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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Feb 08. 2022

암스테르담에서 살아 본 아홉 개의 집 Ep1

네덜란드의 집 이야기

20대에 와서 떠났다가, 다시 30대에 돌아와 산 두 번의 암스테르담. 돌아보니 벌써 여기서 거쳐간 집이 9개나 되더라고. 셈해보니 암스테르담에서만 8년, 그간 살아본 집은 9개, 평균으로 보면 1년에 1번 이상 이사를 다녔네. 아홉수는 마지막 관문, 대격변의 직전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번에 아홉 번째 집을 거쳐, 월말에 암스테르담을 떠나 근교로 이사를 가게 되었거든. 그런데 이게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기분이라 정말 ‘대격변’이라는 아홉수의 상징이 맞는 말 같아. 그만큼 집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보따리가 끝도 없이 나올 것 같네.


그래서 우선 암스테르담 시절에 살았던 집들에 대해 써보고, 감사해보기로 해. 살던 집은 그냥 비바람을 막는거처를 넘어서, 내 공간으로 가꾸는 공간이고, 당시 살 던 나날의 기억의 중심인 거 같아. 아 그 집에 살 때는 이랬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거쳐가는 집 마다 인생의 챕터가 달랐던 것 같고 말이지. 본의 아니게 이사를 자주 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암스테르담을 속속들이 더 알게 된 것 같아.

생활팁 시리즈에 집 구하는 팁은 공유해봤어. 그래도 덧붙여 이야기한다면 암스테르담 집매물(?)의 특징에는 이런 게 있어.


1. 17세기에 지어진 엽서에 나오는 암스테르담 식 건물들은 아무리 멋지게 레노베이션을 해도 구조가 오래되었어. 온돌 같은 바닥 난방은 완전 신식으로 찾아보기 힘들어. 나무로 만든 계단이랑 천장/바닥 때문에 층간 소음이 좀 심하고 단열이 잘 안 되지. 그리고 물 위에 올려진 도시다 보니, 쥐도 많아. 올리브 오일 한 방울에도 쥐가 냄새를 맡고, 연필 하나 들어가는 구멍만 있어도 쥐가 통과할 수 있다는 둥, 이런 썰이 자자해.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는 집들이 많은 연유도 된다고 하더라고. 창문에서 앉아있는 고양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어.

2. 대부분은 4-5층짜리 아파트야. 위층일수록 층간 소음 걱정도 없고 일조량도 좀 더 많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저절로 건강해지는 장점이 (...) 있어.

3. 보통 보증금 2개월치 월세에 다달이 집세를 내고, 세입자가 유리한 법적 구조라, 표준화된 계약서 잘 읽고 따르면 보통 별 탈 없이 계약하고 해지할 수 있어.

4. 집을 사는 건 비교적 쉬운 편이야. 현금이 거의 없어도 되고 이자율이 아주 낮은 편이야. 외국인도 살 수 있어.


조용하게 시작한 첫 번째 집 - 전철로 40분 통근해야 하면 암스에 온 이유가 뭐람

네덜란드에서 직장을 잡아 영국에서 건너올 때 일이야. 10년 전이네. 회사에서 집을 구하는 동안 묵게 해 준 아파트 식 호텔이 내 첫 주거지였어. 당시 무슨 국제행사가 많다는 8/9월 이어서 시내에는 모든 호텔이 다 꽉 찼다는 거야. 그래서 암스텔빈 (Amstelveen)이라는 근교 주거지 동네에 있는 호텔에 가게 되었지. 전철 타고 회사까지 40분이 걸려서, 그때까지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었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시절이지. 지도에서 보면 암스텔빈이 암스테르담의 일부처럼 보이는데도 시내 가는 데 꽤 멀었어. 대중교통이 우리처럼 잘 발달되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면, 거리는 가까워도 가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배우게 되었어.


