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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전원주택을 사다

by 이나앨

새로 산 신단지의 전원주택 가까이에서 여러 가지 공사를 관리하겠다고 근처 (구) 요양원에 이사온지가 한 주. 아직도 열쇠 받으려면 몇 개월이나 남았지만, 이렇게 먼저 우리가 살 동네에 와서 익숙해지려고 해. 막 이사하고 겨우겨우 적응하는 중이지만, 오늘처럼 하늘이 화창하고 깨끗한 일요일 나든 (Naarden)의 청아함이 참 좋아요.

딱따구리 소리, 새소리 들리는 일요일 아침. 집들이 다 똑같지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든 물길이 오리나 백조가 살 수 있는 곳이 되고 마을의 풍경도 더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쩐지 서양사람들은 고층아파트가 아니라 전원주택에서 살고, 넓은 정원에 자연이 어우러진 조용한 곳에 널찍하게 살 것 같지요. 그리고 집들도 그렇게 보이고. 아마 미드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의 첫 집으로 네덜란드 부촌 나든 (Naarden)에 정원 딸린 집을 샀지만, 가끔 남편하고 "우리가 왜 네덜란드에 집을 샀지?"라고 되묻게 될 정도로 여기는 가격대비 공간도, 디자인 자유도 좀 덜한 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땅이 해수면 아래라서,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모두 물에 가라앉을 (...) 그런 곳이지요.


네덜란드는 땅이 좁은데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의 전원주택들이 한 지붕을 두고 두 채, 세 채가 함께 있는 형태입니다. 두 채가 붙어있으면 아예 용어가 "Twee onder een kap" (트베온더에인캅) 직역하면 한 지붕 아래 두 개에요. 세 채가 붙어있으면 "Drie onder een kap" (드리온더에인캅), 완전 "한지붕 세가족"이지요. 세 채 있는 집의 가운데 집은 "Tussenhuis" (투슨하우스), "사잇집" 정도인데, 그 말이 꼭 "낀 집" 같습니다. 그리고 세채 이상이 하나의 지붕 형태에 있으면 "Rijtsehuis" (라이쳬스하우스)라고 불러요.


그래도 아파트랑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원주택을 한 지붕 아래 붙여놓은 거라, 모든 가구가 정원이 있어요. 사실은 여러 채의 집인데 지붕 하나를 얹은 거라고 보면 돼요. 좁은 나라에서 대부부분의 가족들이 애들이 뛰놀고 햇볕을 쬘 정원이 있는 집을 꿈꾸니 이런 식의 주거형태가 나온 것 같습니다.

데칼코마니인 '한지붕 두가족 (?)' 스타일 집들인데, 왼쪽 집은 한 가구만 벽돌을 새 걸로 갈아서 얼굴색이 반반 다른 거 같죠. 오른쪽 집은 가로등이 기가 막히게 가운데 서있네요
'한지붕 세가족 ' 구성 주택의 제각각 앞정원. 밖에서 보기는 별로인데 내 집 내 맘대로 해야지 어쩌겠어요~

어떤 집들은 한 지붕 세 가족인 게 더 눈에 띄게 보이고, 어떤 집들은 지붕을 요리조리 잘 만들어서 대문을 세어보지 않으면 붙어 있는 집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요.


집을 사려고 할 때 넓은 주방, 넓은 정원, 드레싱 룸, 화장실, 창고, 드라이브웨이까지 꿈꾸어 봤지만 안타깝게도 이 곳은 네덜란드. '낮은 땅, 좁은 집'이 현실임을 곧 알게되었지요.

들리는 말로는 유럽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라고 하더군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인구밀도가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하네요? 밀도가 우리나라는 1323명/1제곱미터, 네덜란드는 1183/1제곱미터... 이런 걸 미리 알았더라면 네덜란드에서 전원주택을 사려고 알아볼 때 "꼭 단독주택을 살래"라는 헛 된 기대는 안 했을 거에요.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네덜란드도 약간 수도권 개념하고 비슷한 란스타드(Randstad, 암스테르담-헤이그-로테르담-위트레흐트)가 있거든. 이 도시들과 그 주변은 더 인구밀도가 높아요.

