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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화 Apr 28. 2020

이름

초단편소설

‘뭐? 일억 원?’ ‘응 일억 원. 현금으로.’ 매우 흔한 편에 속하는 B라는 이름을 내 기억 속에서 특정 짓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던 것 같다. 12년 만에 불쑥 나타난 B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채 소화시키기도 전에 B는 내 머릿속을 헤짚어놓을 얘기를 꺼냈다.


B는 내 이름을 사고 싶다고 했다. 활발한 성격 탓에 학급 반장을 도맡아 하던 나와는 달리 B는 그리 눈에 띄지 않던 친구였다. 2학년 학기 시작과 동시에 전학을 왔던 B는 교실에서 창가 쪽 제일 앞자리를 선호했다. 창가에 가장 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햇볕이 들지 않는 자리였기에 누구 하나 원치 않았던 자리여서 B는 손쉽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B는 햇볕을 피해서 시커먼 TV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기라도 한 건지 TV함 앞의 어두컴컴한 그늘에 바짝 붙어서 마릴린 멘슨인지 하는 메탈 음악만 주구 창창 듣던 애였다. 2학년 1학기 내내 0교시부터 야자가 끝날 때까지 누구 하나 B에게 말을 거는 걸 본 기억은 없다. 나름 반장이랍시고 두어 번 B에게 무슨 음악 듣는지 물어봤었는데 B는 누군가 말을 거는 게 불편하기라도 한 건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묻는 말에만 대답해줄 뿐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창 다들 진로문제로 슬슬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예민해질 무렵 교실에서는 B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B가 전학을 오기 전 이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었는데, 그 괴롭힘의 정도가 나날이 심해지던 중 한 녀석의 실수로 B의 팔이 부러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B의 팔을 부러뜨린 녀석이 실종되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무당인 B의 어머님이 실종사건의 범인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경찰 수사 이후에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주를 해서 한강에 뛰어들게 했다는 둥, 귀신에 씌이게 해서 죽였다는 둥 무성한 추측을 뒤로 한채 B는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 그 소문을 듣고 나서는 B와 딱히 대화를 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사실 확인도 되지 않는 소문이었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서 무당 어머니를 둔 B를 두렵게 느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B를 마지막으로 본 건 고등학교 졸업식날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부모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학교를 떠나기 전에 운동장 한편에서 비슷하게 어울리던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노란 염색머리에 밀가루를 잔뜩 묻히고선 서로서로 어느 대학에 붙었는지를 얘기하고 있는데 B가 불쑥 내 옆에서 나타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쭈뼛쭈뼛 서있는 B의 옆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검은색 긴 생머리의 여자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똑바로 서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서있었다. ‘B의 누나인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밀가루 하나 묻지 않은 새까만 머리카락을 한 B는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너 얘랑 친했어?’라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부끄러움인지 두려움인지 헷갈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B의 사진 제안을 거절해야겠다 생각하고 도망칠 궁리만 하던 그 순간 B의 옆에 서있던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가 A로 구나. B에게 얘기 많이 들었단다.’ 그 순간 나를 뚫어지게 보며 카메라를 들고 있던 여자가 B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B와 사진 한 장 찍으렴.’ B의 어머니의 말은 마치 나에게 건 주문처럼 나를 굳어지게 만들었고 나는 그렇게 산송장처럼 뻣뻣하게 서서 B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 기억 속 B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 ‘불쑥 연락해서 미안한데 네 이름을 꼭 사야 해’ 말도 안 되는 부탁이라 생각하고 헛소리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했지만 내 기억 속 B는 너무나 두려운 상대였다. 아니 사실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생각을 틀어막아버린 건 B의 어머니의 존재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뭐 어머니랑 관련된 일이야?’ 나의 질문에 B는 졸업 후 그동안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B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삼수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며 3년 전에 결혼을 해서 현재는 태어난 지 2주 남짓된 아들이 있다고 했다. 