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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Aug 21. 2024

13살 때부터 일을 하는 네덜란드

얼마 전 정원을 손본다고 정원사를 불렀다. 50대의 개인 정원 회사 사장님과 함께 온 조수 두 명은 13살이나 되었을까, 뽀얀 얼굴의 남자아이 둘이었다. 사장님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둘이서 연장을 찾고 기계를 다뤘다. 무려 커피도 커다란 컵에 설탕이나 우유도 타지 않은 블랙커피를 달라고 해 마시더라. 

돌아보면 네덜란드에 살면서 이렇게 전문가의 일을 옆에서 보조하는 청소년을 종종 봐왔다. 식당에서 계산을 하거나 서빙을 하거나, 오일장의 치즈가게 혹은 생선가게에서 일을 돕거나, 꽃집에서 주문을 받거나, 슈퍼마켓에서 진열대를 채우는 일을 하는 앳된 아이들 말이다.

여기는 법적으로 만 13살이면 일을 할 수 있다. 15살이 기준인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유럽에서도 낮은 편이다.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18살까지 일을 못하지만 다니고 있지 않다면 15살에 일을 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청소년을 고용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은 많다. 성장과 교육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혹은 도움이 되는 쪽에서 일을 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 가능 시간이 적고, 기계 옆에서 일을 할 수 없고, 알코올을 서빙할 수 없고 등 등이다. 반면 18살이 되지 않으면 일반 최저임금보다 낮은 청소년 최저임금을 받는다.


산업혁명기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과거를 반성하고 네덜란드는 1874년에 12살 이하의 아이들은 일을 하지 못하게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1900년부터 6살부터 12살까지 교육을 의무화했다. 지금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최고로 행복하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나라다. 그런데 왜 변성기도 안 되는 아이들이 일을 하는 걸까?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사기 위해 방학 때 하루 종일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많은 네덜란드의 아이들이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용돈을 직접 번다. 네덜란드의 부모들은 아이가 일을 하면서 책임감을 배우고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걸 일찍,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하고 싶어 한다.

미래에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공부가 가장 중요했던 내 학창시절하고는 많이 다르다. 나도 대학 때는 인턴십을 많이 해봤지만 그걸 중학교 때부터 했다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빨리 철이 들고, 더 독립적으로 자랐겠지 싶은 생각이 드니, 아무래도 이런 이유로 네덜란드의 문화가 만들어지나 싶다. 탄생 2개월부터 혼자 자고 부모와 아이가 원한다면 13살부터 직접 돈을 벌어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사는 나라니 말이다.


청소년이 일을 일찍 시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육제도와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는 중학교 때부터 (만 12살) 진로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학교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공부가 적성이면 가는 곳 (VWO), 실업이 적성이면 가는 곳 (VMBO), 그리고 그 중간 (HAVO)가 있고, 이다음의 고등학교도 같은 수준으로 나뉜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리고 실업이 적성이라면 14살부터는 교과과정의 일부를 이론이 아니라 실업을 배우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바로 일할 수도 있다. 인턴십이나 도제제도처럼 진짜 회사에 들어가 앞으로 할 일을 배우는 거다. 아마도 정원사를 따라온 아이들은 벌써부터 정원사의 길을 걷기로 하고 일을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과거 조선에 끼친 유교의 영향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 지속되는 것처럼 , 네덜란드에 칼뱅주의가 끼친 영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칼뱅주의는 16세기부터 유럽에 크게 유행이었는데, 네덜란드의 헌법이 칼뱅주의에 기반했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던 만큼, 일을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공부가 중요한 유교처럼 말이다.


그날 밤에는 남편하고 아이 방을 꾸밀 벽지를 준비해 뒀다. 그러고 보니 벽지를 바르거나 페인트 칠하는 것도 전문가가 다 따로 있는 나라인데, 우리가 집을 만들면서 만난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도제제도를 거쳤겠구나 싶다. 무려 중학교 때부터 현장에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 칠을 해보면서 말이다. 새삼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어린 나이에 평생직장을 고려해 진로를 고르고 일을 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렇게 경력이 쌓이니 시간당 임금이 샐러리맨과 비슷한 것이 불공평한 것도 아니라는 것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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