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이승우, 문학과지성사 (2024)
겨울방학 도서관 행사로 집에서 조금 먼 도서관을 갔었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도시의 도서관이라 그런지 한국 책들이 꽤 많이 있어서 신이 나 몇 권을 집어왔다. 그중 하나가 이승우 작가의 『목소리들』이었다.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작품집.
작가에 대해 아무 정보 없이 (심지어 책날개의 작가 소개도 읽지 않고) 처음 읽은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로, 나는 이 작가가 나이가 좀 있는 남성 작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요즘 작가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단정하고 정확한 문체, 반복되어 쏟아지는 관념적인 질문들, 서사보다 심리 묘사에 더 집중되어 있는 문장들 때문이었다. 후에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비슷한 해석들이 눈에 띄었다.
이 작품집은 집중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자신의 위치에서 계속 어딘가로 내몰리는 사람들, 사회의 중심에서 버티지 못하고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과 뒤늦게 죽은 사람들을 찾는 사람들. 그래서 모든 소설에 '空'이 있다. 재개발로 인한 공가, 받지 못한 전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삶을 비운 (자살한) 사람들과 그로 인한 죄책감을 견디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 작품의 대부분의 문장들은 그들의 "목소리들"이다. 사회에서 이 인물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대부분 말을 삼키거나, 말을 할 시간을 놓쳐버리거나, 자기 말을 자기가 검열하다가 결국 못해버리고 만다.
"그게 아니라요, 제 말은……" 그녀는 벌게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말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공가空家」
차마 발화하지 못한 말들의 이면에 깔린 심리를 작가는 집요하게 파헤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침묵하고 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목소리들」은 발화된 목소리 자체만을 다룬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고 나서 후회할지 모르겠는데,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아서, 그냥 할게.
「목소리들」
억누르고 억누르다가 터져 나오는 울분의 문장들이다.
다만, 서사와 인물, 어떤 표현들이 자꾸 겹쳤다. 「공가」와 「귀가」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의 폭력으로 오랫동안 가족과 연을 끊고 살던 아들들이다. 긴 방황 끝에 돌아간 옛집은 재개발로 인해 비어있고, 엄마는 이미 죽었다. 그들이 공가에서 행하는 작은 치유의 몸짓만 조금 다를 뿐이다. 「공가」는 가끔 쉬러 오는 여성의 존재가, 「귀가」는 집을 정리하고 꾸미는 행위가 그들의 유한한 희망이다.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를 두 개로 나누어 겹쳐 놓는 것이 주제를 강조한다기보다, 주제가 반복되는 것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마음의 부력」과 「물 위의 잠」도 마찬가지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어서 사회적으로는 낙오된 형과 성실하게 사회의 요구에 순응했기 때문에 평범하고 번듯하게 사는 동생이 대비된다. 형은 자살했고, 그런 형을 외면하고 방치했던 동생의 심리가 심도 있게 묘사된다. 이 둘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동생의 목소리를 자살한 형의 목소리로 혼동한다. 형이 죽기 전에는 "(동생)의 목소리를 형의 목소리로 착각하지는 않으면서 형의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로 착각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까지 비슷한 서사를 굳이 두 개로 나누어야 했을까? 「마음의 부력」은 1인칭 시점으로, 「물 위의 잠」은 3인칭 시점으로 쓰여 화자와 작가의 거리가 다르지만, 이것이 특별하게 큰 차이를 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소설 「사이렌이 울릴 때 - 박제가 된 천재를 위하여」는 흥미로웠다. 이상의 「날개」를 재구성한 작품인데, 무언가를 논하면 스포일러가 되고 말 것이다. 직접 읽어보길 추천한다. 재미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