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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착 Oct 07. 2019

타인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우리가 따로 살아야 하는 이유

"나는 과자를 먹고 껍질을 버리지 않는 게 싫어. 침대에 휴지를 방치하는 것도 싫고, 바닥에 양말을 벗어두는 것도 싫어. 외출해서 돌아오면 옷을 제자리에 걸지 않는 게 싫어. 옷을 제자리에 걸어두면 다시는 옷을 정리할 일이 없는데 매번 아무 데나 걸어두니까 자꾸만 시간을 들여 옷을 정리해야 하잖아. 한 번 아무 데나 올려두기 시작하면 다음 사람도 제자리에 넣기 힘들어져. 불편하게 가로막아져 있기 때문이지.


나는 물건을 많이 갖는 게 싫어. 물건을 많이 가지면 정리해야 하잖아. 꼭 필요한 물건을 한두 개만 갖는 게 좋아. 예를 들면 숟가락을 딱 두 개만 갖는 거지. 서너 개여도 괜찮아. 그러나 다섯 개는 정말 싫어. 그럼 설거지를 하지 않고 계속 숟가락을 설거지통에 쌓아두게 될 거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듯이 말이야. 조금 불편하지만 숟가락을 그때그때 씻어서 쓴다면 수저통이 널널하니까 다시 꽂아 넣기도 쉽겠지.


손톱깎이를 쓰고 제자리에 넣지 않는 게 싫어. 그럼 손톱깎이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데 도대체 언제 제자리에 넣을 생각이야? 지금 제자리에 넣으면 금방 끝날 일을 일주일 뒤에 넣는다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은 손톱깎이를 일주일 동안 바라봐야 하는데 왜 제자리에 넣지 않는지 모르겠어. 나는 건식 화장실에 물이 있는 게 싫어. 샤워를 할 때 조심스럽게 물이 튀지 않게 한 다음 튄 물을 바닥용 걸레로 닦았으면 좋겠어. 마찬가지로 세면대에 물이 고여 있으면 바닥으로 떨어져서 목재에 습기가 배어 낡게 되잖아. 세면대도 곰팡이가 생겨. 세면대를 쓰고 즉시 닦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섞어놓는 게 싫어. 바닥을 닦는 걸레로 세면대를 닦는 게 싫어. 수세미를 건조대 근처에 두는 게 싫고, 젖은 수세미에서 계속 물이 떨어져서 주변이 젖는 게 싫어. 설거지를 마치고 주변의 물을 닦는 게 좋아. 밥을 먹었으면 즉시 그릇을 싱크대에 두는 게 좋아. 요리를 하다 재료를 떨어뜨렸을 땐 그걸 찾아내서 휴지통에 버리는 게 좋아. 기름이 튀었으면 즉시 닦는 게 좋아. 그렇지 않는다면 나중에 기름을 닦을 때 두배로 힘이 들게 되잖아. 간단한 설거지는 즉시 해버리는 게 좋아. 예를 들어 물로만 헹구면 되는 컵이나 도마나 칼은 지금 헹구어두면 설거지통이 터지지 않잖아. 밥을 먹고 그릇을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 물로 떼어내기가 힘들어. 그럼 팔힘을 사용해야 하잖아. 나는 그럴 힘이 부족하단 말이야."


잘 정리되어 있는 주방 이미지

*이미지는 Unsplash의 Mikael Cho

https://unsplash.com/photos/ZMIrSYeDEsc


그래서 우리는 따로 살기로 했었다. 연애 초에 우리는 따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에 합의했다. 생활 방식이 너무나 다르고, 그로 인해 받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내가 감당하지 못했다. 개인 화장실을 가지고 개인 방을 가질 수 있다면 강구구가 과자 껍데기와 누텔라 잼을 언제 침실에서 옮겨 제자리인 주방에 도로 가져다 놓는지 노려볼 필요가 없다. 기껏 정리해둔 주방과 침실과 욕실이 매번 다시 더러워질 때마다 가슴 답답해할 필요가 없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예민하다. 특히 곰팡이는 절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곰팡이는 없애도 없애도 다시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무언가 착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흘리면 모두 즉시 닦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요리 도중에 인덕션(사실은 홉이지만) 밑으로 음식물이 떨어지면 뜨거운 인덕션(홉이라서 뜨겁다)을 옮겨서라도 그 음식물을 먼저 제거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다. 굳으면 청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류를 흩뜨리는 것에도 예민한 것 같다. 더러운 것을 놓아야 하는 곳에 깨끗한 것을 놓으면 그 깨끗한 것은 다시는 깨끗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깨끗한 구역을 닦아야 하는 청소도구로 더러운 곳을 닦으면 안 되는 이유다. 이 집에 혼자 살았을 때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물이 흐르면 즉시 닦고, 세면대에 얼룩이 생기면 즉시 닦았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꼈고,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우리는 동거하다가 많은 싸움과 갈등을 빚었기에 두 개의 집을 렌트해서 살았다. 나는 당연히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강구구도 자신의 집이 있을 때는 깨끗하게 정리해두고 지낸다. 그러나 비싼 오클랜드에서 두 개의 집을 렌트할 수는 없다. 벌써 서울 원룸의 두 배의 렌트비를 둘이 합쳐서 내는데도 매달 겨우겨우 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치즈를 우걱우걱 씹어먹어도 좋고, 그래놀라를 우유에 말아먹어도 좋다. 국이 있어야 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처음에는 강구구가 따뜻한 새 밥만 먹는다고 해서 화가 났었다. 정확한 양의 밥을 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찬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래야 밥통을 씻고 다음 새 밥을 할 수 있는데 그럼 그 찬밥을 먹는 건 매번 내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적응해서 화나지 않는다. 매번 강구 구를 위해 새 밥을 하려고 노력한다. 냉동된 밥을 데워먹어도 사실 같은 맛이 난다. 냉동 파가 파맛이 나고 냉동 새우가 새우 맛이 나듯이 말이야. 나는 평생 그런 밥을 먹고도 잘 살았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언 밥을 1분 데운 다음 그릇에 옮겨 3분쯤 더 데우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새 밥이 된다. 그러나 강구구는 아닌가 보다. 그래서 오늘도 밥을 총 세 번 했다. 나도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통은 총 네 번 씻었다. 강구구에게 따뜻한 밥을 준다면, 나도 새 밥을 먹어야 한다. 둘이 같이 찬밥을 라면에 말아먹으면 몰라도, 나만 찬밥을 먹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일은 괜찮지 않다. 뭐랄까,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내 가치다.


