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모든 것은 결국 기울기 마련인 것 같아요.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에 이르기 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미술계는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무엇을 그리려 했고 또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죠.
이는 '낭만주의'가 주었던 피로감에 기인하지 않았나 해요. 낭만주의(Romanticism)는 감정적이며 상상력 풍부한 내러티브를 강조합니다. 때문에 주요 주제는 사랑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투쟁과 분노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고 거기에 작가작 상상력 까지 더해집니다.
당시는 산업화가 진행되며 전에 없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을 때 였어요. 게다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며 로마제국 이후 천년 이상 유럽을 지배했던 왕정이 위협을 받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불안정한 시기였지요. 상황이 이러하니 그림에는 다분히 시대의 문제점들이 녹아들 수 밖에 없고 간혹은 정치의 도구로 쓰이기 까지 했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사실주의(Realism)'의 태동입니다. 과장된 상상력과 표현은 배제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이죠.
차고 넘쳤던 모든 것이 기울고 비워져 결국 원점으로 온 것이 아닐까요?
사실주의가 있게 한 두 개의 발명품
카메라와 물감 튜브
화가들은 직접 보고 느끼며 그리기 위해 산업화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혼돈에 쌓인 도시를 떠납니다. 그들이 진정 그리고 싶었던 것은 도시로 부터 소외된 민중의 삶이였거든요. 이러한 데에는 카메라가 발명된 영향도 컸습니다. 화가들은 카메라의 렌즈가 닿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담고자 했으며 카메라 보다 더욱 사실적인 모습을 캔버스에 표현하려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밀레와 루소, 코로 등은 파리 외곽의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터를 잡고 농민들 곁으로 한 층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닌, 함께 농사를 짓고 생활하며 온전히 농민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갔어요. 농민들은 이러한 화가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기꺼이 캔버스 앞에 서 주었습니다.
플레인 에어(plein air).
화가들은 아뜰리에가 아닌 들판에서 직접 대상을 그렸습니다. 1841년, 주석과 알루미늄으로 합금으로 이루어진 튜브형 물감이 발명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최초 발명은 1841년 '존 고프랜드'에 의해서, 이후 스크류 형 뚜껑 등이 개선 된 후 물감 회사였던 '윈저 앤 뉴튼'에서 대량생산)
영국의 사실주의, 월터 랭글리
프랑스에 바르비종파가 있다면 영국에는 '뉴린파 Newlyn School' 가 있습니다.
월터 랭글리(Walter Langley, 1852 - 1922)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버밍엄에서 태어난 그는 콘월의 뉴린이라는 조그만 어촌 마을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밀레가 농민화가라면 랭글리는 어민화가라 할 수 있을것 같아요. 1880년 처음 뉴린을 찾은 랭글리는 어촌과 어부들의 삶에 영감을 받고 다음 해에 모든 가족이 이주하여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그가 1922년 사망할 때 까지 뉴린과 인근의 팬잔스에서만 생활하며 어민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습니다.
랭글리 역시 밀레가 그러했듯 어민들을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롯이 그 삶 자체에 녹아들려 했어요. 그의 그림에는 어촌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히 담겨 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어민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갔는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느 어촌이 그러하듯, 배가 들어오면 잡은 생선을 부두로 옮기고 나누는 등의 일은 부녀자들의 몫입니다. 기다리는 무료함을 잊기 위해 투박한 손으로 뜨개를 뜨고 있지만 시선은 멀리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랭글리가 얼마나 이들 가까이서 그렸는지 마치 그림 속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슬픔은 끝이 없고' 입니다. 저는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 듯한 절망을 느꼈어요.
어쩌면 젊은 여인의 남편은 배를 타고 떠났다가 조난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껏 얼굴을 감싼 두 손이 애처롭기 그지 없어요. 옆의 노파는 그러한 그녀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손을 얹어 들썩이는 등을 쓸어 줄 뿐입니다.
회관으로 쓰이는 우체국 앞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간밤에 배가 조난 되었고, 이 여인의 남편 역시 그 배에 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또 너무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아이는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던 것 같아요. 길을 배회하던 아이는 노파의 손에 이끌려 잠시 이곳에 들린것 깉습니다.
두 발은 의자에 앉은 채 바닥에 닿지 않은 만큼 아이는 작고 야위었고, 그것이 내린 그림자는 유난히 길어 보입니다.
