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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l 20. 2018

[편지] 맛있는 음식과 좋은 친구

H에게

 치약을 잘 쓰고 있다니 좋다.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씻고 카페에 왔어. 상쾌해진 몸에다 새로 산 옷을 입었어. 

며칠 전에 consignment shop(중고의류판매점을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부르더라)에 가서 치마를 하나 샀거든. 언니한테 치마 입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노랑, 초록, 파랑의 작은 네모 문양들로 가득찬, 허벅지와 무릎 사이는 망사로 처리된 치마인데, 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애. 

근데 얘랑 같이 입을만한 윗옷이 없는 거야. 집에 있는 모든 옷들을 걸쳐봤는데(운동복 말고는 외출복이 없더군), 아니 아니, 안되겠다 싶어서 어제 다시 그 곳을 찾았어. 상호가 Peacock Boutique인데, 이게 중고 매장이라고? 할 정도로 트렌디한 옷들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 옷을 사본 지가 너무 오래 됐거든. 보물을 건져내는 마음으로 가게를 샅샅이 살펴본 뒤에 검정색의 짦은 탑 하나, 빨간 장미 원피스 하나를 골랐어. 어제는 모든 의류에 15% off 가 적용되는 왠 횡재의 날이라, 23불에 산 옷뭉치를 가방에 밀어놓고 룰루랄라, 자전거를 쌩쌩 밟아 집으로 돌아왔지. 

 사치의 흥분이 아직 묻어있는 탑과 치마를 입고 언니에게 편지를 써. 내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잖아. 여름을 이렇게까지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너무 환하게 모든 걸 들춰내는 여름은 부담스러운 계절이였는데, 이젠 이 밝음에 되도록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야. 혹독한 캘거리 겨울을 이 여름의 눈부심이 보상해주나봐. 안하던 쇼핑을 한 것도 아마 여름 때문인 것 같아.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여름과 함께 있어.


 캘거리는 한동안 축제 분위기였어. Stampede(캘거리의 상징적인 로데오 축제)가 어제 끝났어. Stampede 기간 동안엔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늘고 사람들은 밤낮할 것 없이 펍에 상주하며 웃고 마시고 열광해. 카우보이 모자와 신발차림의 신난 사람들이 길거리 구석구석에서 보여. 축제는 밤 11시마다 폭죽놀이로 마무리되는데 다음 날에도 이들은 다시 맥주를 마시며 여름을 축복하는 거야.

 나는 맥주 대신 자전거를 샀어. 여름을 걷는 것도 물론 좋지만, 자전거로 달리며 맞는 여름 바람이 그리웠거든.

조만간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 갈 계획이야. 자전거 트렉이 있는 크고 큰 공원도 좋고, 지하철을 타는 게 더 오래 걸려서 가기가 망설여졌던 비건 레스토랑도 좋고. 자전거가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멀리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들뜨는데, 차를 가지는 자유는 상상 이상이겠지? 예를 들면, 오후 일찍 일을 마치면 나 혼자서 차를 몰고 밴프에 가고 싶어. 캘거리에서 밴프로 가는 길은 하나 인데, 그 고속도로는 산을 향해 달리는 모양이거든. 주변에는 들판이 펼쳐졌고. 내가 운전하지 않는 차를 타고 밴프를 갈 때에도 산으로 달리는 듯한 속도감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는데, 나혼자서 그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고 상상해봐. 아이스 아메리카노 쪽쪽 빨면서. 브루노 말스 노래를 듣는거야. 오예 춤이 나온다. 


옷을 사 입어 본지가 오래되었다고 했잖아. 새 옷을 사입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캘거리의 겨울 동안 생존을 위해서만 옷을 입다보니, 기분을 장식하는 옷을 입을 기회를 잃었어. 봄이 왔었을 때는 비자문제며, 이런저런 주변 상황에 충분히 정신이 홀려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여름이 오니까, 거기다 가까이에 있는 구제의류매장을 발견한 뒤로는 오마이갓, 나도 빛나는 옷이 입고 싶은거야 언니. 매일 입는 늘어난 티셔츠와 검은 트레이닝복이 아닌, 알록달록 옷들을 내 몸에 붙이고 싶어. 아마 몇 번의 충동구매 후에 진정될 듯해 이 흥분은.    


여름학기 춤을 등록했고 하루의 결석도 없이 다니는 중이야. Soca라고 한 번도 춰보지 않은 새로운 춤을 배워. 아프리카에서 온 춤인 줄 알았는데 캐리비안 댄스더라. 8월 25일! 두둥! 캐리비안 페스티벌이 있는데, 무대에서 춤추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해서 뻔쩍 들었어. 아마 지금 배우고 있는 soca 댄스를 출 것 같아. 그냥 손만 들고 하겠다고 나섰지, 어떤 춤을 추게 될지도 아직 몰라. 진행되는대로 언니한테 전해주겠다. 캘거리의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다니고 있는 댄스학원은 언니 너가 참 좋아할 것 같다. 

