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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ug 25. 2020

사랑은, 너는

  영학이는 요가 소년 명상(요가와 명상을 컨텐츠로 하는 유투브 채널이다)을 좋아한다. 듣고 있으면 잠이 잘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요가 매트 위에 누웠다. 한낮의 명상이였다.   

 요가 소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치명적이다. 영학이야 뭐 숙면을 위해서라지만 나는 정말 명상에 집중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평화로운 목소리 때문에 깜박하고 졸 때가 생긴다.   

 요가 소년이 엄지 발가락이라고 말하면 나는 내 엄지 발가락을 의식한다. 뒤이어 새끼 발가락이라고 말할 때도 새끼 발가락이 거기 있구나 감각한다. 요가 소년이 깊은 호흡을 주문하면 나는 숨을 들이마실 때 들어오는 숨을 의식하고 숨을 내쉴 때 나가는 숨을 의식하기 위해 애쓴다. 

 애를 쓰고 있는데 요가 소년이 이런 주문을 했다. '이제 자신이 인생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소원해보세요. 그것을 한 문장으로 만들어 마음에서 큰소리로 말해보세요. 세 번 말하세요.'

 이런. 영학이는 이미 잠들었다.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잠들 걸 그랬나. 인생에서 뽑아먹고 싶은 게 많은 와중에 딱 하나만 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나는 어떤 소원을 빌까. 어려운 주문이다. 코고는 영학아, 꿈 속에 있는 너는 어떤 소원을 빌고 있냐? 

 

 까다로운 선택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내 소원은 이랬다. ‘영학이랑 같이 이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엉겁결에 소원을 말해버렸고 명상이 끝나고 나서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본다. 요가 소년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줬다면, 혹은 혼자 하는 명상이였다면, 혹은 그 날 영학이랑 싸웠었다면, 내 소원은 전혀 다른 소원이였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미 내가 소원을 말해버렸다는 것과 말해버린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학이랑 잘 사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페터 카멘친트의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고는 다음 문단을 쓸 수 없다.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게 아녜요. 그건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1.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게 아녜요?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목적으로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행복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오래도록 내가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내 어린 시절의 지배적인 정서는 우울과 슬픔이였다. 나는 정말 가식적인 아이였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집에서 벌어졌던 몹쓸 일들을 납득하거나 이해하는 게 힘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깨끗한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서 친구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내가 파놓은 깊숙한 지하 구멍에 숨어 들었다. 그곳에서 울고 그곳에서 나를 달랬다. 그렇게 해야만 행복하고 정상적인 아이인 척 연기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내가 체득한 생존법이였다. 

 교복을 벗었지만 우울은 벗을 수 없었다. 언제나 내게 불행을 덧칠해준 우리 집을 벗어나고 나서도 나는 도무지 '행복'이 뭔지 몰랐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불행한 마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하 구멍이야말로 마땅한 내 몫이라고 믿으며 불행에서 내 정체성을 찾았다.


 그랬던 내가, 영학이를 만나고 나서 쉽게 행복해지는 인간이 되었다. 그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모른다. 그의 무엇이 아니라 그와 나 사이에 무엇이였을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를 만나고 나서 내 행복을 상상하는 일에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영학이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릴 때 나는 행복하다. 그가 나를 안아주면, 그래서 내가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나는 안도감이 든다. 

 그가 그의 가장 빛나는 눈을 가지고 나를 쳐다봐줄 때,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는지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밖에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의 포근함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어제는 평소보다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했는데, 깨끗해진 집안을 한바퀴 둘러보고 있자니 뭉게 구름처럼 폭신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영학이는 알까. 그가 얼마나 많은 행복의 씨앗들을 내 주변에 심어놓았는지. 그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내게 어울릴 거라고 믿어보지 못한 좋은 감정들을 이제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지하 구멍에 숨어들지 않는다. 슬픈 일이 있으면 그 앞에서 울고, 우울한 일이 생기면 그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여전히 좀 가식적인 인간 같지만,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봐달라는 억지 웃음은 짓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불행이 나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영학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내가 내 몫의 안식을 찾았을까 말까 식의 가정은 쓸모없다. 나는 김영학을 만나버렸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옆에 있고 싶다. 쓸모없는 것들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을 부리지 않는다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여전히 그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소원은 진심이였다고 말해도 되겠고,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행복이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2. '그건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학이가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가 원해왔던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축복해주고 싶다. 

 그 일에는 위험부담이 커서 그는 (얼마 안되는) 전재산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영학이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리스크 가득한 그 길로 나를 초대하고 있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인 것처럼, 사랑도 행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고통을 견디면서도 얼마나 강인하게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믿는다. 

 영학이한테 소설 <페터 카멘친트>의 이 구절을 말해줬다. '대단한 말 아니야?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영학이는 나보고 웃기지 말라고 말했다. '네가? 너는 맨날 도망만 쳤지. 도망치는 너 잡아서 달랜다고 인내심 훈련한 건 난데?'


 우리가 한달 동안 히말라야를 올랐을 때 나는 얼마가지 못해서 하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때 내 눈물과 콧물을 닦아준 건 영학이였다. 그가 나를 잡아준 덕분에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시작한 트레킹을 포카라에서 끝낼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두번째로)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호주로 다시 와준 것도 영학이였다. 그 때 그가 한국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정말 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너랑은 도저히 못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금새 변덕을 접고 다시 돌아왔을 때, 별 말 없이 받아준 것도 그였다. 너 참 못났다고 충분히 욕할만한 상황이였는데 (속으로는 그랬겠지?) 그는 자기가 좀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영학이가 너무 좋은 사람이기만 한 것 같은데, 그건 오해다. 이 글은 무려 '사랑'에 관한 글이라서 그의 못난 부분(나를 미치게 하는 그것들)을 들춰내기에는 나쁜 글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참는 것이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성질을 참고 일한 사람도 영학이고, 화가 나도 소리는 지르지 않은 사람도 영학이다. 나는 뭐했던가. 나는 나랑 화해하기에 바빴다. 나는 어떤 좋은 말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야말로 그 말을 믿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기에 바빴다. 두려워서 도망치는 사람이 여기 있고, 그 사람을 견뎌내준 사람은 내 옆에 있어 왔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서 그의 힘듦을 함께 견뎌내줄 타이밍인가? 

그의 제안에 확답을 주지 못했다. '네가 먼저 가있어. 내가 좀 있다가 따라갈게.' 비겁한 대답이였다.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럼 쓰것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있어야지.'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아직 이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마음에 뭉게 구름처럼 폭신한 기분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하..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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