두 번째 집 - 게이 암스테르담의 핵 관광지

처음으로 계약한 아파트는 관광지의 핵중심인 램브란트 플라인 (Rembrandtplein) 바로 옆에 있었어. 아래는 드랙퀸 바가 있고, 게이 퍼레이드 때에는 뒷 램브란트 광장에서 초대형 콘서트가 열렸었더랬지. 유명한 커피숍들 (여기선 그 커피숍이 그 커피숍이 아니여), 축구 보는 펍들이 많은 시끄러운 곳이었어.

그때 중개사 말로는 대부분의 로컬들은 이런 장소에 살기 싫어해 집이 막 레노베이션되었어도 가격이 저렴한 거 같다고 하더라고.

그 당시 내가 한 말이 -나도 믿기지 않지만- 아주 흥겨운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꿈이 이뤄졌다나. 거기에 최신식에 깔끔한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센터이고, 집이 위치한 거리가 '우트렉트세스트라트' (Utrechtsestraat)라고 정말 멋진 레코드샵, 인테리어 및 가구 샵, 옷가게, 디저트 샵 등 이 많은 패셔너블한 곳이어서, 딱이었지.

2013년 당시의 활기찬 램브란트플라인...

정말 다양한 모습의 암스테르담을 경험할 수 있었어.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어. 운하를 따라 만들어진 유네스코 헤리티지 지역, 딱 관광지의 암스테르담을 즐기고 경험하던 시절인 것 같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우트렉트세스스트라트. 이건 내 사진은 아니야. 늦은 밤에 이 장식을 우리집 빌딩에 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못 이루던 날이 있었네...참 특이한 경험이었어.
운하들 사이에 있어서 매일매일 관광하는 기분이었지

이 집은 지상층+한 가구가 두 개층+그 위에 살던 내가 또 두 개층을 쓰는 구조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4층, 옥탑층)였어. 몇 백 년 된 오래된 암스테르담 특유의 건축물이었지. 그 영향으로 바닥이 똑바르지가 않고 살짝 기울어져 있었어 (그 당시 기술로 대충 지은 건물). 어느 날 위층에서 보일러 파이프가 터지는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아래층으로 물이 샜는데, 그 물이 다 한쪽 벽으로 흘러가더라고. 대사건에도 황당하고 웃겼던 기억이 나네. 그리고 옥탑에 있던 목욕탕에서 창문을 열고 기어나가면 옆집의 옥상하고 연결되어 있었어. 남들 모르게 옆집 옥상에 기어나가, 접이식 의자를 놓고 누워 일광욕을 즐길 수 도 있는 정말 유럽스러운 경험이 가능한 곳이었어.

4층 게스트룸에서 보이던 아파트들 뒷 쪽 신록


세 번째 집 - 나도 이제 로컬인가, 쥐가 나오네

그리고 2년 후 관광지가 아닌 좀 더 주거지역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갔어. 차분하고 더 사람 사는 곳 같고, 공원 앞이라 좋았지. 드파입 (De Pijp) 지역의 사파티 공원 (Sarphatipark) 바로 앞의 건물이었는데,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오래된 건물이었지. 그런데 좀 낡았었고, 어느 날 드디어 쥐가 나오.. 진짜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쥐를 하도 봐서 그냥 그런가 보다 포기한 것 같아.

드파입을 뜨기 전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들.. 소소한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일상이 느껴지지? 저 글귀는 "동쪽, 서쪽, 집이 최고" 라는 뜻이야.
드파입의 느낌... 나무가 더 무성하고 관광객용 말고 로컬들을 위한 상권이 만들어져 있어. 은근 저 교회의 종소리가 일요일 알람이 되었더랬지.

네 번째 집 - 절대 다시 안 할 에어비엔비

그 후에 한 달간 잠깐 있었던 곳이 에어비엔비에서 찾은 곳인데 수수료 덜 내겠다고 에어비엔비로 찾고 그냥 직접 계약을 했어. 커다란 집을 여자애가 렌트해서 같이 나누어 쓸 사람을 찾는 경우였어. 서브렛 같은 건데, 여기서 사실 불법이거든. 이렇게 나눠 세를 쓰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집주인이 많고.

