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도 누군가에게는 취미일까
새로 지은 집의 열쇠를 받은 지 한 달.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페인트 작업이 (거의) 끝난 조금은 사람 사는 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간 단계별로 셀프 웨딩 준비를 매일 하듯이 할 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외주를 줘서 업무처럼 하는 게 아니라, 일일이 사람을 찾고, 하루에 서 너번은 공사중인 집에 가서 점심도 드리고 말도 나누고, 말장난도 하고요. 그게 네덜란드 식 정인 거 같은데요. 옆집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폴란드, 불가리아 사람들을 (그것도 주말에) 써서 하더라고요. 뭐 주말에도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옆집에 비교하면, 우리가 너무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완성이 되어가는 집을 쓸고 닦고 하는 과정에 애착이 생겨 요새는 집 생각에 출장도 빨리 끝내고 오고 싶습니다.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1. 하자 부분을 건설사가 빨리 고칠 수 있도록 연락하기 - 보수받으려면 아직도 한참입니다~
2. 작업이 시작될 수 있게 세팅하기 - 간이 화장실 두고, 공사장 용 쓰레기 처리 박스 두고, 바닥에 깔개 깔고, 창문마다 마스킹 테이프 붙이기, 환기구 같이 작업하는데 걸리적거리는 장치들 떼어내기
3.1. 전기선 배치 - 전기공은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정말 어렵게 구한 전문가분이 봐도 뭔지 모르겠는 전선들을 싹 갈아주셔서 이제 버튼 6개가 아니라 1개로 컨트롤이 가능해졌습니다.
3.2. 구조 바꾸거나 만들기 - 목수분이 벽에 창문을 내고, 화장실 구조를 만들고, 장식용 천장을 만들고 하는 일을 맡아 주셨습니다. 저희는 무지막지하게 대충 지어진 기계실을 화장실로 바꾸려고 해서, 일이 좀 더 커졌어요. 거기에 자꾸 하고 싶은 건 왜 느는지, 문 앞에 옷장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같이 일한 목수분은, 남편의 부모님부터 항상 함께하신 분인데요. 꼼꼼하고 정확하시고 재밌는 분인데, 갑자기 아파지셨어요. 목수일은 다른 사람을 운 좋게 구했지만, 남편 가족의 친구인 그분의 건강이 걱정이 됩니다.
4.1. 벽에 플라스터링 하기 - 벽에 석회(?)를 발라 평평하고 고르게 하는 작업인데요, 이렇게 하면 페인팅을 할 수 있다네요. 저희가 찾은 분들은 목수분처럼, 남편의 가족이 항상 찾는 전문가들이신데요. 그중 한 분은 태권도를 배우셨다며 잡담시간에 한국 이야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얼마나 멋지게 작업을 하셨는지, 오는 사람마다, 정말 예술 작업의 경지라고 하시네요. 일일이 직접 파우더를 물에 섞고, 260cm 높이의 온갖 벽마다 평평하게 바르고, 코너 작업까지 하시는 데, 정말 힘든 일이지만 왜 '유러피안 플라스터링 챔피언십'이 있는지 이해가 갈 정도네요. 디테일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4.2. 타일 붙이기 -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집은 변기와 그 외 화장실을 따로 두어요. 물론 공간의 활용도 면에서는 좀 덜 이롭지요. 사실, 세면대가 없애 양치를 주방에서 해야 한다거나, 계단이 가파르다거나 하는 등, 공간 활용에 있어서 완전 짠돌이인 네덜란드 사람들인데요. 그래도 변기실(?)과 그 외 화장실을 따로 두는 만큼 ,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변기실 2개, 그리고 화장실 1개 타일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타일 하시는 분도 무늬를 맞추어서 아름답게 잘 꾸며주셨어요.
