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집 이야기
암스테르담 근교에 집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후로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여기도 부동산 거품이 많고, 거품은 많은데 집을 찾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아주 치열해요. 정말 몇 개월간 '집을 살 수 있기는 할까'라고 자포자기하던 와중에, ‘헌 집’말고 ‘새 집’ (새로 짓는 집, 뉴바우, nieuwbouw라고 불러요) 을 사게 되었어요.
이곳의 신주택 구입 경험은 여러모로 유별나다는 생각인데, 그중에서도 환경을 생각한 집이라는 부분에 대해 얘기해볼까해요. 기왕 사는 것 친환경 집을 사는 게 좋게만 들리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상상 밖이었어요.
네덜란드의 사람들은 동물도, 자원도, 자연도 소중히 여기는 편이에요. 정책도 그런 행동을 더 장려하는 정책이 많고요. 근데 살면서 실제 체감되는 건 막연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환경을 위해 등골이 휘는 경우인데요, 예를 들면, 비싼 기름값, 자동차 가격, 통행료, 주차비, 자동차 소유세, 가스비, 전기세, 수도비, 쓰레기 처리비 등등이 있죠. 모든 네덜란드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무자비하게 세금 떼는 국세청이야 도둑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집을 짓는 것도 건설사는 까다로운 규칙을 지켜야 건축허가를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주택/아파트가 환경을 고려한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근래 지어지는 모든 집이 에너지 라벨이 A 이상이에요. 30년대, 20년대 집은 난방을 켜도 킨 것 같지 않은 F 라벨인 걸 보면, 사는 사람을 위해서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더 좋은 것 같죠.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는 에너지 라벨이 A 이상인게 당연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친환경 집이 마음에 안 드는 점, 불편한 점도 많더라고요.
1. 보이지 않는 에너지 - 지하수와 전기로 돌아가는 집
네덜란드는 몇십 년 후에는 집집마다 들어가는 가스를 다 끊어 버릴 계획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여기까지 오게된 여러가지 정황이 있어요). 그래서 이미 대체 에너지로만 돌아가는 새 집이 친환경인건 기본이고 훗날 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미래에 대비한 집이라나... 그래서 이 집은 지하수를 이용해 난방을 해요. 지하 깊이 있는 물이라 따뜻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고 하네요.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전기로 돌아가요. 그래서 요리는 인덕션으로 하고요.
좋은 점은, 이렇게 에너지에 신경 쓰니, 바닥난방 (여기서는 드물어요... 온돌문화 최고), 창문, 벽 구조가 단열이 잘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말로는 실내 온도를 항상 21도 정도 되도록 한다네요. 21도 정도면 겨울에 재킷이 없어도 살만 하죠.
아쉬운 점은 로망인 벽난로도 전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에요. 요새는 그럴싸하게 진짜 같은 벽난로가 많이 나와서, 난로의 온기가 느껴지거나, 진짜 같은 연기(물을 이용해 스팀을 뿜어요)가 나오거나, 홀로그램을 사용해 정말 불꽃이 튀는 것처럼 만든다는데, 아무래도 장작이 타는 아늑한 냄새와 진짜 온기랑은 비교가 되지 않죠. 그래도 나무를 태우며 공해를 일으키지 않고 굴뚝 관리에도 신경 쓸 일이 없는 장점이 있다네요. 정말 미래에는 모든 걸 다 스크린으로 경험하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이 지하수를 이용한 난방과 온갖 환풍 시스템 때문에 버리는 공간이 많아졌다는 점이에요. 정말 어마어마한 기계들이 들어가서 집마다 기계실만 2개에, 파이프가 너무 많아서 집 열쇠를 받은 후에 재공사를 해 기계실 중 하나를 다른 유용한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그러려면 자원이 낭비되는데, 건설사는 규정상 해야 할 것만 넣어두니, 이런 것까지 깊이 고민하지 않은 흔적이 보이죠. 정말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있어요. 소비자 마음도 생각해야 진짜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태양광판도 설치되어 나와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는데, 태양광 판으로 얼마만큼의 전기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요. 일단 햇살이 드문 나라인데...
2. 콘크리트 블록은 미리 만든 후 현장에서는 조립만
들리는 말로는 환경을 위해서 콘크리트를 현장에서 붓지 않고 다른 데서 맞춤형으로 콘크리트 벽을 만들어서 현장으로 가져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레고처럼 조립하다시피 쌓아 올려요. 아주 신기한 구경거리더라고요.
이렇게 지으니 콘크리트가 마르고 굳어서 부실 공사는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이에요. 대신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어요... 저희집이 42채 중 32번 째인데, 입주를 벌써 2년도 더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 콘크리트는 벽뿐 아니라 천장에도 활용되어요. 방음에도, 단열에도 좋은데 단점은 조명 다는 데 있었어요. 건설사는 자기네 이득을 위해서 아주 기본적인 조명 옵션만 제공해요. 그리고 옵션을 추가하거나, 조명의 위치를 바꾸려면 따로 비용을 내고 콘크리트의 디자인을 따로 해야 했어요. 조명 구조하기가 게 이렇게 비싸고 어려울 줄이야... 그래서 완성된 콘크리트는 구멍이 뻥뻥 미리 뚫려 나와 조립되었네요. (그나마 구멍도 한 줄로 맞추지를 않았다는...)