그래도 그냥 집이 급하고 한 달짜리니 한 번 해보자 싶었지. 그런데, 한 달 짜린데 보증금을 달라는 거야.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 계약서도 쓰고, 절차대로 하고 제발 별 탈 없기를 기도했는데, 그 돈을 홀랑 써버리고 없다고 하더군. 그 거 다시 돌려받는데 힘들었다~ 그냥 에어비엔비 수수료 낼 걸 그랬지. 결국 보증금도 받고, 그 사이에 좋은 집도 구해서 결과는 괜찮았어. 웬만하면 서브렛이나 셰어는 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다.

보증금 사건으로 기억될 시절의 나름 즐거운 기억인, 여자애의 뚱보고양이! 날 엄청 따랐었어. 그리고 벽난로의 흔적이 보이는 내가 묵었던 방. 이런 사진을 다 찍어두었었네..

다섯 번째 집 - 올드 + 뉴, 살아본 암스테르담 아파트 중 가장 최고의 집

그리고 이사 간 곳이 상큼한 복층구조의 스튜디오였어.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여러 세대가 사는 복도가 있는 복합 아파트 같은 곳이었어. 집주인이 살 던 곳이라 가구부터 깔끔하고, 잘 가꾸어둔 곳이었어. 자기가 옆 집으로 이사 가면서 세를 둬서 뭐가 고장 나도 잘 챙겨주겠다 싶겠더라.

완전 첫눈에 반해버린 집 & 동네... 기억에는 집주인이 오렌지색 쿠션까지 따로 사둔 것 같아...

이 집주인은 아파트 옥상에서 텃밭도 가꾸고 여름에는 집 옆의 운하에서 수영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 정말 이동네를 좋아하는구나... 터줏대감이 좋아한다면 마음이 좋지' 이런 생각이 들었나봐.

해가 나는 날이 손에 꼽히는데, 아마 그래서 더 발코니, 테라스, 루프탑이 있으면 집들이 인기가 더 많은 것 같아.

옥상에는 이웃들만 쓸 수 있는 멋진 테라스도 있고, 발코니도 있고, 운하 바로 옆에 있어서 경치도 좋았지. 유럽의 유서 깊음과 한국 아파트의 장점이 잘 합쳐져 만족스러운 곳이었어. 엉트레포트 도크 (Entrepot dok)라는 곳 주변인데, 관광지랑 가까운 듯 멀지만, 역사가 깊은 동네야. 네덜란드 VOC 선박들을 만들 던 동네였거든. 정말 맛있는 레스토랑, 카페도 많아. 지금이라도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동네야.

추억이 방울방울... 작은 코너인데도, 현지 출신들이 하는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음식점, 200년도 더 된 예네버 바, 정말 많은게 있어.

암스테르담 바깥에서 살며 통근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5번째만에 나만의 '구석'을 찾은 기분이었지. 이때는 완전 적응해서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고, 친구들도 집에 많이 초대해서 놀고, 동네에서 달리기도 하고, 운하해서 수영도 해보고, 즐거웠어.


그래서 누가 내게 어느 동네가 살기 좋냐고 물어본다면, 항상 이 동네를 추천하게 되는 것 같아. 교통이 좋다거나, 특별히 멋진 동네라서라기 보다도, 내가 좋았고 즐거워서 그랬다고 말해주지. 그리고 무엇보다 새 건물들이 속속들이 많은 동네라, 암스테르담의 3-400년 된 나무구조의 기우뚱한 건물에 사는 것 보다 훨씬 편리하고.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집이 소방서의 뒤였는데, 사는 동안 정말 한 번도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거야.


5개의 집을 거쳐, 드디어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어. 그 이야기 부터는 다음편에 올릴게!


특정하지 않은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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