집안일을 하다 보니 자꾸 억하심정이 든다. 우울해지는 것도 같다. 나 또한 집에서 프리랜서로 임금 노동을 하고 있고, 매번은 아니어도 대체로 내 소득에서 렌트비의 절반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생활비는 강구구가 부담하지만 말이다. 집안일을 전담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이제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다 따져보게 된다. 강구구는 퇴근하면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고양이를 쓰다듬을 시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종일 서있고 영상 하나를 끝까지 볼 시간이 없다. 집에서 세 끼를 해 먹고 설거지를 세 번이나 해도,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사료통을 닦고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놈의 세면대와 싱크대와 홉 주변을 매일같이 닦아도 내가 아닌 사람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 심지어 밥을 먹기도 전에 설거지를 해야 했고, 전날의 식기까지 포함하면 설거지를 하루 종일 총 세 번이나 했는데도 마지막 저녁을 먹은 뒤에 미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쌓여있는 그릇을 보면 게으르게 하루를 뒹굴대며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기까지 하다. 내 임금 노동은 대부분 글쓰기 종류다. 여성이 글을 쓸 수 없는 것은 집안일 때문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엄마가 밥을 해줄 때는 시간이 더 많았다. 8-9시간씩 일하는 회사를 다녔는데도 임금노동만 오롯이 하던 때가 시간이 더 여유로웠다. 퇴근하면 그때부터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뭐랄까, 잠도 못 자고 과로해서 입술이 부르트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전업주부라면 이 일에 만족하겠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 최소 4시간 많게는 8시간씩 임금 노동까지 병행해야 한다. 그마저도 8시간씩 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저녁때야 시간이 난다. 대략 강구구가 출근한 뒤와 강구구가 씻고 잠든 뒤에야 내 시간이 난다고 볼 수 있다. 강구구가 나의 노동의 원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늘 그런 걸 보니 맞는지도 모른다. 저녁때부터 일을 시작해도 많으면 5-6시간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새벽과 때때로 오후에 강구구 출퇴근 셔틀을 담당한다. 강구구보다 훨씬 늦게 자는데 동시에 일어나는 거다. 때때로 출근 드롭 이후에 즉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피곤한 날은 자고 오후에 일어나서 저녁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됐든 수면 패턴도 엉망이고, 통으로 집중할 시간도 부족하다.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 강구구가 하지 않는 게 아니다. 한다. 그러나 내가 집안에 있으니까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될 뿐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강구구는 고양이 화장실을 내가 매일 갈아준다는 걸 알고 있나? 내가 손바닥 피부가 약해서 손을 자주 씻으면 매번 핸드크림을 발라도 손이 다 부르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친 후 손을 꼭 씻어야 하는 고양이 화장실 정리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는 건 나를 혹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게 맞나? 우리는 가사노동 분배의 약속도 해보았고, 주말에 함께 대청소도 해보았고, 내가 임금노동을 하고 있을 때면 강구구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청소를 해준 적도 많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침대에 휴지를 놓지 말아라 등)에 관한 잔소리를 해보기도 했고, 강구구가 내 식사를 준비해준 적도 많다. 그래도 나는 왜 계속 이 모든 상황에 불만이 있는 건지, 그리고 왜 나만 불만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예민하고 강박적이고 까탈스럽고 체력과 힘은 부족하면서 집안일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은 높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예 담당자가 나로 정해진다면 내가 대대적으로 집안의 물건을 줄이고, 내가 관리하기 편하게 집안을 먼저 조성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기준을 달성한 뒤에 그 기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면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의 집안일을 해야 하니까 우울하고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막막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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