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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n 22. 2018

[편지] 글쓰기에 대하여

H에게

안녕 에이치. 종이 위에서 나는 너를 에이치라고 부르기로 했어. 물론 네 이름에서 따온 이니셜인데, 그게 아니라도 H, 뭔가 정의로울 것 같은 이니셜이다.


1. 글쓰기에 대하여 

에이치. 내가 이주동안 매일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매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습관처럼 일어나서 무슨 일이든 하러 갈 수는 있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잖아. 

 습관적으로 쓰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그러나 몇가지 생각해보고 싶은 게 있어.  

 

먼저, 나는 내가 쓰기로 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

삶에는 이야기가 넘친대. 오, 당연한 말이야. 근데 말이야, 내가 콧구멍을 뻥끗, 크게 열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이 내게 신선히 살아오기에는 주변 잡냄새가 너무 많은거야. 내가 잘 들어마시질 못하니까 그것이 내 숨이 되어줄 턱이 있나. 그냥 시시한 이야기나 찌껄이게 돼. 

  

 두번째, 그것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이야기가 시시하다면, 그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몰라서 그런 것 같아. 실은 잘 모르면서 잘 포장해보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망한 게 한 두번이 아니야. 근데 또, 잘 모르면 쓰지 말아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잘 몰라도 쓰다보면 아.. 하고 조금 알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아. 여전히 잘은 모르지만.

      

 세번째, 그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발설하고 있나.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가지는 것이 내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 나는 내가 꽤 자주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주적이라고 하기에는 도통 알맹이가 너무 없는거야. 자주적인 알맹이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고, 대게 목소리도 작아서 알아차리기가 여간 어려워. 근데 그것을 가진 이는 태풍의 눈 같아. 엄청난 것들을 일으키면서 그 본체는 아주 고요하고 단호한 거야. 태풍의 눈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말들을 그 자리에 제대로 안착시켜서, 결과적으로 유닉(unique)한 문장들을 이어 써.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태풍을 안게 하면서.  


 H 너는 왜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거야? 글을 쓰는 행위는 너한테 어떤 의미야?


 나는 내가 조금 경박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생활의 작은 순간들에 마주쳤을 때, 몸에 베인 느긋함과 침착함으로 시간을 넘어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호들갑으로 난잡스러움을 만드는 사람도 있잖아. 천성적으로 그런건지 가정적인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후자에 속한다고 봐. 이런 내가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좀 더 육지 쪽에, 가장 맑은 마음으로 안착해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게 글쓰기가 없다면, 나는 너무 가볍고 어두워서 날아가버릴지도 몰라.  

 김중혁이 한 말인데, 자신은 자아가 여러 개인데 그 모든 자아가 결국은 글쓰는 자아를 위해서 있다고. 그의 말을 빌려 쓰자면, 내 자아도 몇 개쯤 되는 것 같은데, 내게는 그것들을 지켜주는 것이 내 글쓰기 자아라고 생각해. 내 일상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필요한거지.  


 역으로, 글쓰는 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위의 세가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가지게 됐어. 그것을 그것으로만 바라보는 게으름을 버리고 좀 더 들여다보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하나 이야기를 가지지 않은 게 없으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 입이 없는 것들의 스토리를 만들어주기. 그 스토리를 내 몸과 마음이 가진 최선의 성실과 진실로 이어쓰기.

에이치, 내가 너한테 무라카미 하루키 얘기를 여러 번 했잖아. 사실 내겐 그의 작품들보다 삶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태도가 더 인상적이거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고, 글이 쓰이건 말건 매일같이 책상에 앉아 글쓰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 예술가들의 삶은 좀 더 피폐하고 우울하고 질척이는 것이 어쩌면 더 예술적이라는 편견이 만연한 와중에, 하루키라는 작가는 건강한 삶을 사는 예술가의 예외를 보여줬다고 생각해.  

 일상이 견고할 때 글쓰기를 지킬 수가 있다고 믿어. 일상에 함몰되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 시선을 던질 힘도 없을 테니까. 그런 맥락에서 일상과 글쓰기는 공생관계 깉다.


-가볍고 어두운.

  삶이 너무하게 허무하다고 느껴지면, 삶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자면 죽음마저 허무하다는 생각에 참을 수가 없을 때가 있어. 내가 슬픈 인간일 수도 있고, 인간이 슬픈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 허무감을 무엇으로라도 메워야 할 것 같을 때, 내가 가진 가장 나은 방법이 글쓰기이기도 해. 뭐랄까, 나는 종이가 하얀색인 것도 좋고, 글자를 쓰면 하나씩 자리가 메워지는 이 형식 자체가 때때로 놀라워. 이 글들이 나일 수는 없지만, 글쓰기로 나는 나의 일부분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에이치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느끼듯, 내 허무 내 가벼움 내 의지 내 약함 나의 무엇을 공유하는 데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거야. 

 초등학교 방학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항상 물었거든. '알찬' 방학들 보내고 왔니? 나는 알차다는 그 단어가 줄곧 부담스럽고 어색했어. H 너가 나한테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어땠냐고, '남은' 게 뭐냐고 물은 적 있는데 기억나? 나는 남다는 단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느껴. 아마 이건 내 바탕이 되는 인생관과 연결돼있을 것 같다.

