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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Aug 23. 2022

집을 완성하는 건 마라톤이구나

페인트 칠이 거진 완성되고 신이 났던 때로부터 벌써 몇 주가 지났습니다.  산 넘어 산 같이 참 집을 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말이 맞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집 생각, 집을 완성하는 일을 하면서도 다음에 해야 할 일 생각… 끝없이 이어지는 할 일 더미를 처리하면서 이러다 ‘번아웃’이라도 오는 건 아닌가 했습니다. 새집 짓기 번아웃이요.


하고 싶은 대로 착착 일이 완벽하게 되어주면 참 좋을 텐데요. 바닥재도, 페인팅도, 조명도, 뭐 하나 빨리, 정확하게, 꼼꼼하게 되는 일이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조명 설치는 6월부터 시작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을 끝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다른 일을 시작해주면 좋으련만. 남편 말로는 사람들이 다 바쁘고 여러 계약을 뛰기 때문이라는데요. 솔직히, 한국 사람인 제 기준에서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욕심이 있다면 이렇게 할까 싶습니다.


그간 공들인 큰 아이템들을 정리해봅니다.

 화장실

빛이 들어오는 화장실~ 욕조에 빼꼼 나온 긴 꼭지는 매립식샤워호스 입니다

그냥 파이프 구멍만 뚫려져 있던 상태에서 멀끔한 화장실이 되었습니다. 좁은 구조를 활용하기 위해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레이아웃을 골랐어요. 트라벌틴 (Travertine) 돌 같은 타일을 썼는데요, 실제 돌은 아니고 타일에 무늬를 프린트 한 거라 가격이 비싸지 않았습니다. 큰 타일이 미니멀하고 깔끔한 느낌이라 90x90 사이즈를 썼구요. 미니멀한 느낌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도관을 매입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닥재

차분한 느낌의 마몰레움

-  1층은 마몰레움 (Marmoleum)이란 걸 깔았습니다. 주방이 나무라, 나무 바닥재는 깔기 애매해, 요새 유행하는 노출 콘크리트 같은  힛(Gietvloer)을 하고 싶었습니다. 친환경이기도 하고, 한 번에 재료를 부어 굳히는 공정이라, PVC장판의 금/사이가 없어, 인테리어 바닥재로는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새 건물이 마르는 과정에서 좍좍 금이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유채꽃 오일 같은 친환경 소재로 암스테르담 근처 공장에서 만들어진 커다란 마몰레움 장판을 깔았습니다. 노출 콘크리트 느낌도 살리고 실용적이라서요. 그런데 흔하게 쓰는 게 아니라 그런지 설치 퀄리티가 낮았어요. 그래서 환불까지 받을 정도로 골치를 썩인 아이템입니다.

-  2층, 옥탑은 저렴하고 관리가 편한 벨기에의 라미네이트 퀵스텝(Quickstep)을 설치했습니다. 연필 자국이며 얼룩이 싹싹 닦일 때마다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역시 원목보다는 아름다움 면에서 떨어지지만 가격 대비 효용과 실용성에서 최고입니다.  


페인팅

남편이 공들여 작업한 계단 페인팅. 이제 레일 남았습니다. 이렇게 자국이 남을 때마다 수선하고 있습니다.

- 커다란 면적은 스프레이 페인팅을 했습니다. 저희가 고른 페인트는 매트한 질감인데요. 이 둘의 콤보라 그런지, 너무너무 예민해서 옷깃만 스쳐도 얼룩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 팁 한 가지 – 이렇게 묻은 얼룩은 지우개로 지우는 게 최고더라고요. 스펀지에 물을 묻혀 꼭꼭 찍어 없애라고 하더만, 그러니 오히려 페인트가 벗겨집니다. 웬만한 얼룩은 지우개로 삭삭 지우고, 아니면 붓을 들고 점묘화 식으로 페인트를 콕콕 덧칠해주고 있습니다.


조명

레이저를 쏴서 정확하게 설치한다는데 엉뚱한 데에 드릴을 해서 또 고쳐야 했습니다…ㅋㅋ

-  벨기에의 건축 조명 브랜드인 모듈라 (Modular)를 대부분 썼습니다. 특히 트랙 시스템이 기다란 집의 구조에 유용하더라고요.

-   그리고 가구랑 조명 욕심이 있어서 여기저기서 오랜 시간에 걸쳐 산 조명을 다는 중입니다. 역시 집은 조명빨이 있네요.


붙박이 장

전문가 분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크~

-   6000유로를 주고 가구 만드는 사람을 써서 원하지 않는 장을 짜느니, 그냥 아이키아 팍스(PAX)를 사서 붙박이처럼 만들어보자 했더랬습니다. 비디오를 보면 쉬워 보이죠…. DIY라고는 한 번 해보지 않은 남편이 공을 들여 완성해 페인팅까지 칠하고 나니, 정말 붙박이 장이 생겼습니다. 3분의 1 가격에, 영혼을 갈아 넣은 기념 거리가 생기니, 고생했지만 보람이 있네요.  


