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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전원주택 시공부터 인테리어까지

이제는 우리집!

by 이나앨

남편이 원하는 대로 암스테르담의 복잡함은 뒤로 하고 우리만의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로 정한 지 3년도 전이네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든의 신주택 단지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넘는 건축기간을 지나 열쇠를 받은 게 작년 6월이에요. 지난 3년 간 정신없이 달려온 네덜란드 신주택 경험기... 드디어 집 다운 집에서 편하게 살고 있자니, 참 열심히 산 보람이 있습니다 ㅎㅎ


그동안의 쌓인 글입니다


이 시리즈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마 집이라고 받은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건축물을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6월부터 10월까지 정말 힘들게 집다운 집을 갖추느라 거의 번아웃이 왔었죠. 정원 땅 다지는 것부터, 화장실 및 주방 배관까지, 정말 기초라고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커피머신은 어디 둘지 사소한 것까지 (특히) 남편과 제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네요.

RORB5528.JPG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 상태 ㅎㅎ

그리고 이렇게 돌아보며 여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까스로 부킹 한 타일러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12월 크리스마스 전에 겨우 끝난 옥탑 화장실 설치, 이제 좀 쉬겠다 싶으면 또 일어나는 문제 같은 게 역시 전원주택 다웠어요. 그 와중에 나든 구청(?)에 컴플레인한 것도 3건이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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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과정... 건축의 과정은 참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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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파이프와 콘크리트 말고 없었던 기계실에 세탁실, 샤워실,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실은 아직도 못 한 게 좀 남았습니다. 거실에 진열대와 벽난로를 넣는 것, 옥탑에 수납공간을 늘리는 것, 창고를 개조하는 것... 좀 간단한 일은 아니죠. 역시 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마라톤인가 봅니다. 그래도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뭐 몇 년 안에 하면 되지’, 이런 기분이에요. 집을 짓는 것 역시 아무리 힘들었어도, 돌아보면 추억이고, 아무리 피곤해도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고 배우게 된 것 같네요. 전원주택을 사고 지으면서 느낀 제 경험을 요약해 봅니다. 네덜란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서요.


1. 장기적 관점으로 집 고르기 - 친환경/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는 집을 구하는 게 투자면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면에서도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가스비/전기세가 불안정한 시기는 앞으로도 더 자주 올 수 있을 것 같고요. 환경을 위해서도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지은 집, 연료비가 줄 수 있게 효율이 좋은 자재를 쓴 집, 태양광이나 지열을 이용하거나 할 수 있는 곳에 자재를 재활용한 집이라면 더 좋겠죠. (네덜란드는 머지않은 미래에 집들에 들어가는 가스를 차단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처음에 걱정한 박쥐는 없던 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일 쿼터가 정해져 있는 따듯한 물 보일러도 한 번도 문제라도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친환경 주택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


2. 바로바로 컴플레인하기 - 건설사나 구청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응대를 해주더군요. '원래 이런 건가, 뭐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한 치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이야기해 보세요. 이야기한다고 손해 가는 것도 없습니다. 저희 집 앞 물 (개울가 같은 콘셉트이에요)에 녹조가 끼었는데, 여름에 더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기다린 게 해가 바뀐 2월까지 그대로더군요. 다른 집들은 괜찮았고요. 직접 망을 사서 걷어낼까 하다가 남편이 구청에 컴플레인하고, 또 한 번 컴플레인하니까 (자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 2주 후에 와서 수로를 막고 있던 흙과 돌덩이를 청소했습니다. 그 후로는 녹색이끼가 사라졌어요!

IMG_0825.JPG 이 백조들이 녹조를 다 먹어주었으면 하는 소망 (?) 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ㅎㅎ

3. 프로젝트 매니저 구하기 - 네덜란드에서 집을 짓거나 인테리어를 하는 게 더 힘든 이유가, 업자를 하나하나 다 따로 구해야 해서인데요. 예를 들어 화장실 공사를 할 때 하물며 타일 시공하는 사람과 실리콘으로 물 안 새게 막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알아서 구해주고 일정을 조율해 줄 믿을 만한 매니저가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4. 로봇 청소기 - 신세계입니다. 1층에 하나, 2층에 하나 둘 정도로 정말 요긴해요. 저희가 쓰는 제품은 로보락 진공청소+물청소 제품입니다. 전원주택 관리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청소인데요, 그나마 바닥청소는 이 친구들(?)이 해주고 있어서 한 시름 덜 합니다.

IMG-0766.jpg 6개월 기다림을 거쳐 도착한 의자까지 넣어 이제 예뻐진 식사공간입니다~

5. 스마트홈 - 조명을 핸드폰으로 관리하거나 조명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이렇게 편하고 좋을지 몰랐습니다. 특히 밝기를 조정하는 디밍 (dimming) 기능은 설치비가 비싸 많이 고민한 후 아기방에는 넣지 않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게 아기방이 아니었나 싶네요. ㅎㅎ 조명의 밝기를 시간과 기분에 맞추니 불이 너무 강하지 않고 은은해 좋아요. 그리고 알람시스템 같은 것을 핸드폰으로 조정할 수 있는 스마트 기능도 편리합니다.

