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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Feb 21. 2022

네덜란드 부촌의 80년대 요양원에 이사하다

네덜란드의 집 이야기

암스테르담에서 9개의 집에 살아보고 이제 오게 된 곳은 암스테르담의 동쪽에 있는 나든 (Naarden)이라는 곳이야.

출처: https://www.hollandluchtfoto.nl/m/-/galleries/dorpensteden/noord-holland/naarden

나든은 차로 암스테르담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1300년부터 도시역사가 시작되었대. 위의 사진처럼 별 모양같이 물길을 만들어, 그 위로 높게 둔덕을 쌓아 도시를 지키려던 시타델/요새가 있어. 하늘이 맑고 시원한 날 산책하면 가슴이 뻥 뚤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야. 그리고 정말 오밀조밀하게 옛집들이 모여져 있어 오래된 도시의 정취가 느껴져.

물이 있어서 더 좋은 나든 베스팅 산책

나든이 있는 지역을 헷호이 “Het Gooi”라고 부르는데, 힐버슴 (Hilversum), 부슴 (Bussum), 나든 (Naarden), 라른 (Laren), 블라리큼 (Blaricum) 이라는 동네가 보통 포함이 돼. 나든도 정말 아름답지만, 라른은 정말 엽서에 나오는 동화 마을 같이 매력적이라 한눈에 반했었어. 블라리큼은 더 깊은 시골 같은 정겨움이 풍겨져. 시간이 된다면 이런 마을들을 여행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초가랑 비슷한 구석이 있지? 블라리큼의 책방, 동화속에 나오는 것 같은 집들, 하얀 아스파라거스를 파는 동네 채소가게

호이미어 (Gooimeer)라고 불리는 물을 따라 마을들이 있어. 국립공원이나 걸을 수 있는 들판이 가까워. 그런데도 암스테르담이나 위트레흐트가 20분 거리니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 정말 으리으리한 빌라들이 종종 보이고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해서 돈이 많을까 궁금해져 (힐버슴에는 미디어 종사자들이 많이 산대). 뭐 딴 세상 이야기지. 그 덕인지, 곳곳이 예쁘게 정돈되어있고, 정원, 길, 집들도 아주 깔끔한 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동네를 가꾸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 좋아. 결국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동네 이미지를 바꾸는 거 아닐까.


네덜란드에 “하우셰, 봄폐, 베이스쳬” (“Huisje, boompje, beestje”)라는 표현이 있어. “집, 정원, 반려동물”이라는 의미로 정착한다는 뜻으로 쓰인대. 우리가 나든로 가게 된 것도 그런 연유가 있어. 떠돌이 생활을 잠깐이라도 멈추고, 우리가 가꿀 정원과 집이 있으면 좋겠더라구.


그래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운좋게 나든에 위치한 신단지의 집을 산 게 벌써 2년 전. 기다림의 끝에 올여름에는 이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살 곳은 오래된 요새도시 나든 베스팅 (Naarden Vesting) 바깥의 주거지야.

나든! 여름이 그립다

그런데 집을 짓는 막바지에 할 일이 많을 테니 (건설회사는 그냥 껍데기만 제공하는 거라서 주방이나 화장실 등등을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거든), 미리 근처 아파트에 이사 왔어. 부담을 좀 분산시키려고.

그래서 나든에 집 짓는 곳이랑 위치가 가깝고 계약기간이 짧아도 되는 곳이 나오자마자 계약해버렸네. 다른 거 안 보고 새 집 준비에 적당하면 되는 곳을 찾았어.


특이점이라면  아파트는 바로 요양원....! 대부분 거주자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인 아파트야. 주방이며   딸려있는 '일반' 아파트인데, 7-80년대에는 아마 '초첨단'이었겠지만, 이제는 낡았다는 느낌이 곳곳에서 느껴져. 요새 요양원들은  좋아서 은퇴  그쪽으로 가시고, 이렇게 오래된 곳은 월세로 많이 나오나 . (이곳은 전세 개념은 없어). 그래서 실은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우리같은 사람들도 살더라구.

은퇴 후 자식과 같이 살지도 않고, 가까이 살지도 않고, 연세 있으신 분들끼리 같이 모여 사는 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정서지?

그래도 창이 크고 내부가 시원하게 보이는게 (일조량 & 건축미학 때문에) 네덜란드 스타일이라 좋아. 손잡이 달린 엘리베이터는 참 생경하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연세 있으신 분들을 위한 '서비스' 마인드가 어쩜 나한테도 딱인지 ㅋㅋ 70년대에 지어져서 (드디어) 콘크리트 건물이야. 그래서 난방이 없어도 너무 춥지 않고, 소음 걱정이 없어져 좋지. 아무리 낡았어도 깔끔하고 편리하니, 이곳에서 묵을 몇 개월 간 편했으면 좋겠다.

책꽂이에 소파, 움직임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문을 열어두고 다니라는 쪽지, 카트, 거주자 이벤트를 위한 홀, 방문자가 20유로 내고 빌릴 수 있는 쪽방까지... 없는게 없네 ㅎㅎ

사실 대도시에서만 살아보고 암스테르담도 작아도 없는 게 없는 코스모폴리탄 도시라, 이렇게 마을에서 사는 게 어떨지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어.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 그런 마음을 설렘으로, 희망으로 바꾸어 주는 거 같다.


2월 네덜란드는 비바람이 많고 하늘이 흐린 날이 많거든. 그래도 봄이 곧 오겠지, 하고 믿는 마음으로 또다시 이사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네. 혹시 누가 알겠어~ 여기 지내면서 맘 좋은 네덜란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재밌는 추억을 만들지!


지정하지 않은 모든 사진의 출처는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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