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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남자 Apr 04. 2021

당신의 시간은 돈보다 가볍습니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남편들을 위해

내 시간은 돈보다 가벼웠다. 옷을 하나 사 입더라도 온갖 사이트를 뒤져서 최저가를 찾았다. 아니면 쿠폰을 중복으로 먹여서 최저가를 만들어냈다. 매일매일 온라인몰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며 쿠폰을 차곡차곡 모았고 관심 품목들의 시세를 확인했다. 사야 하는 품목의 비용이 클수록 모델 선정과 가격 조사에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살 때 침대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공부했고 식탁을 살 땐 원목의 종류를 찾아봤다.

나 = ∑시간
시간 <  돈
나 < 돈?

단순히 생각하면 사람은 태어나서 현재까지의 시간으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돈 보다 시간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 자신을 돈 아래 뒀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마 그건 아닌 것 같다. 과거에 돈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았다. 다만 대학생 때까지 내가 가장 없었던 것은 돈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돈은 나에게 희소성이 컸고 교환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했던 대학생 때까지 시간을 들여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샀다. 대학생 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해외에 나갔는데, 출국 전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하고 파트타임 잡을 3개나 뛰었다. 아예 그 시간에 영어 공부를 더 했으면 어땠을까.

당신의 시간은 돈보다 가볍습니까?


어릴 적부터 나는 내 욕망을 무시했다. 내 기억엔 부모님께 뭔가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다. 돈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나의 사소한 욕심으로 부모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목에 있는 시계는 나에겐 별이었다. 하늘의 별은 딸 수 도 없고 굳이 딸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고 크게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이 충분해서 그런 것 일수도 있다. 부모님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매일 만들어주셨다. 어차피 학교에 들고 가면 도시락은 식지만 조금이라도 따뜻한 밥 해 먹이기 위해 매일 6시에 일어나셔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셨다. 내 반찬은 모든 친구들의 관심 대상이었고 반찬 교환에 경쟁력이 있었다. 소풍날 내 도시락 통에는 지단으로 둘러싸인 고급 김밥과 볶음밥을 꽉 채워서 만든 유부초밥이 들어 있었다.  사랑으로 허기지지 않았기에 다른 것으로 나를 채울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했고 비용이 드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수학 점수가 많이 떨어져서 몇 달간 월 70만 원짜리 과외를 받았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럽다. 어릴 때는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고 두 학년 정도를 앞서 공부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었는데 중 3 때 잠시 책을 놓아 고등학교 때 수학 점수가 엉망이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과외를 받게 되었는데 굳이 들이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한심했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한 달에 2시간씩 8번이니 1시간당 43,750원'을 속으로 계산해가며 정말 열심히 들으려 했지만 밤 10시부터 하는 수업은 내 눈꺼풀을 잡아당겼다.




모든 것에 장단점은 있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검소하고 큰 욕심 없이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향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 목표를 어느 정도만 달성하더라도 만족해버렸고 비용이 드는 지름길은 모두 무시해버렸다.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했었던 공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었고 무언가 빨리 성취하고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찾아서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과 취업을 잘하기 위한 것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더 철저하게 비용을 쓰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나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았을 텐데 내 욕망을 꼭꼭 숨겼고 내 안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꿈들을 이루는 습관이 결여되었다.


아내는 나와 정 반대인 사람이다. 아내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배짱이 있었고 자신의 욕망 옆에 귀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를 귀찮음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충분히 내 시간을 투자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며 돈을 썼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과 에너지를  탱자탱자 놀거나 쉬는데 썼다.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에 비용을 투자할 일이 있을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신혼집을 구할 때도 처음 집에 들어가자마자 이 집으로 하자고 했다.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뤄 온 걸로만 보면 저축 외에는 아내가 가진 것들이 더 많았다. (성격은 내가 더 좋은 것 같다.) 나보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운전도 잘하고 요리도 잘했다. 이해력도 좋고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고 노래도 곧 잘 부른다. 이런 아내가 나를 봤을 때는 자급자족적이고 지나치게 신중한 내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다른 성향 때문에 많이 다투고 다퉜다.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했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 결국 아내는 내 안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횃불을 든 내가 모르는 나를 끌고 나왔다. 이는 나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① 내가 종종 무언가 살지 말지 비용 때문에 고민할 때, 아내는 나에게 한 마디 한다. "오빠 정도면 그 정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냥 사." 이상하게 이 말을 들으면 위안이 되었고 내 욕망에 솔직 할 수 있게 되었다.  

② 지금 당장 돈을 가져다 주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등인데 아내의 칭찬과 응원은 내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준다.

③ 부자를 꿈꾸게 한다. 정확하게는 좀 더 풍요로운 삶을 같이 그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나는 가진 것을 아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오빠 정도면 그 정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냥 사."




요즘 나는 작은 꿈들을 이루며 살고 있고 어느 때보다 삶이 풍요로워진 것을 느낀다. 힘들게 회사에서 일을 하더라도 퇴근해서 하는 여러 작업들이 내 에너지를 더 채워준다. 지금에 와서야 돈보다 시간이 더 무거워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록 더 많은 꿈을 꾸게 된다.


"20대 땐 시간은 많지만 돈은 없고, 30대 땐  돈은 많지만 시간은 없다."는 말을 틀렸다.

"20대 땐 돈은 없지만 시간이 많고, 30대 땐 시간은 없지만 돈은 많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 시간을 소중하게 쓴다면 없는 시간으로도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다.



안녕하세요.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는 '그남자'입니다. '그여자'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주제로 1주일에 하나씩 각자의 생각을 펜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남녀의 다른 생각을 비교해 읽으시면서 남편과 아내분들께 공감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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