그 외는 사실 시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고, 그만큼 가격 대비 소유할 수 있는 땅이 커서, 모든 게 가능한 건 사실이지. 그렇다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수도권 밖에서 살기는 힘들어요. 여기도 교통체증이 있고, 아무리 워라벨이 있고 플렉스 아워가 있어도 회사에 코빼기는 비춰야 하거든요. 여기서 보통 농부들이 다 백만장자라고 하는 이유도 이런 시골에 소유한 땅이 엄청 많아서래. 정말 소들이 사람보다 더 넓게 편하게 산다고 해야 할까요.

색이 검을 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 우리가 사는 나든근처도 포함된 듯?

결국,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주요 도시나 근처 지역구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살 수 있는) 단독주택을 찾기가 힘들어요. 모두 원하는 게 같으니 가격도 계속 올라가고요. 그래서 독채는커녕 암스테르담의 라이쳬스하우스도 십억이면 싼 축이니 서울의 강남에 비교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부로 Funda.nl에서 매물을 알아보니 암스테르담의 단독주택은 보통 배 형식의 수상주택이네요... 33평 수상주택이 10억이네. 여기에 프리미엄 한 10-20% 붙어요

네덜란드 부동산 정책은 내 집 마련을 장려하는 축이라고 해야할까 (어느 나라 정부가 안 그러랴만은). 대출금리가 많이 낮아져서 1% 대이고 현금이 없어도 다 융자로 살 수 있거든요. 여기에 저축금리가 마이너스에, 저축한 만큼 세금도 내야 해서 부동산 거품이 엄청 끼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예 집 마련이 불가능한 게 아니고요. (그리고 외국인도 살 수 있어.)

네덜란드 사람들은 종종 자기 집에 이름을 붙여줘. '닻'이라는 집 (닻: Ancker 영어로는 Anchor)

우리가 산 집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에요. 그리고 여느 다른 집들처럼 뒷 정원이 앞 정원보다 크고, 3층으로 공간을 분리해둔 구조이고요.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침실들, 3층은 빨래하는 곳으로 보통 쓰는데 아마 100이면 100 어느 집이나 다 똑같을거에요. 사실 전 한 층에 다 있는 구조가 편한데, 넓게 만들지 못하고 위로 쌓는 것이 인구밀도가 높은 이 나라의 현실인 걸요.

막 완공된 신단지의 독채 (우유곽 같지) 그리고 한지붕 두가족 집들. 이게 '30년대 스타일'로 요새 인기라나..

여기는 남들하고 다 똑같이 해야 하는 정서가 있어. 튀지 말라는 건데 네덜란드 표현 중에 "평범히 해, 그게 이미 미친 거야" (Doe maar gewoon, dan doe je al gek genoeg/영어로 Just act normal, that's already crazy enough)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42채 가구의 신단 지도 집집마다 아주 비슷하게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하다 못해 정원에 심을 정원수도 나든 시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7천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야 해요. 집 계약할 때 그것까지 계약조건이었어요. 공산주의가 따로 없구나 싶을 정도지요. 모든 집들이 조화롭게 비슷하게 지어지면 밖에서 보기 좋은 장점은 있지만, 나무 심는 것도 시의 허락과 동네 주민들이 허락을 받아야한다니, '일획성에 대한 강요'같지요?

뭐 그렇게 다 통일을 해서 그런지, 나든은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중산층 동네 같은 느낌이고요. 그리고 집들이 비교적 더 크고 공간도 많아서 다른 동네보다 더 "잘생긴" 느낌이 있어요.


재미있는 건, 가끔 나와 노는 아이들을 보면 보통 다 금발의 네덜란드 아이들인데, '한 지붕 두 가족'(?)인 우리 집 지붕 아래는 한국 사람인 나를 비롯해, 한국에서 입양된 네덜란드 사람이 살게 되었어요. 참 신기하지요?

거리를 걷다보면 앞 정원에 국기대를 꽂은 집이 곳곳 보이는데, 열쇠를 받고 우리 집이 진짜 우리 사는 집이 되면, 네덜란드 국기와 함께 태극기도 하나 만들어 꽂아둘까 싶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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