IMG_0073.HEIC 샤브샤브 먹는 날 ~ 어둑어둑한 조명이 오히려 깊은 겨울날에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네덜란드 집 특성상 층별로 사는 공간을 나누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점 (한 층에 다 있는 게 좋아요), 옆집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는 점, 집 안의 직사각형 구조 (길지만 좁아서 공간 활용에 제한이 있어요) 등 바꿀 수 없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도 몸만 쏙 들어가서 살던 편한 암스테르담 아파트 월세살이가 그립지 않은 이유는, 그 고생을 하면서 우리 집으로, 우리가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겠죠... 공원을 가지 않아도 정원이 있고, 위층 아래층을 나눠 써야 하는 이웃들이 없으니 마음의 여유도 생긴 것 같습니다. 손이 가기는 아파트보다 더 많이 가지만 그래도 떠돌이로 가구 하나 없이 살 던 시절에 비해 더 안정감이 생긴 것 같아요.


집을 지으면서 가장 설렜던 부분인 인테리어! 평상시에 인테리어나 가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평생 못 사볼 것 같았던 가구나 조명을 사면서, 계속 '이렇게 많이 사둬도 될까... 언젠가 또 이사 갈 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마음에 쏙 들게 구입한 빈티지 가구를 헐 값에 모두 처분한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져 꿈까지 꿨었어요. 여태껏 가구없이 짐가방만 메고 살아서 좋았던 점은 이번에 모든 걸 다 통일성 있게 한 번에 넣을 수 있었다는 거죠. 블랙 인테리어를 많이 하는 네덜란드 이웃들과는 다르게 나무 느낌이 많으니 더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인테리어는 취향대로 예산에 맞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 그래서 아직도 희멀건 이케아 제품이 더 많고, 대충 끼워 넣은 소품이 많아 욕심이 나지만요. ㅎㅎ 우리가 살 공간이니까 우리가 편하고, 보기 좋으면 최고죠. 제게는 정말 마음이 편해지고, 또 뿌듯해지는 결과지만, 원목은 아니어도 합판나무를 많이 쓰다 보니 편리성 면에서는 80점입니다. 주방 아일랜드 뒤쪽이나 화장실 수납장에 얼룩이나 오염이 지지 않게 엄청 관리하며 살고 있어요. 벌써 의자 손잡이 하나는 제가 물 잔을 올려두는 바람에 기름칠에 샌딩까지 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더 뿌듯해하는 인테리어 결과도 같이 기록에 남깁니다.


1. 동양식 정원 - 첫 번째가 딱히 인테리어가 아니네요 ㅎㅎ 그래도 이런 정원을 식탁에서 바라볼 수 있으니, 밖이 안으로 들어오는 경관 인테리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파트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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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름이 그립습니다...

2. 나무와 돌을 쓰는 미니멀 인테리어로 통일하기 -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좋습니다. 베이지, 내추럴 오크, 따듯한 화이트 톤에 악센트 색은 초록입니다. 어쩌다 보니 가짜 식물을 많이 두게 되었어요. 요새 가짜 식물이 너무 잘 나와서 그런가 봐요. 주방 아일랜드 관리하기도 힘든데 식물에 물 주는 귀찮음은 좀 줄여봤습니다. ㅎㅎ 그리고 가능하면 통일성을 추구했습니다.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주방/아일랜드의 색 (내추럴 오크 & 베이지 트래벌틴)을 정한 후로는 그에 어울리는 바닥재 색을 고르고, 의자 톤을 맞추며 톤온톤을 노렸고요... 페인트도 여러 가지 샘플을 사서 비교해 보며 주방색에 맞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취향이 좀 확실한 편이라 가구나 조명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딱 취향에 맞는 (그리고 예산에 맞는) 제품을 찾기까지가 좀 시간이 오래 걸렸죠. 온라인 검색은 기본, 발품도 많이 팔았고요. 굳이 따지자면 북유럽/재팬디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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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숨어 (?) 쉴 공간 - 아무리 주방이나 거실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도, 그 외에 그냥 조용히 앉아 멍 때리고 쉴 공간이 있으면 좋겠더군요. 침실은 자는 곳, 서재는 일하는 곳이라면 쉼의 공간도 작게나마 따로 있으면 좋더랍니다. 저희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은 옥탑입니다. 소파 하나 두니까 자꾸 거기만 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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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으로 좀 더 자유로운 느낌으로 꾸며본 옥탑. 소파 겸 침대라 활용도가 더욱 좋습니다...~

4. 내가 좋아하는 예쁜 코너들 - 집이 이제 거의 다 완성되었다 느끼는 이유는 이런 작은 공간들이 많아지면서 아닐까 싶어요. 어느 날 바라보았을 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꿈을 꾸게 하는 코너들... 우리 손길로 구석에 만든 아름다움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런 공간이 있어서 집에 더 애착이 가나 봅니다.

이사를 만약에 또 가야 한다면, '정원에 있는 15톤의 돌과 그만큼 무거운 식탁은 어떡하지'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지만 실은 그 게 우리가 이 집에 쏟아부은 시간, 애정, 노력과 고생을 상징하는 거겠죠. 이 집에서 여태처럼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바라며 노마딕 했던 인생에서 이제 한 번 뿌리를 내려봐야 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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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식 초가 처마는 사시사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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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긴 네덜란드라 이렇게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더 좋아하게 되나봐요 ㅎㅎ
IMG_6887.HEIC 둔둔하고 정 많은 옆집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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