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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퀘스트 Nov 05. 2019

책도 읽지 않는 시대에 유료 독서 클럽이라고?

2015년 가을, 그는 유료 독서 클럽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많은 사람이 무모한 시도라고 했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누가 돈을 내면서까지 책 읽는 모임에 참여하겠나’라는 이유였다. 시작하자마자 분명히 망할 거라고들 했다. 그는 이번에도 호기로웠다. 4개월 20여만 원의 멤버십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몸의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 돈을 내고 다니는 만큼, 지적인 건강을 위해 돈을 낼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는 게 그의 대담한 가설이었다.

트레바리 홈페이지

그 주인공이 바로, 2019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인 ‘트레바리’의 창업자 윤수영(31) 대표다. 트레바리는 2015년에 사무실도 없이 지인 10명을 설득하여 회비를 모아 작게 테스트하면서 시작한 북클럽이다. 그런데 4년 만에 클럽 수 300개, 회원 수 5,600명의 규모로 성장하며 스타트업의 이상적인 성장곡선인 J커브를 그리고 있다. 밀레니얼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9년 2월 유명 벤처캐피털인 소프트뱅크벤처스와 패스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50억 원을 투자받았다. 창업 후 8개월 동안 혼자 운영했던 회사는 이제 직원이 30명을 넘어섰으며, 독서 클럽은 가입비 19만 원부터 43만 원까지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2017년 1월의 한 장면을 회상해본다. 나는 그가 압구정역 인근에서 북클럽 공간을 확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4층의 작은 공간을 사용하다가 그 건물 지하 1층의 넓은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지하층은 과거에 룸살롱으로 쓰이던 곳인데, 트레바리는 문 닫은 룸살롱의 인테리어 대부분을 그대로 재활용했다. 예전에 술이 놓였을 스탠드에는 책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 북클럽 회원들이 남녀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룸에 들어가 토론하는 모습을 봤다. 그 장소를 지적 유희의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돈으로 매개된 이들이 유흥을 즐기던 기성 사회에 통쾌한 아이러니를 선사한 것이다. 비단 건물만 변화한 것이 아니었다. 건물주 2세도 트레바리 북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트레바리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트레바리 압구정동 지점

그해 9월에 이뤄진 〈에스콰이어〉 박찬용 에디터와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윤수영은 몇 번이나 이말을 했다. 처음 만났던 화요일의 늦은 밤에도, 원고를 쓰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일요일 새벽에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건트레바리를 다룬 다른 언론 인터뷰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한 말이다.     

몇 가지 기사를 통해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나도 들었다) 트레바리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14년 10월 카카오와 합병됐다)에 들어간 그해에 세월호가 가라앉았어요. 학생 때는 이런 이슈가 생기면 글을 썼는데 사회인이 되니까 쓸 수가 없었어요. ‘너는 얼마나 떳떳하길래 남의 일에 떠들 수 있냐’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하게 됐어요.”     

- “트레바리는 무엇을 판매하는가”, 〈에스콰이어〉, 2017년 9월호     


돈을 받는 독서 클럽이 가능하다는 기적에 이어 불가사의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직원이 됐다. 이들은 다양한 경력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 삼성전자 출신, 제일기획 출신, 스타트업 ‘토스’ COO 출신, tvN PD 출신 등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내던지고 합류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이정모 관장, 네이버 김상헌 전 대표, 카카오메이커스 홍은택 대표, 시사인 간판 기자 천관율 등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클럽장을 맡았다. 클럽장이 있는 모임은 일반 클럽보다 10만 원 정도 더 비싸다. 그렇다고 해서 클럽장에게 많은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들 시니어에게 클럽장으로서 가장 큰 보상은 다양한 분야,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자신도 배움으로써 ‘꼰대로 퇴화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트레바리 북클럽에서 토론 중인 회원들

윤수영 대표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꿈은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2017년 3월에 네이버를 퇴사한 김상헌 전 대표가 안국동의 5층짜리 건물을 매입해서 문화공간을 열고 2층과 3층에 트레바리를 입주시킨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건물 1층은 한국을 소개하는 영어 원서가 전시돼 있는 카페로, 4~5층은 자신과 배우자가 함께 쓰는 공용 사무실과 자택으로 꾸몄다.     


이렇게 볼 때 트레바리는 단순히 북클럽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초고속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렸던 지적· 사회적 자본을 생성하고 서로 연결하는 개척자다.그럼으로써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간다.     


윤수영 대표는 이렇게 자신만의 창의적인 길을 가고 있다.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겠다는 개인적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입사했고, 정확히 같은 이유로 1년여 만에 회사를 나왔다.


트레바리를 창업하여 자신이 세운 사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맞이하고 클럽 멤버들로 참여시킴으로써 변화를 키워가고 있다. 그는 세상과 연결된 소명과 정체성을 통해 자기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도록 끊임없이 디자인해나간다.


<밀레니얼의 반격>은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 시스템과 성공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밀레니얼 개척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가 정의한 ‘밀레니얼 개척자’는 특정 세대를 일컫는 게 아니다. 이들은 나의 성장을 위해 일하고, 취향과 가치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서울·강남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방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50~60대 기성세대의 젊은 시절 목표는 성공이었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최대한 많은 부를 쌓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조직을 위해 일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하기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선다. 조직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라이프 디자이너’의 모습이다.     

기성세대들이 이런 흐름에 많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도 이제 100세 시대에 접어들며, 은퇴하더라도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 살기엔 불안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니 두렵다. 저자는 강조한다. “늦기 전에 밀레니얼 개척자들의 변화를 이해하고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밀레니얼 시대의 진정한 생존법이다. ”   

- 「성공 공식 벗어난 밀레니얼 개척자들」, 한국경제, 2019. 10. 31  -


☞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주도하는 혁신가들이 몰려온다!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 시스템과 성공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트렌드세터들이 있다. 일명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이다. 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30여 명의 혁신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개별적인 트렌드 키워드만 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 변화의 큰 그림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 『밀레니얼의 반격』 읽어보기 http://bit.ly/320K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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