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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맑은 물이 되기까지

생명수가 되는 사랑

by 우리의 결혼생활

사랑을 물에 비유한다면, 처음 만난 사랑은 작은 어항 속 물과 같다. 투명해 보이지만 금세 탁해지고,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이끼가 끼고 냄새가 난다. 그 물로는 목을 축일 수도, 마음을 적실 수도 없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성숙해진 감정은 작은 시냇물이 된다. 바위 사이로 흐르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물. 이제 조금은 마실 수 있고, 손을 담그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더 깊어진 사랑은 계곡의 물줄기가 된다. 맑고 차가운 1 급수, 그 청정함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갈증을 해소한다.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물은 더 이상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서로를 인내하고 품어낸 사랑은 마침내 생명수가 된다. 누군가의 상처를 씻어주고, 메마른 마음을 적시며, 지친 영혼을 소생시키는 물. 이 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살아날 힘을 얻는다.


나는 오랫동안 작은 연못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았다. 곳곳에 진흙이 가라앉아 있고, 바람만 불어도 금세 탁해지는 그런 물을. 외로움이라는 낙엽들이 떨어져 썩어가고, 고독이라는 이끼가 수면을 덮었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사람마다 없는 이가 없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만 이렇게 홀로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안갯속으로 밀려들어가는 감정들과 싸우며, 급작스러운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전심전력으로 저항해야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를 지키고 아끼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물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는 것을.

생명수의 본질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제였다. 구별할 줄 아는 지혜였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화의 힘이었다.


지켜낸다는 것은 참으로 강력한 힘이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려운 약속을 지킬 때, 일시적 만족을 거부하고 영원한 가치를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강인한 정신을 얻는다.


정화 능력은 자연만의 특권이 아니다.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숨겨진 샘이 있다.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먼지처럼 엉켜버린 잡념들을 모두 쏟아버리고, 성숙하고 참아내며,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


언젠가 우리도 서로에게 간절한 생명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목마름을 적셔주고, 상처를 씻어주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내 안의 물을 정화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이 여정이 언젠가는 생명수의 근원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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