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적응자의 사회 적응기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살림 (2016)

by 클레어

주인공 게이코 후루쿠라는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여성이다. 그녀는 사회적 공감 능력이 떨어져 편의점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사하면서 사회 기술을 익힌다. 연애도 성관계도 해본 적이 없다. 일손이 부족해 가까스로 채용되었다가 해고된 시라하 씨를 보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삭제되고 사라지는지를 경험한다. 나이를 먹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알바를 하며 생활하는 그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진 후루쿠라는 시라하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마일드한 소시오패스라고 해야 할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식과 감정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후루쿠라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아는 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이는 언제나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싶지만 그다지 감정적 동요를 느끼지 않기에, 그녀는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편의점 알바에서 그녀는 안정감을 찾는다. 편의점 점원의 매뉴얼만 잘 익히고 따르면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면서 먹고 살 만큼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녀는 기계처럼 매뉴얼을 따르고, 점원들과의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고 배우면서 무난히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전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에, 이야기는 사회 부적응자의 시점에서 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흘러간다. 후루쿠라는 감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약점을 찾아내서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해 나간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화자의 이성적인 판단에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는 데 무리를 느끼지 않는다.

또 다른 사회 부적응자 시라하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진다. 시라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 능력이 전무하지만,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고 삭제하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비판한다. 경제적, 사회적 가치에 대한 비판이 더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남성으로서 시라하는 여성혐오적인 생각도 거리낌 없이 마구 내뱉는다. 자신을 검열해가며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후루쿠라와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대척점에 놓인 두 인물이 사회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맺는다. 시라하는 후루쿠라의 남자가 되어 그녀가 비혼으로 차별받는 것을 보호해 주고, 후루쿠라는 대신 시라하를 집 안에 숨겨준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처럼 먹이를 주고 재워준다.


사회 부적응자 두 인물의 이 이상한 계약은, 사회가 평범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처벌적이고 배타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상한 건 그들이 아니라 잔인한 사회다.


하지만 이들의 계약은 역시 실패로 돌아간다. 후루쿠라와 시라하가 자신들과 같은 범위, 즉 이성애의 범위로 들어왔다고 여기는 편의점 점원들은 그들의 삶에 끊임없이 관여하려 든다.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여겨졌던 편의점이라는 작은 사회가 사회적 가치관을 더 강조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억압의 공간이 된다. 여기에 더불어 시라하는 후루쿠라 뒤에 더 안전하게 숨기 위해 그녀가 취직을 하도록 종용한다. 결국 18년 동안의 편의점 알바 생활을 청산한 후루쿠라는 자신의 가치관과 매뉴얼, 일상의 루틴을 모두 잃어버리고 혼란스러워진다.


후루쿠라는 결국 편의점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아니, 누구에게 용납이 안 되어도 나는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인 나에게는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할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


시라하의 손아귀에서 능동적으로 벗어나는 후루쿠라의 모습에 일단 안심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녀는 (사회적) 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로 자신을 선언한다. 반복적으로 수조로 비유되는 편의점에 자율적으로 갇히는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사회에 적응하는 것에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사회를 포기해버린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이야기는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물론 사회에 적응하는 해피엔딩을 맞았습니다! 라는 결말을 기대한 것도, 그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 결말은 이 이야기에 가장 완벽한 결말이다. 결국 그들의 도전이 비극적으로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일상적으로 가하는 '평범함'이라는 기준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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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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