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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Feb 12. 2022

암스테르담에서 살아본 아홉 개의 집 이야기 Ep2

네덜란드의 집 이야기

암스테르담에서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이라면, 높은 렌트값에 비해 집을 구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란 것을 깨닫게 될 거야. 네덜란드에 5년이상 살 생각이면 집을 그냥 사라는 조언도 받았었어.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비싸져버린 암스테르담 부동산 시장이라 (가장 부동산 거품이 심한 유럽 도시가 되었지), 사고 싶어도 못사는 현실이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지 않았지. 시기를 잘 만나서 운 좋게도 벌써 아파트를 한 번 사고, 또 그 몇 년새에 팔고, 남편과 같이 이사갈 집을 사게 되었어. 그 이야기는 다음에 풀고, 오늘은 암스테르담 생활을 행복하게 해준 나머지 4개의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구.

 

여섯 번째 집 - 처음으로 장만한 내 집!

처음 산 아파트가 있던 단지. 출처는 funda

회사가 가까운 오스트 (Oost)로 결국 집을 장만해 이사를 가게 되었어. 나름대로 센터가 가깝고 무엇보다 집이 괜찮기도 했고, 정말 많이 발품을 판 결과, 후회하지 않을 잣신이 오더라고~.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자바 거리(Javastraat)가 가까워져 다채로운 식료품점도 많고, 물가도 살짝 좀 더 싸고, 렌트가 싼 만큼 젊은 사람들이하는 힙스터 카페도 많아서 좋았지.

특히 여기 살면서 중동음식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거 같아. 터키식 식료품점은 하다못해 아보카도도 훨씬 신선하고, 맛있고, 품질이 좋으면서도 저렴하고, 불거 (Bulgur)같은 건강식품도 아주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 보물같은 곳이야.

실험적인 느낌이 물씬 나던 오스트. 내가 산 타진으로 직접만든 렌틸콩 음식~

여기 많은 주상복합 아파트 스타일인데, 내가 살 던 곳은 오스트 아니랄까봐 케밥집 위였어. 80년대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이라 (이 정도면 아주 신건축물) 단열도 더 좋고, 엘리베이터도 있고 창고도 있는 구조라 마음에 들었지.

집 아래 있던 케밥집 인테리어들. 우리식으로 보면 중국집이 집 아래 여러개 즐비한 경우였지.

예전에 살던 사람이 발코니에 새 모이를 주는 횟대를 들여놔서, 횟대는 없앴는데도 습관처럼 새들이 항상 날아왔었어. 그리고 길만 건너면 있는 빈티지 가구점, 소품 가게들에서 저렴하게 특별한 아이템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지. 이사를 너무 다녀서 좋아해도 실천하지 못한 인테리어 욕심을 다 풀어 보았어. 정말 램프랑 식탁도 없어서 깜깜한 곳에서 박스를 밥상 삼아 밥 먹던 시절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손수 모은 가구들이었는데... 집을 팔면서 같이 팔아버려서 너무 아쉬워.

아크릴 책장이며, 의자, 커피테이블은 진짜 너무너무 그립다, 아직도.

그리고 나의 공간을 아끼고, 친구들과 동료들을 불러 공간의 추억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었어. 터키식료품점에서 저렴하게 산 재료들로 정말 아낌없이 요리 많이 했었지.

암스텔 강하고 가까워서 바람 쐬러 나가기 참 좋았어. 지금 살기에는 너무 복작거리지만, 당시에는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가 가까워서 너무 편했지. 일찍 일어나서 6시 30분 아침 요가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회사에 자전거를 타고 가도 9시 전이라는 게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네. 그리고 한창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이 불어서 반대편 건물을 싹 다 허물고 새로 다시 지었어. 그래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더라고. 더 멋진 가게도 많아졌고.

파티를 하려면 필수인 2가지. 식기세척기, 그리고 신발을 벗어달라고 공손하게~ 미리 요청하는 것!

이제는 번잡하고 케밥 냄새가 꽉찬 도로를 지나가면, 여기서 계속 살지는 못했겠다 싶은 게 진심이야. 그래도 당시에는 많은 추억을 가져다 준 너무 고마운 집이지.