3. 재활용 - 할 수 있으면 있던 자재 다시 쓰기
기존에 있던 오래된 학교를 없애고 들어선 주거지라고, 학교 부수고 남은 자재를 재활용했어요. 각 주택의 주차 공간에 타일들을 그 걸로 쓰는데, 너무 낡고 예쁘지 않더라구요. 의도는 좋은데, 새 집 사는 사람들의 심리나 기대를 맞추지 않으니, 구색만 갖춘 게 아닌가 싶네요.
4. 샤워는 한 사람당 5분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물을 너무 아껴서 설거지할 때도 비누칠만 하고 물로 헹구지 않아요. 그냥 비누칠하면 깨끗하다고 생각해서, 비누칠 한 걸 천으로 닦아서 먹고 살아요... 그리고 목욕 문화도 없고요. 이 집은 물을 데우는 에너지가 지하수의 열기이다 보니, 가스처럼 바로바로 온수를 만들지 못 한 다더라고요. 그래서 보일러 사이즈가 작아서 (그나마 가능한 사이즈 업그레이드도 안 시켜주네요. 나중에 열쇠를 받으면 바꿔도, 건설사는 허가받은 대로 만들어야 한대요) 20L의 온수가 하루 허용치예요.
여기저기 찾아보니, 4 가족이 각 5분 정도의 샤워를 할 온수라니...앞으로는 찬물 샤워를 해야 하는지, 목욕은 어떻게 할지...뭐 살다보면 알겠지요!
5. 박쥐와의 동거
집을 사게 될 때 받은 엄청난 기타 조항 책자에 정말 다양한 황당 조건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박쥐집에 대한 계약 조건이었어요. 생태계의 일부인 박쥐나 새가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42채 가구 중 랜덤으로 몇 집은 지붕에 박쥐 집을 만들 거라는 조건이었어요.
그 당시가 막 우한 코로나가 박쥐에서 유발되었다는 뉴스가 많을 때여서 제발 우리 집은 아니길 바란다는 마음이었어요. ㅎㅎ 지붕에 작은 틈새를 만들어 박쥐가 둥지를 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경우에요. 박쥐 똥이 집 벽에 보이는 단점에 대해 들었는데, 장점은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다는 거니 일부러 박쥐집을 설치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이 정도면 공생일까요? 생소해서 놀랐지만 생각해 볼 수록 말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말고 모든 동물이 다 같이 살아야하니.
6. 네덜란드 태생 나무에 대한 집착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는데, 집 정원수 (집 정원을 둘러싼 헤지)를 반드시 네덜란드 태생 나무인 부켄하흐로 해야 하고 높이는 건설사가 준 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계약조건이 있어요. 만약 어길 경우 7천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야 한다니... ‘뭐 두고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약을 했는 (정원수 때문에 집을 안 살 수 도 없는 거고요), 이미 열쇠를 받은 집들은 그 악마의 계약(?) 때문에 많이 고생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60cm밖에 되지 않는 정원수 높이가 뛰어노는 아이들한테 위험하니 다른 나무를 심어 키를 높이려고 하니, 어떻게 알고 벌써 구청에서 경고장을 보내왔다나요. 구청의 집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더 공부해봐야겠어요. 도대체 왜일까요...동네가 다 똑같이 보여야한다는 미적 기준이 다 일까요?
그리고 온갖 나무를 심을 거라는 신주택 전개도에 대비해 실제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묘목은 바람에 불려 날려갈 것 같은 나뭇가지에요. 그나마도 다른 나무 (부켄하흐가 아니라 좀 떨어지는 하흐부켄이라는)를 제공했다니, 사람들이 다른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게 이해가가지요.
이렇게 환경을 위해서는 온갖 기술을 도입해도, 집은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구식이고, 인터넷으로 에너지나 수도, 조명을 조절하는 '스마트홈' 콘셉트는 아직 멀은 걸 보면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강국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친환경 나라가 되고 싶어하는 구나 - 뭐 그런 차이가 느껴져요.
그리고 아무리 정책으로 친환경 허가구조를 만들어도 살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만든 경우에는 재공사를 유도하고 결국 더 많은 자원을 쓰게 하는 점도 있고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이 생경하고, 불편하고, 더 비싸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환경에대한 고려가 부족하게 살았기 때문일까요?
환경을 위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엔지니어링, 박쥐까지 생각하며 잘하려는 모습에 저도 집 짓는 게 공해구나,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최대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만큼 불편해도 그 불편함이 익숙해지고 당연해지길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