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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May 16. 2022

이중구는 왜 "살려는 드릴게"라고 했을까?-<신세계>

#PSH독서브런치175

사진 = 네이버 영화 <신세계> 스틸컷


※ 영화 <신세계(2013)>의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영화 <신세계>에서 골드문 그룹 회장직을 놓고 장수기(최일화 분), 정청(황정민 분), 이중구(박성웅 분)의 대결 구도가 펼쳐집니다.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각 후보들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죠. 이때 세 명의 이사가 이중구를 찾아와 '우리가 너를 지지하면, 뭐를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사들은 "우리가 동생(이중구)을 미는 것은 뭐 기정사실인디"라고 말하지만, 후보들의 조건을 모두 들어보고 지지를 결정하려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 세 명은 과거 이중구와 같은 '식구'였지만, 사망한 그룹 회장의 총애를 받았던 정청에게 한동안 붙어있던 사람들이었고, 이번 선거에서도 명확한 지지 후보 없이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쪽에 붙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대해 이중구는 "살려는 드릴게" 즉,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하죠. 이 발언에 대해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는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에서 '하수의 전략'이라 말합니다. (영상 제목: 영화 '신세계' 속 캐릭터별 심리 집중 탐구! 박지선 교수의 최애 캐릭터는?ㅣ지선씨네마인드 EP.4)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더 가까이하는 것'이 고수의 태도라면 '살려는 드릴게'라는 말은 이와 상반되는 태도라는 것이죠. 즉, '적에게 내가 그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노출시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은 전략이 아니며 그 사람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말이라는 의미입니다.


2. 세 명의 이사는 일관성 측면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언제든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들이죠. 장기적 관점에서 이들의 지지를 꾸준히 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이미 '라인'을 여러 번 바꿔 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중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해 지지를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그들의 지지는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즉,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 후보들에 비해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것을 제공해야만 하죠. (실제로 이들은 이후 장수기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받아 그쪽 라인을 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중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살려는 드릴게"라는 공포가 담긴 협박과 이 발언이 허세가 아니라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세력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장기적 지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확실한 단기적 지지라도 확보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일 테니까요.


1+2. '정치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일관된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세계>에서 라인을 여러 번 바꿔 탄 세 명의 이사들도 멋져 보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더더욱 들지 않죠. 하지만 박이문 교수가 <문학 속의 철학>에서 "인간 사회는 정치를 떠나선 살 수 없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노력을 들여서 가장 큰 효과를 얻을 것인가를 계산하게 된다"라고 했듯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채사장 작가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에서 "정치적 인간이라고 해서 꼭 나쁜 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발생시키고 내가 주도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고 썼는데 참고해볼 만한 말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나는 어느 정도의 정치성을 가질 것이며, 그런 정치력을 가질 능력이 있는 사람일까'를 고민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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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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