 

일곱 번째 집 - 컨시어지가 있는 '뉴암스테르담'

네덜란드를 떠나 다른 나라들을 거치고, 2-3년 후에 다시 직장 때문에 암스테르담에 오게 되었지.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그 와중에 결혼을 했다는 점. 그리고 실험적인 동네보다는 안정적이고 편리한 게 좋아졌다는 점? 아마 그 와중에 상해에 살면서 집 때문에 고생을 많이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몰라.

현대적인 유리와 대리석 건물들이 주는 느낌도 참 좋아

이때도 가게 된 회사에서 제공해 준 숙소에서 묵으며 살 집을 찾았어. 자우다스 (Zuidas)라는 광화문스러운 곳에 있는 임시거처였어. 고층 빌딩이 주로 많고, 유리와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해 유서 깊은 암스테르담 센터 하고는 아주 다른 동네이지. 기차 타고 스키폴 공항에 있는 회사에 가는 게 5분밖에 안 걸려서 회사에서 이 쪽에 잡아주었어. 로비/컨시어지가 있고, 수영장도 있고, 짐도 있고, 사우나도 있어서, 편리하고 그냥 일에만 집중하기 편했어. 처음에는 너무 삭막하다 싶었는데, 살다 보니 오래 살려면 살 수 있겠더라고. 역시 편의 시설이 중요한 가봐. 친구들도 암스테르담을 많이 떠나서 시내에 갈 일도 적어지고, 일 끝나고 쉬기 편한 게 최고더라고. 그 아파트의 이름이 '뉴암스테르담'인데, 정말 그때부터 내게 '암스테르담'은 첫 몇 년과는 다르게 다가온 것 같아. 결혼도 했지, 30대의 중반이 되었지. 원하는 게 달라졌달까?

 

여덟 번째 집 - 안경 스타트업 창업자한테 렌트한 집

뉴암스테르담에서의 단기계약이 끝나가니 또 아파트 헌팅에 나섰지. 뭐 이 정도면 숙명인 거지. 옮기고 옮기고,  또 옮기고. 이제 아주 이사 마스터야. ㅋ 그래도 그 과정이 피곤한 건 항상 같더라. 몇 년 새에 암스테르담이 렌트 값이 부쩍 오르고 막상 매물이 없어서 집 구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어. 정말 막판에 우리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발견해 이번에는 아웃자 우드 (Oud Zuid)라는, 박물관이 많은 동네 근처에 살게 되었어. 반 고흐 박물관도 가깝고,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동네였어.

코로나 전에 동네 이탈리안 델리에서

'암스테르담 스쿨'이라는 암스테르담 현대건축양식의 집이었지만 2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 특이했어. 공동 계단에는 누군지 모를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화 초상화도 붙어 있던 집이야. 네덜란드에서 나름의 뜬 스타일리시한 안경 브랜드 창업자가 내놓은 집이라 그런지 데코레이션, 직접 지은 주방, 컬렉션 한 액자들, 뭐 이런 게 특이했어. 자기 취향대로 레노베이션을 했나 봐. 처음 세를 주는 사람인지 가구며 여러 가지 새 거로 들여놓고 꼼꼼하게 챙겨주더라. 그런데 코로나로 오랫동안 집에 있으려니 우리 가구가 필요하겠더라고. 식탁 겸 재택 용 책상도 아마 주인이나 그의 지인이 직접 만들었는데, 재활용으로 붙여놓은 나무들이 처음에는 예뻐 보였는데 질리고 불편하더라고.

재활용한 학교 나무 의자들과, 직접 만든 나무 책상
집 안 곳곳에 담긴 추억들. 일주일마다 목욕탕에서 식물들에게 물주기.

그래서 1년 만에 가구가 없이 매물이 나온 집에 이사를 가기로 했어. 필터 없이 생생하게 들리는 트램 소리와 윗집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서 벗어나기도 할 겸.


아홉 번째 집 - 암스테르담에서의 (아마도) 마지막 아파트. 고마웠어.

