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겸손과 어설픈 겸손의 차이

겸손해서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by 오창균

연극배우를 하다가 강사활동을 막 시작했던 초창기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한 수강생이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이번 과정 정말 좋았어요. 배우고 싶은 내용을 재미있게 알려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참 감사하고 기분 좋은 말이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속으로) 그래, 감사하고 기분 좋지만, 우쭐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나온 말,


‘아니에요. 아직 모자란 게 많아요. 미흡한 게 많았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부끄럽네요’


얼핏 별문제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대화에는 겸손의 오해가 만들어 치명적 결함이 있다. 진정한 겸손의 의미를 모른 채, 상대의 인정과 칭찬에 자신 없는 모습으로 한편으론 매너 없게 반응한 것이다. 겸손의 미덕을 가지려다가 오히려 잘한 것에 손해를 본 샘이다. 왜일까? 겸손의 기본 의미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인데, 자신을 낮춘다는 건, 뭔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모자라고 부족하다며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몸까지 움츠리고 숙이면서 그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겸손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늘 겸손해야 한다. 사람이 자만하고 잘난 체 하면 적이 생겨’ 등의 말을 즐겨하셨던 부모님 세대의 영향도 있고, 일단 겸손해야 한다는 막연한 개념이 만들어 낸 결과다.


나를 낮춘다는 건,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높여 주는 것이다. 내 힘으로만 된 게 아닌 다른 사람과 조건의 힘이 함께 했기에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혼자 주인공 되려 하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앞선 수강생의 칭찬에 대답해 보자면

‘네 감사합니다. 수업이란 게 강사도 잘해야 하지만 좋은 수강생분들을 만나야 가능한 것이거든요. 저 역시 감사해요. 좋은 시간 되셨다니 뿌듯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진짜 겸손의 말하기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겸손한 것처럼 보이려는 연기를 하면서 1차원적 대사 외우기 식으로만 접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속으로는 사실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으면서 겸손한 척 가짜의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겸손하기 위한 방법을 이해함과 동시에 삶에 대한 진짜 겸손한 태도를 가지면 말하기는 덤으로, 자동自動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최고의 선수인 손흥민 선수는 최고 평점을 받고 무려 3골을 넣은 경기 후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습니다. 팀이 어려운 시기에 오늘 같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죠. 최근에 감독님이 새로운 전술과 움직임을 말해주셨고, 동료 팀들과 함께 계속 노력했습니다. 오늘 동료들은 최선을 다해줬고 우린 함께 승리하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해리캐인 선수가 본인의 슈팅기회를 저에게 양보해서 골까지 넣을 수 있었죠. 응원해 준 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남은 경기도 좋은 결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 그의 진정한 겸손한 말 뒤에는 축구코치이자 멘털 메이트인 아버지 손웅정의 영향이 있었다. 축구는 팀이 만드는 스포츠이고 절대 혼자만 잘해서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실력을 키우되, 결국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근본적인 시각과 마음가짐을 키워줬던 것이다. 실제로 그런 마음가짐은 동료를 존중하게 하고, 그 존중은 팀워크와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확률을 높여준다.

홀로 설 수 있는 강인함이 있어야 하지만, 세상은 결국혼자서만 살 수 없고, 내가 다 한 것 같지만 분명 누군가의 조력이 있었다. 때론 날씨가 도움을 줬고, 심지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했던 상황이 나중엔 도움이 되어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한다. 여러 힘과 마음이 모여 이뤄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진정한 겸손이란 '내가 마냥 낮아지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아닌, 나의 성과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며 상대를 높일 줄 아는 마음이다'

keyword
이전 06화말 잘하는 것과 대화 잘하는 건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