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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21. 2019

[책] <스토너>를 읽고

1.

스토너를 다시 읽었다. 

'I think he's a real hero. A lot of people who have read the novel think that Stoner had such a sad and bad life. I think he had a very good life. He had a better life than most people do, certainly. He was doing what he wanted to do, he had some feeling for what he was doing, he had some sense of the importance of the job he was doing. He was a witness to values that are important...'

John Williams는 그의 말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스토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젊고 내 젋음은 미래에 대해 희망차다. 나는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거라 신실하게 믿고 내가 이뤄나갈 좀 더 근사한 일들에 대해 상상한다. 나의 노년은 그녀와 다를 거라고 다짐하고, 나이가 들고 늙어갈 것이란 명백한 인간 운명이 내겐 해당되지 않을 것처럼 늙어버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러나 오만한 내 자아 뒤로 문득이 눈꺼풀을 치켜드는 것은 결국 삶이란 내가 겨뤄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 흐릿한 느낌이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혹은 이뤘다고 착각할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들이 내게 남겨진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슬픈 직관이다. 


그 노숙자는 내게 스토너를 읽고 슬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전 있잖아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엄청난 걸 봤다는 생각 밖에는.' 나는 말했다.


스토너는 첫 눈에 빠져 결혼을 했지만 그것은 불행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것은 이뤄질 수 없었고, 사랑스런 자식이 불행해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무엇보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에마저 잘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이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좀 더 이해하지 못한 것을, 좀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껴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담담히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이 있었나. 분명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는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대답할 수가 없다.

책의 끝 페이지에서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다. 거리를 지나가는 학생들의 조잘거림이 창문너머 들리고 햇살은 침대 맡을 환히 비춘다. 스토너는 침대 옆에 놓인 자신의 책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것의 감촉을 느낀다. 그는 그 책으로 그 자신을 증명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어떤 부분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손에서 책이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는 영원히 잠든다.

한 사람의 삶은 누구 마음대로 어떻게든 판단될 수 있지만, 자기 삶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가 그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존경스럽다. 그는 자신의 삶을 치장하지 않았다. 


사랑이 끝날 것을 알면서 사랑하는 이들은 무엇을 위하여 사랑하나. 삶이 끝날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마음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윌리엄은 스토너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보다 나은 삶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느낄 줄 알았고, 그것이 가진 중요성을 감각할 줄 알았고, 중요한 가치들을 목격할 줄도 알았죠.'


 내가 위하는 것들은 내가 위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의 가치를 다한다. 그리고 소멸할테다. 결국에 내가 어떤 사람이였는가에 대한 답은 그 위함에 대한 나의 태도로 드러나지 않을까. 이것이 너무 무자비하게 들린다면, 적어도 내가 취하고 싶었던 태도에 대한 내 마음에는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내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큰 온 세상이였고 나는 그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곳에 있지 않다. 내 기억 속에선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실재하는 너와 나 사이에는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버렸다.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변해가고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그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을 잃고 슬퍼하는 동물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랑을 잃었지만 그것이 사랑이였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그 후로도 자주 가볍게 웃거나 좀 더 많은 커피를 마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지금보다 더한 잃음과 늙음을 경험해가는 것, 결국에 죽는 인간이 되는 것이 

내가 쥐었다고 믿었던 모래알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는 일, 

그 무의미를 혼자만의 의미로써 안고 가는 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여도 좋을 것 같다. 

그 때 내 사랑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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