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당연하게 믿는 것들이 바로 함정이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엘릭시르 (2021)

by 클레어

가볍게 읽으려고 골랐는데, 스토리에 몰입해서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만든 『홍학의 자리』. 스릴러나 추리 소설을 잘 읽지 않아 장르적인 논평은 하지 못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요소들로 주제를 이렇게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줄거리 (스포일러 주의)


지방의 고등학교 교사인 김준후는 담임을 맡고 있는 반의 학생 채다현과 외도를 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이혼을 결심한 아내가 임신을 한 데다 결혼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내의 의지가 확고해 별거 중이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야근을 하는 중에 갑자기 찾아온 다현과 교실에서 정사를 나누고, 몇 분 뒤 살해된 것 같은 다현의 시체를 발견한다. 다현의 시체가 부검이 되었을 때 미성년자인 제자와의 밀회가 발각될 것이 두려운 준후는 시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이후 이야기는 발각되지 않으려는 준후와 살인범을 찾으려는 형사 강치수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독특한 구조와 인물 분석


살인자와 형사의 흔한 대결 구도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쫓는 추리소설의 원형은 유지하면서, 시체를 유기한 또 다른 악인의 시점으로 사건을 파헤치게 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김준후가 자신이 보호하고 가르쳐야 할 미성년자 학생과 외도를 저지르고, 후에는 그 시체까지 유기하는 파렴치한 인간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그가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행위들을 남몰래 응원하게 된다. 다현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기 때문이 첫 번째, 사회적 체면과 지위가 모두 위험해진 궁지에 몰린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강치수 형사의 수사가 사건의 진실에 점점 더 다가가면서 김준후의 위선이 천천히 벗겨진다. 위협이 커질수록 그의 본성은 악함에 기울어간다.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철저하게 이기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이야기 초반의 김준후와 후반의 김준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그 서사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매끄럽기 때문에 독자는 멈칫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언제든지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김준후의 마지막 장면은 악인으로 완전히 변모한 그를 생생하게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소름 돋는 결말이다.

범인을 찾는 데 혼선을 주는 조연들의 서사는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현의 어머니는 사기죄로 감옥에서 자살을 했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교무부장 조미란과 그의 아들 정은성이다. 정은성은 채다현을 협박하고 폭행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용의선상에 오르고, 조미란은 아들이 살인자라고 생각하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그들은 단순히 독자의 추리를 방해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사건에 휘말려 들어와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진정한 가해자/피해자가 되면서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들이 된다.


두 가지 충격적인 반전


이 모든 세부적인 요소들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반전 그 자체에 있다.

크게 두 가지 반전이 있다. 하나는 채다현이 남학생이었다는 것. 하나는 살인자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늘어진 끈을 잡고 힘껏 올라가 중간에 매듭지어놓은 원에 목을 집어넣고 자살한 겁니다."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정은성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을 즈음부터 채다현이 자살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살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목의 자상 때문이었다. 자살의 방법으로 고르기에는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다현이 그런 식으로 죽었던 것은 아니길 바랐던 마음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목을 찌르고 나서 목을 맬 정도로, 그렇게 힘들고 아프지는 않았길 바랐다.)

김준후와의 관계가 더 확고하고 안정적이길 바라는 채다현과 다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버릴 생각은 없는 김준후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채다현이 그렇게 자살해야 했던 동기도 확실해졌다. 상처 입히고 싶은 마음.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도 고통스럽길 바라며, 그의 치부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세상에 까발리려는 계획. 그 계획의 이면에, 죽은 자신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길, 회한의 감정이 생기길,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그가 무너지길 바라는 다현의 쓸쓸함이 마음 아팠다.


편견을 깨뜨리는 장치


다소 어색하게 제시된 "채다현은 남학생이었다"라는 반전은 충격적이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숨겼다. 다현은 유니섹스적인 이름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더 많이 쓰는 이름이다.

반전을 알고 돌아보니, 작가는 여지를 계속 주어왔다. 준후, 치수, 미란, 이영, 국희 등 성별이 중요하지 않거나 확실해야 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비교적 성별 구별이 가능한 이름으로 짓고, 은성, 영선 등 성별에 혼동이 있을 때 효과가 있는 인물들은 중성적인 이름을 주었다. 은성과 영선의 이름이 다현처럼 구별이 어려운 것은 특히 효과적인 장치였다. 은성과 영선은 다현의 친구들인데 셋 다 처음 이름을 읽었을 때는 여성 인물들인 줄 알았다. "아! 남자였네!"라는 경험이 몇 번 반복되는 것, 그 경험 자체가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리고 다현의 성별이 반전이라는 것 자체가 강조하는 주제는 무거웠다. 내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제대로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이성애가 당연하다는 생각. 성관계 피해자는 여성일 것이라는 생각. 평소에는 의심할 일이 별로 없어 인식하지 못했던 편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 그 자체가 함정이었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력한 효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화가 나고 김 빠지는 반전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채다현이 남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추리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고 주제를 부각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이 반전으로 인해 『홍학의 자리』는 그저 재미있고 스릴이 넘치는 소설 이상이 될 수 있었다.

장르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의 또 다른 편견을 깨주었기에 내게는 더 의미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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