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열쇠
용서는 주는 자가 오히려 더 기쁜 일이 된다. 용서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선물은 받는 이가 기쁘고 지혜는 가진 자가 기쁘지만, 용서는 받는 이보다 주는 이가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다.
우리는 잊지 못하거나 사무치게 억울하거나 힘들었던 일을 흘려보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더욱 큰 고통을 새기고 상처를 더 크게 하는 2차적인 가해를 자행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이미 떠났는데, 피해자인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그 모든 것을 치유하며, 더 나아가 사랑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 학업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 채무 때문에 온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뉴스를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무엇이 용서인가?
공부를 못하는 청소년은 용서할 수 없는가? 물질적인 어려움과 실수는 용서받지 못할 일인가?
때때로 사방이 막힌 것 같을 때, 진정으로 나에게 주는 용서는 삶을 일으키는 무엇이 된다.
어릴 적 경험한 불행이든 성인이 된 후 겪은 상처든, 풀어놓지 못할 일들이 있을 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서하는 자신의 마음뿐이다. 지금의 현실과 아픔에 관대해지려면, 탓하거나 비난하는 손가락을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내려놓지 못한 손들이 타인을 향해 던지는 악플이나 비난은 매우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은 입술의 용서를 구한다. 타인이든 자신이든, 미흡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세상의 불공평을 용서하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시간들을 모두 용서해야 한다.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떠한 잣대를 필요로 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법적 기준이 필요하지만, 용서는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 단지 자유와 사랑이 결과적으로 따라올 추가적인 선물이 될 뿐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한다고 할 때, 그 안에는 용기가 있고 결단이 있으며 회복이 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인생을 터득한 사람이거나 득도한 사람이다.
쉽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색안경을 벗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안경을 쓰는 순간부터 세상을 달리 바라볼 준비가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바라본다. 그렇게 자신이 택한 안경으로 세상을 검게, 노랗게, 붉게 바라본다.
나에게 용서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그리고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용서는 결국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열쇠다. 묶여있던 마음의 사슬을 끊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가볍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
오늘 밤, 용서하지 못해 가슴에 품고 있던 그 무거운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아보자. 그것이 나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물은 생각보다 훨씬 값지고 아름다울 것이다.
용서는 약한 자의 포기가 아니라, 강한 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용서하는 사람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