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가르치고 싶다. 내가 영어를 하는 만큼은 너희도 한국어를 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한국의 문화를 너희와 공유할 수 있길. 우리가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멋진 문화적 융합이 일어나길.
그럼에도 예술
엄마의 이름, '정미'는 챕터 14 'Lovely'에 들어서서야, 165쪽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그녀가 들었던 아트 클래스의 선생님이 쓴 편지에서. 그녀가 개인으로, 예술가로 그리고 친구로 처음 비치는 부분이다. 그녀의 스케치들에 무수히 반복되고 변형되고 연습되는 작가의 서명 역시 그녀의 개인성을 드러낸다. 예술가인 엄마를 발견한 것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관계에서의 존재, 엄마와 아내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개인성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기를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해왔다는 것. 자신과 같은 예술가라는 것. 작가가 느꼈을 자긍심과 뿌듯함, 그리고 무엇보다 안도감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I've just never met someone like you
챕터 14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한식
작가가 엄마를 애도하는 방법은 한식을 요리하는 것이다. 제목과 서두와 결말을 잇는 한국 음식. 엄마가 자식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했던 가장 본능적이고 근본적인 행위이자, 모녀의 문화이자 전통이었던 한국 음식을 요리하는 것으로 작가는 엄마를 추억하고 이해한다.
음식만큼 정직한 문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엄마가 나에게 만들어주었던 많은 음식들. 미국에 오기 전에 엄마는 하나라도 더 가르쳐 준다고 열성이었다. 나는 매번 기억하지 못한다며, 적당히 넣으라는 게 얼마큼이냐며 퉁퉁거릴 뿐 집중하지 않았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후에 미국에서 얼마나 이 순간들을 후회할지. 엄마 요리법을 제대로 배워올걸, 하고 얼마나 자주 생각하게 될지.
지금도 엄마 음식이 먹고 싶으면 카카오톡을 보낸다. "엄마, 불고기는 어떻게 해?" "엄마, 잡채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럼 엄마는 당신의 방식대로 "고춧가루 한 스푼, 간장 두 스푼.." 이렇게 보내 주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인터넷을 찾아서 유튜브나 네이버 링크를 보내준다. 엄마 요리법을 받을 때는 시도해 보지만, 유튜브나 네이버 링크를 보내줄 때는 갑자기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럼 링크는 열어보지도 않는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당신의 방식과 가장 비슷한 요리법을 찾아서 보내주는 걸 텐데. 아직도 철없는 딸이다.
엄마가 만들어 준 감자탕, 닭볶음탕, 김치찌개, 묵은지조림, 고등어조림, 잡채가 먹고 싶다. 무엇보다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가 먹고 싶다.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엄마, 부추김치 어떻게 만들어?"라고.
나는 어떤 원형적 기억을 우리 딸들에게 만들어주고 있는 걸까. 내가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나의 원형들. 매일 식탁에 올리는 음식에서, 불러주고 틀어주는 노래에서, 함께 읽는 동화책들에서, 나의 아이들과 나의 세상이 어우러져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가족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