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en Apr 15. 2019

[일기]

2019.04.12

봄이 왔다는데도 바람은 차게 분다. 이곳에 앉아 비스듬히 비춰오는 빛에 나를 놓아둘 수 있어 기쁘다.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운적석에 홀로 앉은 나를 상상한다. 나와 내 차가 가는 하이웨이 1을. 아무것도 나를 그곳에 데려다줄 수 없을 때, 가야할 곳이 떠오르지 않을 때, 무작정 차에 올라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상상을 했다. 그 기대가 내 삶이 가진 우울의 어느 정도는 위로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혼자서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어딜 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운동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다. 조금이라도 살이 빠지면 조금이라도 예뻐지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예뻐진다면 그가 나를 '아름답다'고, 한번쯤이라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귀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름다움은 내게서 부재한다. 나는 아름다움에 열등하다. 그러므로 나는 아름다움을 욕망한다. 아름답지 못한 채 지나가버릴 내 젊음에,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내 몹슬 아량에, 돌을 던지는 마음으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상스럽게 차오르는 내 욕망에 욕을 퍼붓는다. 


너는 내가 아름다웠니,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너의 정의를 듣지 못했다.  

가늘고 긴 목선을 가진 여자의 뒷모습에서 은근하게 풍겨오는 우아함 같은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너는 나는 너의 눈빛을 기다리는데 너는 아름다운 그녀를 쳐다볼까. 아름다운 그녀의 봉긋하고 아름다운 가슴과 아름다운 그녀의 아름다운 엉덩이 같은 것을, 내가 바라게 될 수 밖에 없는 걸을, 바라는 내 자신을 싫어지게 만드는 것을.  


무엇이 그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줬을까. 무엇이 그에게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쳤을까.


그는 내가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나와의 습관을 따르기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말이다, 그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나간다. 아름다움이 부재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은 내 의지이므로, 내 의지가 다할 때까지 그를 사랑하기로 한다. 

   

또한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로 한다. 나는 내 크기와 내 취향에 맞는 아름다움을 찾기로 한다. 그것은 이미 내 밑에 있으면서도 내가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고, 없기 때문에 만들어내야할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의 임무는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데에 있다. 나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데에 있다. 그가 부여하는 아름다움의 무게에 짓눌리는 대신에 그 시선을 거부해야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나의 아름다움처럼 다른 이들이 가질 그들 각자의 아름다움을 새로이 발견하는 데에 있다. 나는 그것이 아주 진부하지만 정당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