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움이라는 함정

by 우리의 결혼생활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일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렵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대가 된 일은, 매일 들려오는 뉴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당연시되어 온 예의범절과 나이에 맞는 품행, 기본 에티켓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이슈가 끊임없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지나치더라도 먼저 예의와 덕을 가르침은 부모의 교양이자 소임이며, 자녀 삶의 태도와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고 나를 돌아보는 요즘 들어 온전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가 오랜 시간 쌓여온 만큼 애증의 관계로 변해가는 일련의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가까운 사이에서 놓치기 쉬운 예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잘 아는 사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나 환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큰 오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지적과 따가운 충고들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와 원망을 남기는 이유도, 가깝다는 안도감이 경계를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어려운 관계가 되는 것도, 결국 '잘 안다'는 함정에서 시작된다.


얼마 전, 추운 겨울 오후의 맑은 햇살이 그리워 늦은 밤 한강변을 산책하러 나선 적이 있었다. 오후에 보았던 윤슬을 떠올리며 찬바람을 무릅쓰고 걸었지만, 막상 도착한 한강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낮에 눈부시게 반짝이던 강물은 온데간데없고, 냉랭한 바람과 거친 물결이 넘실대는 새카만 강물만이 남아 있었다. 그 낯선 어둠은 어쩐지 두렵기까지 했다. 기대했던 찰랑거림과 야경의 정취는 사라지고, 매서운 바람이 온기를 모두 앗아간 그 자리에는 차갑고 낯선 강만이 흐르고 있었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 그 기대와의 간극은 오히려 마음을 더 어렵고 쓸쓸하게 만든다. 알고 있다는 확신,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더 큰 상실감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밤 한강은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가깝고 익숙한 사이일수록, 우리는 더 정성을 기울이고 더 조심스러운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일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내 아이들에게, 내 남편에게, 그리고 오래된 인연들에게. 가까움이라는 이름 아래 무뎌진 말 한마디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나는 이제 잘 안다. 절제와 배려, 그리고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관계를 오래 따뜻하게 지켜준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밤 차가운 한강 앞에서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과 엄마의 갱년기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생각해 본다. 익숙함에 기대어 날카로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같은 말이라도 둥근 부분을 먼저 주도록 하고 모난 부분은 예의를 갖추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엄마가 여전히 자라는 중이라서 ….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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