  

/

'Grief is the price of loving someone.'

며칠 동안 이 말이 떠나지 않고 나를 맴돈다. 

CBC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데, 그 날의 팟캐스트 내용은 The sick boy라는 다른 팟캐스트를 소개해주는 거였어. The sick boy는 태어났을 때부터 간에 문제가 있어 기대 수명이 20살밖에 안되였던, 지금은 스물 아홉이 된 제이미와, 그의 두 명의 친구들이 제이미의 병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팟캐스트래. 그것이 입소문을 타게 되어 병에 걸린 사람들이 게스트로 나오게 되고, 병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점점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팟캐스트가 됐나봐. 

이 팟캐스트의 매력은 병을 가진 사람이 병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 같아 보였어. 세 사람이 CBC 방송에서 25분 가량 수다를 떠는데 그 공기가 전혀 무겁거나 칙칙하지가 않더라고.  


나를 숨멎게 했던 것은 제이미 아내의 한 마디. 

제이미는 그가 친구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는 병이 있다는 걸 어렸을 적부터 알았지만, 자신의 수명이 평균 20세밖에 되지않는 건 사춘기가 왔을 때쯤 뒤늦게 알게 됐나봐. 제이미의 부모도 그 사실은 숨긴거지. 그걸 알고 나서, 제이미는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불가능할거란 것, 어느 누가 곧 죽을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냐고, 아마 자신은 평생 결혼이란 건 해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절망했대. 

 근데 스물아홉 제이미한테는 와이프가 있거든. 어린 시절의 그는 상상해지 못했던 일이지만.

The sick boy에 게스트로 나온 제이미의 와이프에게 친구들이 질문을 해.

 '너는 제이미가 어쩌면 정말 얼마 못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와 함께할 생각을 할 수 있었어?'

그녀의 대답은, 

'I'd already lost people I love. I've experienced it in my life. I think grief is the price of loving someone.'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나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이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대가일 수도 있다고.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고 하잖아. 세상에는 공짜도 영원도 정말 없는거야. 그녀의 대답이 어떤 느낌이였냐면, '응 나는 제이미를 사랑해.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언제 죽느냐의 문제는 지금 내 사랑에 대한 어떤 영향력도 가지지 못해. 지금 그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하는 슬픔의 몫이 후에 생긴다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것이 사랑의 대가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슬픔을 먹는 것도 그와의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라고 말하면 이상해? 

물론 실제로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어.


그녀의 말이 내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내 가장 큰 두려움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두려움이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내게 주어지는 슬픔의 무게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그 슬픔은 다른 이에게 덜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길거리에 떨쳐버릴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슬픔이 나를 파멸시킬 것임은 알기 때문이야. 

나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조차 내 슬픔을 걱정하는 여전히 이기적인 인간일 것 같아.     



/

사람들이 싫고, 그래서 점점 더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언니의 말에 베라랑 내가 했던 대화가 생각났어. 

 베라가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는 3년 전 베라가 가장 믿었던 친구로부터 인수인계 받은 건데, 그 과정에서 둘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베라가 그 친구로부터 받은 실망이 컸나봐. 나야 뭐 베라 입장에서만 전해들은 이야기라 그 모든 말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들어. 어쨌든 베라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조금 조심스럽대. 베라가 그 친구 분과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냐면, '아, 서로 몸을 나누는 즐거움보다 우리가 이렇게 말을 나누는 즐거움이 나는 더 크다.'라고 할 정도로. 

 내가 베라한테 말하길, '근데 베라 나는 영학이도 trust하지는 않아. 그냥 좋아할 뿐이지.'

 '정절을 말하는 거야?' 

'연인사이에는 그게 믿음의 가장 절대 원칙이겠지. 굳이 정절이 아니더라도, 음 그냥 인간 자체를.' 

언니랑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누군가를 믿으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고, 사람을 믿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되도록 누군가에게 어떤 호감이 생기게 되었을 때, 그 호감만 지속하려고 노력하고 싶어. 그게 그래서 아주 이성적으로 잘 되냐, 그것도 아닌데, 그냥 좋아하는 마음에 집중하려고 해. 마찬가지로 나는 언니를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언니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뭐 우리관계가 오래갈 사이라는 식의, 혹은 언니는 이렇고 저런 사람은 아니라는 식의 믿음들을 배척해. 되도록 언니를 좋아하는 내 호감에 대해서만 존중해. 존중하려고 해.