나는 삶이 알찰 수 있거나, 삶으로부터 수확할 수 있는(남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혹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아무래도 삶은 실패하기 쉽고, 초라하고, 가면 갈수록 비어버리는 무엇이 아닐까 예상해. 내가 글쓰기를 잘해보려는 의지를 부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결국 알이 차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아무래도 좀 더 실패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라 생각하는 거야. 

 down-to-earth라는 영어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게 아마 BBC 팟캐스트였던 것 같다. 브렉시트에 대한 이슈가 한창일 때, 진행자가 어떤 사람을 두고, 그는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어, 라는 말을 하면서 이 단어를 쓰더라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 원래 있어야할 땅에 발 붙이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단어가.

내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또한 글쓰기에 대해서도 'down-to-earth'한 태도를 고수하고 싶다. 허무와 권태가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되 잠식되지 않고, 슬픔이 올 때는 땅에 발을 붙이고 그것에 젖을 수 밖에. 


(근데 있잖아, 말만 이렇게 하는 걸지도 몰라. 사실 나는 뭘 아직 잘 몰라. 그래서 무서워. 도대체 앞으로 무엇이 내게 올까. 그때는 내가 한 말들이 모조리 거짓말이 될지도 모르지.)



2. 할머니


 H 네 할머니는 어떤 분일까. 너와 그녀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네가 알던 할머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는 네 말에, 내 마음이 아팠어. 외롭거나 공허할 때마다 할머니집으로 가서 낮잠을 자고 오는, 지금보다 어린 너를 상상해봐. 너는 뭐 때문에 외로웠을까. 할머니는 너에게 무엇을 먹였을까. 

 아마 할머니가 너를 무척 사랑하셨을거야. 그러셨겠지. 얼마나 예뻤을까, 조그마한 손녀가. 잠자는 네 모습도 예뻐해주셨을 것 같다.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 우리 이모는 내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의 시구에 대해서 말해줬어. 우리의 어린 뇌는 몰랑몰랑해서 그런 말들은 오는대로 잘 집어먹잖아. 성인이 된 이후로도, 나는 외로움을 혼자서 삼키는 시간이 필요해. 

 아빠의 폭력성에 지쳐서, 외삼촌을 한 번 찾아간 적 있었어. 아빠에 대한 내 증오를 털어놓으니까, 삼촌이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런 사람도 있는 거라고, 너는 네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하더라. 아주 쿨하게, 내 고민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삼촌 덕분에 나는 나혼자 그 증오를 쌓아가기로 마음 먹었었지.


 내게도 만약에 H 너의 할머니와 같은 품이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다른 인간이 되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할 것이 있다면 그럴 것이라고 말한 네 말을 기억해. 

아니,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나의 무엇을 침해하려 한다면 가만히 놔둘 수가 없어, 내가 말했어. 

 나는 너를 여전히 잘 모르지만, 어쩌면 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한 사람인가보다. 너의 따뜻함이 어디서부터 흘러왔을지 추적해보면 네 할머니가 떡하니 서 계실 것 같아. 


 우리가 만날 때마다 너는 할머니 얘기를 들려줬어. 네가 할머니 얘기를 하면 나도 내 할머니 두 분에 대해서 한번씩 더 생각하게 되더라. 

 친할머니는 H 네 할머니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려 양로원에 계시고, 외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어. 나도 외할머니가 그리워.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밖에 모르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때 나는 인간적으로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버렸거든. 근데 친할머니에 대한 감정은 달라.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 뵈었어.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신 채 눈만 껌벅껌벅 밥숟갈을 갇다대면 로봇처럼 입을 벌리시는 할머니를 마주하는데,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를 몇 번 소리쳐 보다가 포기하고 그냥 점심을 먹여드렸어. 그 전보다 몸과 정신상태가 더 안 좋아지셨어. 더 비참한 것은 앞으로도 더 좋아질 리가 없다는 것, 모든 가족이 차라리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길 바란다는 것.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할머니와 좀 더 가까웠다면 나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내가 할머니와 어떤 추억이 있다면 그녀가 살아있기만이라도 기도했을까. 아니면 나는 그저 이기적인 동물인지.      


 H 네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네가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쇠퇴를. 

그래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영학이는 생각하더라. 그리워할 사람, 할머니가 있어서. 


네가 할머니와의 추억 중에 오직 한장면만을 간직해야 한다면, 너는 어떤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응, 오직 한장면이야.

 


3. 

 보내고 싶었던 편지를 이제 보낸다. 바쁘지 않은 일상인데, 무엇인가 꾸준히 해나가는 게 조금은 버겨울 때가 있는 시간에 있어. 힘들다는 말은 아니고, 아 더 잘하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되진 않아. 

 나는 엄마와의 여행 이후로, 엄마를 그리워하게 됐어. 시간이 흐른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그리움을 겪는 일 같기도 해. 

 다음 주부터 댄스를 다시 시작해 지금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수업은 musical theater. 친구 말로는 내가 엄청 좋아할거래. 두고봐야지. 

비욘세의 single lady 안무가 뭔지 알지? 시간이 지나도 그건 클래식이지 않을까. 내겐 전혀 old-fashioned 아냐. 내가 다음에 한국에 가면, 그때는 H 너랑 같이 꼭 춤을 췄으면 좋겠다. 싱글레이디가 아니라도 좋은데, 나는 싱글레이디를 밀겠다.


 요즘 복근운동 하루 10분 실천 중이야. 저녁도 먹었고, 간식 하나 더 먹고 내 Ab을 위한 땀을 좀 흘려야겠다.

안녕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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