5.1. 타일 사이를 막고, 욕조, 세면대, 변기 등 장착하기 - 감동적이었습니다. 물을 틀었는데 물이 나오더라고요! 당연한 건데도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타일 사이만 막았는데도 너무 예뻐져서 이때부터 집이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5.2. 페인팅 칠하기 - 샘플을 7개도 넘게 사서 정말 열심히 비교하고 따져봤습니다. 그렇게 고른 저희 색은 2 종류인데요. 원래 간단하게 한 가지 색으로만 다 칠하려고 하다가, 악센트 컬러를 하나 주면 좋겠다 싶어서 2개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페인트 하시는 분들이 직접 그 색을 만들어서 가져와요. 컴퓨터로 다른 브랜드나 회사의 색을 읽어서 똑같이 만든다네요. 아주 첨단인 것 같은데, 동네 DIY샵에서도 뚝딱뚝딱 만들어주더라고요! 칠이 끝나고 나니, 기본 흰색 계열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다행입니다. 다른 색은 생각보다 너무 밝게 나와서 구분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다가오는 7월과 8월에는 바닥재 까는 작업, 주방 넣는 작업, 창문에 블라인드 다는 작업, 정원 공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없는 가구도 좀 채워야 하고요. 마무리되지 않은 페인트칠도 마저 해야 하고요. 오늘은 블라인드를 보러 가고, 가구를 보러 3-6군데 가게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체력이 따른다면...).
이렇게 손수 다 하다 보니, 네덜란드 사람들의 집 가꾸는 취미 산업이 눈에 보이네요. 자재도, 인건비도 비싼 이유에는 그만큼 사람들이 원하니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요? 동네 마다 있는 DIY샵들에는 합판부터 꽃병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살 건 정말 끝이 없네요. 드릴, 나무 가는 샌딩 머신, 정원을 가꿀 때 필요한 도구들...
사람을 써야 하는 모든 일들이 세분화되어있고, 뭘 한 가지 도맡아서 하는 회사가 없어요. 제품 종류마다 회사와 브랜드가 다른 건 기본이고요. 용역은 또 다 따로 찾아야 합니다. 계단합판, 커튼/블라인드, 주방, 화장실 브랜드 다 천차만별에 다 각각 전문가를 찾아 써야 해요. 그래서 발품도 많이 팔고, 전화도 많이 걸고, 견적도 많이 비교해보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서 가격도 좀 더 저렴한 곳을 찾고, 딱 원하는 디자인을 찾게 되는 거겠죠? 아니면 큰돈을 주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용역업체를 써야 하는데, 그렇다고 또 내 마음을 헤아려 취향에 똑 드는 걸 (싸게) 해주는 게 아니니 까다로운 저희 커플은 결국 이렇게 사서 고생인가 봅니다. 저희는 손재주가 없어서 그나마 전문 용역을 쓰지만, 친구 한 명은 화장실을 직접 개조한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게 아끼는 돈도 돈인데, 그 솜씨가 더 놀라워요. 그 친구가 항상 하는 말이 "moneky see, monkey do"라고 아버지가 핸디맨이셔서 보고 자라면서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참에 저희도 원숭이처럼 (...) 좀 보고 배워두면 쉬운 건 직접 고칠 수 있으니 좋겠어요.
셀프 웨딩을 할 때 직접 웨딩드레스를 골랐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도 정말 샵을 몇 개를 돌아다니고, 인스타와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루 몇 시간씩 하며 정성을 들였는데. 그만큼 정성을 들인 게 주방입니다. 저희는 결국 독일까지 가서 주방을 샀습니다. 무엇보다 네덜란드보다 가격이 최소 20%나 저렴해서였어요. 그리고 서비스도 더 좋았고요. 이 시골 독일 마을은 이렇게 주방을 사러 온 네덜란드 사람들을 위해 네덜란드 말을 쓰고 네덜란드에 광고를 하더라고요. 무엇을 찾든 인터넷 어딘가에는 그 무엇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렇게 한 우물만 파는 회사들이라 그런지, 제품의 질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문화의 영향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쉽게 될 것 같은 평범한 디자인이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으로만 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안 된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정말 원하는 것을 찾는다면 벨기에, 독일까지 가게 될 수 있고, 생각했던 예산보다 훨씬 더 지불해야 할 수 도 있고요. 그리고 그렇게 자꾸 돈이 나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쉽고 빠르고 실용적이고도 아름다운 인테리어,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지지요.
시부모님은 정기적으로 벽돌을 갈고,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정원을 가꾸고, 창문을 닦고 하시는데요. 이렇게 마련한 '우리의 집'을 반짝반짝 가꿀 생각을 하면......
...... 벌써 지치긴 합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