베라가 내게 말하길,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어 캐런? 그냥 또 상처가 오면 오는 거지 뭐.' 


잘 모르겠어. 내가 왜 그를 믿고 싶지 않은지. 그를 사랑해서 내가 치뤄야할 슬픔의 값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겠지. 이번에 배운 것처럼. 그렇지만 내가 조정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란 것, 더군다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믿음을 입혀주는 게 너무 바보같은 거야. 거기다 '나를 그를 믿는다'고 말할 때, 그의 무엇을 믿는다는 거지?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란 걸 믿는다는 건가? 언니는 내게 꾸밈없는 사람이랄 걸 믿는다는 건가? 

'그를 믿는다'는 것은 '나는 그가 그러하기를 기대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믿음'이라는 높은 값어치의 말 대신,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착각'하거나 그가 그러지 않기를 '욕심'낸다는 게 좀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하루에 몇 십번, Hi, how are you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고 인사하게 되는데, 나는 아직까지 이 인사가 좋아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실제로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그들이 나를 모르는 것처럼 알지 못하지만, 어떤 목소리들은 손을 맞잡은 듯한 다정함을 줘. 어쩌면 너무 많은 말을 하는 대신 그 정도의 다정함이 많은 인간 관계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충분하다고 느껴지기도 해. 나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간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날에도 몇몇 손님들이랑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나면 내 회의의 어떤 부분이 치유되더라고.

물론 매너를 어디 잃어버리고 온 손님들도 있고, 가끔씩 나를 돌아버리게 하는 손님들도 있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보다는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손님들이 훨씬 많다는 거야. 내 짧은 인생 경험으로 예상하길, 세상에는 분명 별로인 인간보다 괜찮은 인간들이 더 많을 것 같아. 

  

그렇지만 나도 누군가와 좀 더 가까워질 때에는 방어적인 경향이 있어. 조금이라도 내게 똥을 줄 것 같은 사람이면 단박에 멀리하는 것 같아. 사실 그 사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몰라, 내가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오해해서 뒤돌아 섰을지. 근데 나는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인간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껴. 몇몇의 가까운 이들과 지금의 관계를 즐겁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에 족해. 대신, 그 몇몇에게는 방어적인 태세를 취할 마음이 전혀 없어.    



/

A&W 기억나? 캐나다에 있는 햄버거집. 거기서 이제 비건버거를 팔기 시작했어. 비건들이 신났어. Beyond burger라고 유명한 비건버거 패티가 있거든. 정말 고기 맛이 나는 비건 패티인데, 둘 사이에 무슨 계약을 맺은 건지 싼 값에 패티를 사들이게 된 A&W가 또 싼 값이 버거를 팔 수 있게 되면서, 지금까지 고급시 취급되어온 비욘드버거가 이제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됐어. 

집에서 만든 두부샐러드, 블루베리를 들고, A&W에서 비욘드버거를 3개 구입, 영학이랑 근처 공원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왔어. 바람이 부는 여름 저녁에 공원에 앉아 저녁을 먹고 싶었어. 

혼자 벤치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우리가 거슬렸는지 자리를 옮기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와서 그 자리에 앉아. 나이가 들면 나도 매일 공원에 나올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 앉아있는 게 좋은데 늙을수록 더 좋을 거 아냐, 영학이가 말해. 나이가 들어서 지팡이를 짚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어 내가 대답해. 이런 저런 시답잖은 수다를 떨어. 너가 자라오면서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야? 성실하라고. 그럼 네게 혹시모를 자식이 생긴다면 그 애에게 어떤 말들을 많이 해주고 싶어? 재미있게 살라고. 


내일은 우리 둘이 같이 쉬는 유일한 날이라, 오늘 저녁 늘어진 맘으로 영화를 보려고. '프라하의 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한 거라고 알고 있어. 

언니는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이나 본 영화가 뭐야? 언니 답장 이후로 2주가 더 지난 것 같은데, 그 동안은 어떻게 지냈어? 그래서 할머니는 할머니 요양원으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요양원으로 각자가 되돌아 가신거야?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으시대? 

할머니도 안타깝지만, 모든 기억을 가지고 요양원에 지내시는 할아버지도. 우리 세대가 늙어가는 모습은 그들과는 많이 다를까. 


'왜 기다려야 하지?' 카메라 라이카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사진작가가 한 말이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데, 유서에 저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자살한 사람이 있어. 우리는 결국 다 죽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존재인데,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죽음을 기다릴만한 이유를 하나씩 품고 사는 걸까.

 

혹시 그 이유에 회의감이 든다면.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서 정말 정말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겠어. 


반가웠어, 언니.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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