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대신 멘붕으로 시작된 '엄마'라는 이름의 첫날
출산은 기적이라고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겐 그날이 그냥 공포였다.
출산 하루 전까지도 입덧을 했다.
6주 3일부터 시작된 입덧은 37주 4일까지 이어졌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마음은 무너져 있었다.
설렘은 커녕,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임신, 출산, 육아… 그 시작인 임신 기간이 지치게도 힘들었다.
나는 뭐든 계획을 세워야 안심하는 사람이다.
임신 중에도 머릿속은 늘 체크리스트 투성이였다.
하지만 출산만큼은 내 계획 밖의 일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유일한 건, 역아라서 정해진 날짜에 제왕절개를 한다는 사실뿐.
12시 수술이라 아침 7시부터 병원에 갔다.
11월의 아침, 해는 뜨지 않았고 하늘은 유난히 어두웠다.
내일의 아침은 둘이 아닌 셋이 되어 맞겠지.
그 생각에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병원에 들어서자 바로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수액 바늘, 태동 검사, 관장, 소변줄…
후기들을 보고 갔는데, 괜히 봤다 싶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더니… 모르는 게 나았다.’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차갑고, 그냥 추웠다.
배는 이만큼 나와 있는데 새우자세를 하라고 했다.
“등이 안 구부러지는데요…” 속으로 투덜댔다.
척추주사는 “안 아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바늘이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찔끔.
마취는 잘 안 먹고, 심박수는 폭주했다.
수술은 늦춰졌다.
계획 세우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
내가 아무것도 통제 못 하는 그 상황.
그날이 딱 그랬다.
그때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공간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온기였다.
“엄마, 힘들어하면 아기도 힘들어요.”
위로였을까. 하지만 내겐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힘들면 안 되는데…’
“자, 엄마 이제 시작할 거예요. 10분이면 끝나요.”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드라마에서 보던 “응애응애”는 없었다.
그르륵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잘못된 거 아니야?”
나는 얼어붙었고, 간호사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잠시 후, 아기가 울었다.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해냈다… 내가 해냈다.”
아기를 안겨주는데 또 눈물이 났다.
무슨 감정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작은 존재가 내 아이라는 사실.
그때 찍힌 사진이 있다.
솔직히 그렇게 못생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사진이 가장 좋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
못생겼는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내 감정까지 그대로 박제된 사진.
수면마취에 들어갔다가 깨어나니 회복실이었다.
옆에서 남편이 엉엉 울고 있었다. 초상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가 기특해서 그렇게 울었다는 거였다.
고맙기도 했지만, 그땐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출산 직후의 몸은 자동차가 내 배를 밟고 간 것 같았다.
배는 찢어진 듯했고, 돌덩이 얹힌 것처럼 무거웠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가장 무너진 상태였다.
다리는 부어올랐고 내 얼굴엔 보름달이 떴다.
아이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음 날 바로 걸었다.
“운동 해둔 게 이럴 때 도움이 된 건가?” 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아, 살아났네. 가자.” 하고 웃었다.
그리고 첫 수유실.
아기를 안는 순간, 그제야 현실이 와 닿았다.
내 품에 들어온 작은 존재.
따뜻하게 꿈틀대는 몸.
그 순간 눈물이 왈칵 터졌다.
“와… 이게 진짜 내 애구나.”
세상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돌아보면 그날의 나는 눈물투성이였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쨌든 버텼다.
그리고… 그날은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