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이민진의 Free Food for Millionaire를 대학원 시절 읽었을 때, 나는 그 책을 "서사의 흡입력은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닌" 작품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파친코』가 애플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을 때 흥미가 일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의 작품을 썼다고? 애플 TV 구독을 미루다 결국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괜찮다.
소설은 이 멋진 첫 구절로 시작한다. 20세기 초부터 1989년까지, 한 세기에 걸친 재일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 장애를 가진 훈이와 그의 딸 선자로부터 시작해, 선자의 아들들 노아와 모제스를 거쳐, 손자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서사다. 한국계 일본인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일본에 정착했으며, 어떤 차별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파친코라는 상징적 공간과 함께 풀어낸다.
'고향(1910-1933)'은 첫 구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여기서 이민진의 인물 창조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장애를 가진 남자에게 시집오면서도 초연하고 듬직한 양진. 그녀는 단순한 '강인한 어머니'의 전형을 넘어선다. 훈이가 죽은 후 하숙집을 꾸리며 생활하는 모녀의 일상은 소소하지만 아름답게 그려진다.
선자 역시 흥미롭다. 유부남 한수와의 사랑에 빠져 혼외 자식을 임신하지만, 그녀는 피해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선자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거두는 백이삭은 더욱 독특하다. 목사인 이삭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순교자도 아니다. 그는 선자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복잡하고 때로 이기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평이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의 소시민을 설득력 있게 대변한다.
'고국(1939-1962)'에 들어서면서 인물들이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는 얇아진다. 선자, 경희, 요셉은 '1세대 어른의 전형'이 되고, 노아와 모제스는 '2세대 젊은이의 전형'을 입는다.
노아는 완벽하게 일본화되어 차별을 극복하려는 인물로, 모제스는 한국인 정체성을 지키며 파친코 사업에 뛰어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대비는 너무 도식적이다. 노아는 오직 공부만 하고, 모제스는 오직 저항만 한다. 둘 다 차별받는 2세대 한국인이라는 사회학적 범주 안에서만 움직인다. Book 1의 선자나 이삭처럼, 그 범주를 벗어나는 개인적 결점이나 욕망,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 쓰는 가족을 보는 것은 분명 숨 가쁘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시대가 주는 고통'일뿐, '그 인물이기에 겪는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은 시대의 산물만이 아니다. 소설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파친코(1962-1989)'는 3세대로 이어지는 서사를 다룬다. 그런데 여기서 소설은 방향을 잃는다. 격변하는 시대상을 더 이상 담지 못하고, 서사는 개인의 일상으로 숨어든다.
문제는 그 일상이 주제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다뤄지고, 솔로몬의 성생활이 장황하게 묘사된다. 정작 중요한 질문—왜 그들의 노력이 실패하는가, 일본 사회의 차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답은 피상적이다. 솔로몬이 영국계 은행에서 해고되는 장면도, 아버지가 파친코를 운영하는 한국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신뢰를 잃는 과정이 단편적으로만 제시될 뿐, 그 메커니즘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중요 인물들의 죽음도 맥 빠진다.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평이하다 못해 납작해져서 서사에서 떠밀리듯 사라진다. 유일하게 양진이 죽기 전 선자에게 쏟아내는 막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말들조차 선자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양진이 막말을 퍼붓지 않았더라도 선자는 한수와 연을 끊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말은 솔로몬이 결국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는 것으로 끝난다. 씁쓸한 실패의 맛. 현대에도 이어지는 차별의 압박.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여정이 너무 산만하다. 관계없는 주변인물의 이야기를 덜어내고, 그 자리를 솔로몬이 일본 사회에서 겪는 구체적인 차별의 에피소드로 채웠더라면 훨씬 강렬했을 것이다.
이민진은 사건과 배경을 잘 만들어낸다. 부산의 하숙집, 오사카의 재래시장, 화려한 파친코 가게까지, 공간은 생생하다. 시대의 큰 흐름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그래서 읽는 동안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하지만 인물들이 평면적이다. 그들은 '시대를 증언하는 목소리'로는 충분하지만, '기억에 남는 개인'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줄거리를 읽은 듯 남는 것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게 훨씬 더 재밌겠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파친코』가 그랬다. 배우들이 살을 붙이면 납작한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날 것 같았다. 거대한 서사와 아름다운 공간은 영상으로 더 빛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