그리고 또 이사를 온 곳은 아웃자우드에서도 아주 조용한 코너야. 난 내가 여기서 살 줄 진짜 몰랐어. 20대 때에는 그냥 너무 조용하고 삭막하다고 생각했거든. 센터에서 자전거로 20분은 가야하는 외곽이라고 느껴졌지. 하지만 지금은 공원이 가깝고, 기차역이 가깝고, 무엇보다 주차가 편해 좋은 걸 보니, 그간 우리도 나이가 들긴 했나 봐.

지금 사는 동네의 공원 (Beatrixpark)에 나온 아기 토끼
집 근처에 공원이 있다는게 싦의 질 향상에 정말 도움이 되더라고. 특히 코로나 락다운 때 이 공원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을 정도로 큰 힘이 되준 아름다운 곳이야~

여기 살던 할머니가 70년 간 안 고치고 살았다나 봐. 그래서 부동산 회사에서 아파트를 사서 싹 다 고쳐서 겉으로는 아주 최신식으로 잘 레노베이션되었어. 코로나 락다운 2년을 나기에 적당하게 공간도 많고, 우리 침대며 책상이 있어서 훨씬 편하게 산 곳이야. 그래도 모든 게 다 누구 취향에도 무난하게 다 맞게 디자인이 되어 우리만의 집이라는 느낌이 없어. 어떻게 보면 넓은 호텔방 같기도 하고 그래.  

또 언제 이사갈지 모르니 본의아니게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 ㅋ
오래된 집이고, 등재된 집이라고 현대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유리창이야. 이번 겨울에는 뽁뽁이를 붙여서 좀 난방비를 줄여보려고 한게 훤히(?) 보이지 ㅋ

여기서 산 지도 벌써 2년이 가까워 오는데, 이제 또 이사를 가게 되었어. 암스테르담 근교의 나든 (Naarden)의 신단지 전원주택을 구입해 우리만의 집을 가꿔보기로 했거든. 그런데, 그 주택이 완공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윗집의 소음이 심해서 (역시 아무리 인테리어를 고쳐도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천장은 어쩔 수가 없나 봐), 큰 결심 했지. 그냥 새로 살게 될 주택 옆의 아파트로 이사 가버리기로. 나든의 집이 완성되는 것도 관리하고, 더 바빠지기 전에 이사라도 먼저 해두려고. 진짜 이사 갈 때는, 이 집에게 고맙다고, 암스테르담에게 고맙다고 얘기해주게. 마지막 아홉 번째 집인 만큼 (가장 비싸기도 했지만) 가장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았던 거 같다. 

동네에 있는 재미있는 집들. 안경을 쓰고 속속이 신기한 장식이며 건축양식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어.

그래서 이렇게 세어보니, 무려 9개의 집에서 머물렀구나. 많이 이사를 다니고  옮기며 살았네. 그 와중에 너네가 암스테르담에 오게 되어서 너희가 살 아파트도 구했지. 어떤 집은 지금도 그립고, 어떤 집은 나오기를 잘했고, 참 정답은 없나 봐.

네덜란드의 여러 가지 집들을 경험해 보면서, 많이 배웠어.

한창 철거 중인 오래된 건물. 헌집 줄게 새집다오~ 암스테르담의 재건축은 끊이지않아~

그래서 네덜란드에서만 1년에 평균 1개 이상의 집에서 살아보고 얻은게 있다면?

 

발품을 많이 파는 건 기본! 암스테르담은 매물이 빨리 돌아가니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전화해보고 장소를 직접 본다. 사진만 번드르르한 집들이 많아. 그리고...특히 네덜란드에 사는 외국인으로써 명심할 것들-

1. 조바심 안 내도 된다. 내 집은 항상 찾게 되어있다.

2. 항상 흥정한다.

3. 많이 먼저 고민하고 결정은 빠르게 한다.

4. 아니다 싶으면 나온다.

5. 내 권리는 꼭 지킨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수십번의 방문을 통해 이들은 어디에 돈을 쓰고, 뭐를 중요시 하는지 배우는 데 도움도 된 것 같아. 그리고 인테리어 트렌드까지 알게 되었지. 예를 들면, 공간의 활용 치를 높이는 게 최우선인점, 요새 유행하는 덱톤 타일 등 말이야. 앞으로 네덜란드의 집 이야기 시리즈에서 차차 풀어보기로 할게~


특정하지 않은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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