이 몇 주간의 고생을 무색하게 한 것이 정원입니다. 정원만큼은 매일 다르게 변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마음이 설레고, 편하게 해 주었어요.

저희는 소나무와 바위, 단풍나무, 돌, 잔디가 어우러진 동양적인 정원을 마음에 두고, 네덜란드의 일본식 정원 전문가를 찾았는데요. 연필로 그린 스케치랑 그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고, 아무 설계도도 확답도 없이, 그냥 믿는 식으로 시작한 게 정원입니다. 바위 25톤을 들여온다는 걸 15톤으로 줄이고 나무가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겠는 블랙박스였어요. 그만큼 도대체 뭘 기대해야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 반이었는데요.

바위에 자리잡은 고양이님 ㅋㅋㅋ

공을 많이 들인 저희 보물 중 하나입니다. 이 맘이 어찌 옆 집 고양이한테도 있는지, 하루에 한 번 씩 방울소리 내며 놀러 오네요. 고양이 손님이 바위에 자리를 잡고 노는 모습에, 돌 징검다리 위로만 걷는 모습이 너무 웃겨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집을 집으로 만드는 건 뭘까요?


침대를 옮기고 청소를 한 후, 새로운 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을 때만도 아직 ‘우리 집’이라는 느낌보다는 끝내야 할 숙제 같았는데요. 요양원 집에 (전편 참고) 인터넷이 갑자기 끊겨 새로운 집에 부랴부랴 홈 오피스를 설치해 살림살이를 거의 옮겨 왔습니다. 아직 주방이 설치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주방 서랍에 들어갈 물건들은 박스에, 밥은 요양원 집에서 먹는 이중생활인데요. 밥 먹으러 그 이전 보금자리에 돌아가면, ‘여기가 어디’, 하는 느낌입니다. 살던 집이 이질적인 만큼, 반대로 새 집의 정원에 앉아 해를 쬐고 있자니, 이제는 믿거나 말거나 우리 집이 생겼구나, 싶네요…. 집을 산지 2년 도 후에 말입니다.

이제는 텅빈 6개월 임시 숙소. 식사공간이 필요해 의자랑 테이블은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멀리서 울타리 밖으로 구경만 할 수 있었던 그 집 같지 않던 집이, 보금자리가 된 연유는, 우리가 이곳에서 살림인으로 생활하는 시간 때문이고, 페인팅 수리며 붙박이장까지 우리 손을 탄 공간이기 때문이고, 기억이 깃든 우리 가구와 살림살이가 있기 때문인가… 싶다고요. 물건보다도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집을 집답게 하는 건가 싶어요.

아직 창문을 가릴 커튼이 안 와 “인형의 집”처럼 안이 훤하게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네덜란드에 정착을 했나 봅니다. 8년여라는 긴 시간 동안 언젠가 떠날 곳으로 생각했어요. 네덜란드 남편과 가족이 생긴 후에도, 제3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요. 일하는 곳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영어를 쓰고, 하는 일도 네덜란드와는 별로 관계가 없으니, 저는 네덜란드에 살면서도 나름의 버블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이 생기고, 그 새 집에 나무를 심고 (나무의) 뿌리를 내리니, 갑자기 네덜란드에 정착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네요. 그 버블 밖으로 한 발 내디딘 것 같아 이상합니다.

이곳이 정말 오래도록 지낼 “진짜” 우리 집이 될까? 10년, 20년 살 공간이 될까? 이사 갈 때 15톤의 바위에는 정이 들어버렸을까 (ㅎㅎ)? 하도 이사를 많이 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보지 않는 이상 모르겠죠. 이런 새로운 기분도 집 짓는 과정이 주는 선물인가 봅니다.   


휴가를 가기 전 남은 2주간 또 다른 야심작(?)인 주방을 설치합니다. 주방이 들어오고 나면 드디어 이삿짐도 훌훌 털어버리고 요리도 하고, 좋겠어요. 그리고 휴가를 다녀온 후로 2차 공사 시작입니다. 넵, 끝나지 않네요. 옥탑 화장실 공사와 창고 레노베이션이 커다란 아이템들입니다. 주문한 가구도 12월에는 올 것 같구요 (…)

독일에서 오신 주방설치기사님들~ 또 박스 천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박스 멀미, 저는 나사 멀미가 생겼어요 ㅎㅎ

집을 완성하는 건 “빨리빨리”가 되지 않네요. 엄청난 참을성과 아량과 쉬엄쉬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걸, 알지만, 그렇게 안 되는, 그런 일입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온 게 감사합니다. 특히 집에 앉아 저희가 좋아하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면, 2차 공사도 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럼 아직 번아웃은 아닌가 봅니다 :-)

창문으로 보이는 지붕짚이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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