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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09. 2019

웨딩촬영이 불러온 로망

떠남의 취향#2. 파리가 나에게 로맨틱한 로망을 선물해줬다.

 




 내가 파리에 도착한 때는 가을이었다. 건물 2~3층 높이의 키 큰 가로수가 파란 하늘과 온 거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만났다니 행운이었다. 천천히 음미하듯 걸으며 구경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온도와 풍경이었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목적지 없이 걷다가 낙엽이 파헤쳐진 바닥이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자세히 다가가보니, 누군가 밤으로 하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귀여운 장난에 파리에 대한 첫인상은 ‘로맨틱’ 그 자체였다.



 파리에서는 참 이상하게도 웨딩 촬영도 자주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봤던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친해진 동생과 함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고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터벅터벅 멍하게 목적지를 향하는데 동생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기 좀 봐요. 웨딩촬영 하나 봐요.”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쓰레기가 보이면 좀 어떠랴. 그들의 후광에 쓰레기 조차 아름다워보인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환한 미소를 지은 신랑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수많은 인파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을 피해주면서 축하해줬다. 휘파람을 부는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 연신 Beautiful을 말하는 사람 등 각자 자신의 찬사로 커플의 행복을 기원했다. 웨딩드레스나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도 앙리루소가 그린 결혼식의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아름다운 신부가 될 수 있을까?’


 결혼에 대해서는 몇 번 상상해본 적이 있다. 삼십대인 나에게 결혼이라는 키워드는 핑크빛 로망이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生)의 최전선 동료로 맞이하는 현실이었다.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집 앞 마트에서 만나 장을 보고 저녁을 해결하고 매일 빨래나 청소, 설거지를 서로에게 미루며 지지고 볶는 일상이었다.

 결혼식 역시 평생 우리 둘이서~♥라며 약속을 하는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라 2인 3각 끈을 묶은 두 사람이 출발신호가 탕-!하고 쏴지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모습에 가깝다. 1분여의 짧은 시간동안 나는 벌써 상상 속에서 결혼식장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이런 망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두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밤의 에펠탑과 새벽 1시 직후의 화이트 에펠탑


 또 다른 웨딩 촬영을 본 것은 화이트 에펠탑을 보러 갔을 때였다. 에펠탑은 해가 지면 노랑색과 하얀색 불을 밝힌다.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다.


 새벽 1시가 되면 이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룬다. 에펠탑의 불빛이 완전히 소등이 되기 직전 단 10분 동안 하얀색 전구만 켜지며 ‘화이트 에펠탑’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화이트 에펠탑은 노란색 빛이 함께 할 때보다 더 순수하면서 성스럽게 느껴진다. 마치 은하수나 오로라가 반짝이는 듯 파리 하늘을 새하얀 빛으로 수놓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센강 유람선인 ‘바토무슈’를 타고, 시내야경을 즐겼다. 그리고 에펠탑으로 넘어가서 미리 가져간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면서 화이트 에펠탑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12시 40분 쯤 됐을까? 쏟아지는 졸음에 하품을 하는 찰나,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주목을 끌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자, 사진기사 일행이었다. 하얗고 풍성한 웨딩드레스의 우아함이 에펠탑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촬영 준비를 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했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처럼 여자와 어시스트는 화장과 머리를 다시 한 번 수정하고, 남자와 사진 기사는 구도를 확인하는 것인지 카메라 위치를 바꿔가며 확인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계속 관찰하고 말았다.



 새벽 1시가 되었다. 에펠탑의 노란 불빛이 꺼짐과 동시에 셀 수 없는 셔터소리가 들렸다. 촤라라라아아아가카카카악. 이런 소리였던 것 같다. 커플은 이리저리 포즈를 바꿔가며 취했다. 사진기사의 손에서 쥐가 나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쁘게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아름답지만 정신없고, 한편으로는 좀 웃기기도 했다. 화이트 에펠탑과 이 광경을 번갈아 가며 구경했다.  


화이트 에펠탑

 내 마음과 스마트 폰 영상 속에 화이트 에펠탑을 새기고 돌아섰는데, 그들도 사진이 만족스럽게 찍힌 걸까? 촬영된 사진을 확인하는 커플의 미소가 예뻤다.

 에펠탑은 어둠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모두들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멀리서 경찰이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위축된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경찰이 예비신랑과 사진작가를 연행해갔다. 정말 궁금하지만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마지막 전구가 꺼진 에펠탑이 까만 밤하늘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그저 사라졌을 뿐이었다.





 이 혼란 속에서도 나는 느꼈다. 파리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로맨틱하게 느낀다는 걸. 아마도 사진작가나 커플은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웨딩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위험을 감행할 만큼 사진에 담고 싶었던 거겠지?



 오래도록 두 커플의 모습이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눈부시게 하얀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물론이고,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이나 미소 같은 것들이 아름다웠다.  

 두 번의 우연한 웨딩촬영 구경으로 갑작스러운 로망이 생겼다. 나도 파리에서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스냅사진을 한번 찍고 싶다는 로망. 웨딩드레스를 입은 촬영까지는 아니어도,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순간의 설레임이 담긴 모습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다.



 PS. 초중고를 포함해 대학교 졸업앨범 사진까지 망했으니, 이제 내 생에 남은 희망은 웨딩촬영과 결혼식 사진뿐이다. 이 두 사진은 꼭 성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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