풍선 처럼 양볼을 한껏 부풀려 뜨거운 수프를 후 하고 불어 먹는 모습을 두 여인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채화 그리고 여인들
랭글리의 그림은 따듯합니다. 유화 물감이 주는 무거운 질감에 비해 수채 물감은 확연히 가볍고 밝음이 느껴집니다.
네, 그는 주로 수채화를 그렸어요. 아무래도 플레인 에어, 즉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많은 도구가 필요하며 상대적으로 작업시간이 긴 유화 보다는 수채화가 여러 면에서 적합했을 거예요.
그의 그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수채 물감이 주는 질감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건 바로 그림 속 '스토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속 주인공은 바로 여인과 아이입니다.
랭글리를 비롯한 뉴린파 사실주의 화가들은 주로 부두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실제 배를 타고 나가 어부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흔들리는 배에서는 이젤을 세우는 것 조차 안될 테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게 됩니다.
특히 그의 그림에는 노파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해요. 그들은 사건을 가만히 응시하거나 조용히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어떨 땐 그들의 시선이 공허히 먼 곳을 향해 있기도 해요. 마치 '이 일을 이미 모두 겪었다' 라고 하는 초월자 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소박한 사치
힘들고 고단했던 부두에서의 하루가 끝이나면 짧지만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찾아 옵니다. 이럴 땐 역시 독서만한 것이 없겠지요?
그림 속 여인들은 책 속의 내용들을 음미하듯 잠시 고개를 들어 상상을 하기도 하고, 문장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한껏 빠져 있기도 합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도 보이는 것 같아요. 그녀들에겐 하루의 노동을 잊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림 속 꽃들에게 시선이 닿습니다.
여러 종류의 꽃을 조화롭게 섞어 꽂는 것을 어레인지먼트라고 합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재배되었기 때문에 중산층의 여느 가정에서 이러한 플라워 어레인지먼트를 거실에 하나쯤 두곤 했답니다. 하지만 랭글리의 그림들에서는 화려한 꽃들은 찾아 볼 수 없어요. 서민들의 가정을 그렸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요.
꽃은 투박한 화병에 소담히 담겨 있네요. 이 마저도 그림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듯 없는 듯, 소심히 오브제로 사용된 모습입니다.
이 꽃의 이름을 화가는 기록해 두고 있지 않지만 저는 '제라늄' 일 거라 생각해요.
제라늄이라 불리는 펠라고니움
제라늄(Geranium)은 쥐손이풀과(Geraniaceae)에 속하는 다년생 또는 일년생 식물로, 아름다운 꽃과 독특한 향기로 인해 정원, 화분, 관상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제라늄"이라 불리지만, 원예에서는 펠라고니움(Pelargonium) 종과 구분됩니다. 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제라늄은 펠라고니움이 맞지만 오랜시간 제라늄으로 불렸기 때문에 바로 잡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저 역시도 우리에게 친숙한 제라늄이라 부르도록 할게요.
제라늄은 17세기 경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어 개량을 거듭한 후 사실주의 화가들이 활동했던 빅토리아 시기에는 거의 모든 영국 전역에 걸쳐 널리 재배됩니다. 특히 뉴린파가 활동했던 영국의 남서부 지역은 온화한 날씨로 제라늄이 자라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가격도 저렴하고 번식력도 좋았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에서도 창가 화분이나 집 밖에 걸어두는 행잉 바스켓으로도 많이 길러졌어요. 가히 빅토리아 시대에 국민 꽃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지금도 영국의 어디에서건 제라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영국에서 꽃을 공부할 때 학교 주변이며 마을 곳곳 어느 곳에나 피어있던 제라늄의 모습들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젖어 보았아요.
어때요? 그림 속 꽃과 사진들 속의 제라늄이 한껏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짬을 내어 책을 읽는 다는 것, 그리고 곁에 꽃을 둔다는 것 조차 서민들의 삶에선 사치로 여겨졌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들이 부릴 수 있는 최고로 소박한 사치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하기 까지 여겨집니다. 바쁘고 힘들면 가장 먼저 멀어지는 것이 책과 꽃이 잖아요.
저는 매일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임에도 나를 위한 꽃을 곁에 둔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꽃은 그저 일일 뿐이라는 슬픈 감정이 들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오늘 만큼은 꽃 몇 송이 놓여진 테이블에서 책을 읽는 소박한 사치를 누려보려 합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 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