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에피타이저가 먼저 나오고 차근차근 음식들을 먹고 있는데, 먹고 있던 앞선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다음 음식이 나왔다. 한 번은 괜찮았지만 두 번 세 번 그렇게 바쁘게 음식들이 이어서 나오니, 맛을 즐기는 건 온데간데없고 살짝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조금만 천천히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나름 정중히 부탁했고 그제야 차분히 먹을 수 있었다.
대화할 때도 상대가 잘 들을 수 있는 속도보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 급하거나 스스로의 말 맛에 심취한 나머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너무 빠르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너무 느린 것도 문제지만, 안정적 속도로 차분히 오가지 못하면, 그 대화에서 자칫 말이라는 음식에 체할 수도 있다.
일상의 대화뿐 아니라, 공식 스피치에서도 말을 차분하고 안정적인 속도로 하는 것은 신뢰를 줄 수 있으며, 같은 내용이라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내용이라도 조급하고 분주하거나 들떠 있으면 내용은 귀에 안 들어오고 덩달아 분주해지고 신뢰를 주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상황이나 감정을 통해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생각이라는 의식을 거치며, 발성기관을 통해 소리와 조음기관의 발음조합으로 입을 통해 최종 출력한다. 그 말의 근간의 단계가 바로 '숨'이라는 호흡(號吸)이다. 호흡할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
고로, 안정적 말하기의 근간은 안정적 호흡이다.
호흡이란, 내쉴 호號, 들이마실 흡吸이 만난 말인데, 밖으로 내쉬는 숨과 안으로 들이마시는 숨의 양과 속도가 유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잘 순환될 때 '호흡이 참 안정적이다'라고 말한다.
호흡에는 '분당 환기량'이란 것이 있다. 1회 호흡 시 폐에 드나드는 호흡량을 일회호흡량 (Tidal volume)이라 하는데, 일반 성인이 안정적으로 호흡할 때 회당 450ml~500ml를 호흡하며 1분 기준으로 회당 호흡량이 적절하게 잘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바로 분당호흡량이다. 안정적인 말하기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호흡 환기량의 운동과 순환이 매우 안정적이다. 말이 급하고 너무 빠른 경우는 '호흡 분당 환기량이 불안정하고 부족한 상태'다.
안정적 호흡을 하기 위해 우선 해야 할 것은 내가 바쁘고 빠르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알고 깨달음만으로 행동과 표현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출근시간에 늦어 급하게 주차장으로 뛰어가는 나, 차에 도착했는데 ‘어?’ 급하게 나온다고 자동차 열쇠를 놓고 왔다. 다시 더 급하게 집으로 다시 뛴다. 집에 도착해 보니 원래 열쇠 놓은 곳에 열쇠가 안 보인다. 호흡은 가빠지고 앞이 뿌옇게 보이는 것 같다. 가방 깊이 손을 넣어보니 열쇠가 잡힌다. 순간 안도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뛴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 오늘은 대학수능일로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날이었다. 차에 앉아 가쁜 호흡을 가다듬다가 가벼운 미소가 흘러나온다. 한숨 ‘후~’ 내쉬고 차분히 운전하고 출발한다.
방금 전 바쁘게 뛰고 빠르게 움직이고 다급했다가 다시 차분해진 행동을 관장하는 건 누군가 행동을 지시하거나 명령한 게 아니다. 그저 상황과 그 상황이 만들어낸 생각이란 의식이 모든 행동의 속도과 호흡을 만들었다. 바꿔 말하면 내 분주함과 바쁨을 만들어 낸 상황을 인지하고 깨달으면 자연스레 호흡은 안정을 찾는다.
내 삶의 출근시간과 없어진 열쇠 같은 역할을 하는 건 무언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성과? 어제 SNS에서 봤던, 잘 나가는 지인의 소식에 대한 질투와 시기?
지인의 승진 소식에 대한 조급함?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다들 뭔가 잘하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듯한 불안함?
뭐가 되었건 잘 못된 건 없다.
지금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다만, 이제는 그 감정과 내 삶을 또 다른 내가 마치 옆에서 바라보듯 차분히 인지하고 이렇게 말해주자
‘차근차근 나를 살아보자. 바쁘게 쫓아간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너의 숨을 쉬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잘 살고 있으니..’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아주 사소하고 뻔한 것들을 또 하나하나 해 나가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나는 지금을 살고 있으며, 이제 남은 건 앞으로 다가올 소중한 시간들 뿐이다. 그것들을 감사하게 차분히 맞이하고 귀하게 살아가자.
분주함과 바쁨에 대한 차분하고 지혜로운 알아차림인 '인지' 그리고 돌아봄에 대한 셀프 대화는 우리의 호흡을 자연스레 안정적으로 만든다.
거기에 각자만의 방식으로 명상, 산책, 책 읽기, 글쓰기 등의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완될 수 있는 것들이 병행하며, 우리는 상황에 그저 끌려가지만은 않는, 몸과 마음이 따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 된 균형 잡힌 지금을 온전히 살 수 있고, 그 속에서 차분한 호흡과 안정적 말하기가 가능해진다.
말하는 스스로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한 진정 좋은 말하기를 만날 때 일상도 일의 결과도 더 좋아질 확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