거금을 주고 내 이름을 사겠다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B가 번듯한 직장에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B는 이어서 일억 원을 주고 사겠다는 내 이름의 용도는 자신의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으로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무당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아들의 사주에 액운이 잔뜩 껴서 특정 사주를 가진 사람에게서 이름을 사야만 불운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B는 수소문 끝에 그 특정 사주를 가진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아냈고 내 이름을 사기 위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이름을 판다는 것이 무슨 물건 파는 것처럼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액운 이야기에 불안감이 더해져서 혹시나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찝찝함에 B의 제안을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B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손주의 액운을 막기 위해 무당 할머니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손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특정 사주를 가진 사람을 어렵게 찾아냈는데 그 사람이 거절해서 손자가 불행해진다면 아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두려운 상상을 하며 두려움과 점점 타협하기 시작했다. 나름 대기업에서 맞벌이를 하는 번듯한 삶이지만 일억 원은 그냥 뿌리치기에 적은 돈은 아니었다. 아내는 내심 반대하는 듯 보였지만 집 대출금 상환 기간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본 후에 나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B에게서 나에게 액운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고 내 이름을 팔아 일억 원을 받았다. 혹시나 남아있을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더 확실하게 떨쳐버리기 위해 이름 꽤나 유명한 작명소에 가서 거금을 주고 좋은 이름을 받아서 개명을 했다. 좋은 이름 덕분인지 B의 무당 어머니가 손주의 액운을 떨치게 도와준 나에게 축복이라도 빌었던 것인지 이후의 내 삶은 거짓말처럼 잘 풀렸다. 처음 일 년 사이에 기대하던 아이도 생기고 직장에서도 승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함도 잠시, 해를 넘겨 내 삶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혼생활 5년 만에 어렵게 가진 아이가 6개월째에 유산되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이름을 판 것 때문이라며 유산에 대해 내 탓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한 부부관계는 3개월이 더 지나서 완전히 끝나 버렸다. 그 이후 내 운명이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창 떠들썩했던 경제전쟁의 피해로 일본을 주 고객으로 하던 회사는 휘청했고 나는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최우선 정리해고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 사정으로 인해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나온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위자료를 주고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은 겨우 푸드트럭 하나를 장만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평생 해보지도 않은 요리를 배워서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장사 마감을 하고 집으로 가던 퇴근길에 도로로 갑자기 뛰어든 행인을 치고 말았다. 자살기도인지 보험사기범인지 모를 행인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나 또한 경미한 부상으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간단한 CT촬영으로 끝난다고 했던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큰 병원을 찾아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촬영한 MRI 결과 이미지를 보면서 담당교수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간암 말기 판정과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이쯤 되니 간암이라는 게 그동안 부어라 마신 술 때문이 아니라 이름을 판 것 때문이라는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B에게 내 이름을 판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송두리째 팔고 겨우 일억 원이라는 돈을 받은 것이다. 나는 B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다. 시한부로 죽기 전에 따져 묻고 싶었다. 정말 나에게 온 액운이 B의 아들에게서 옮겨온 게 아닌 것인지 말이다. B는 만나자는 내 연락을 받고 다음날 약속 장소에 어머니와 함께 나타났다.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B는 자리에 앉으며 내 사정을 물었다. 나는 B에게 이름을 판 후에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고 일련의 일들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따져 물었다. B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지갑을 찾는 시늉을 했고 나는 적선 따위 받으러 온 게 아니라며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소리친 순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B의 어머니가 테이블 위의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고맙다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린가. 이름을 팔고 나에게 액운이 끼치지 않을 거라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단 말인 건가' 하는 생각에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런 나의 손을 B의 어머니는 더욱 강하게 움켜잡았다. 순간 나의 시선은 보란 듯이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B의 손을 따라갔다. 겨우 지갑을 찾은 B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테이블 위로 밀어내듯이 들이밀었다. 나는 B의 명함에 쓰인 내 이름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B와 그의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는 내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B의 어머니는 내 손을 더욱더 꽉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긴 손톱이 내 손을 파고들어 이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손을 도저히 빼낼 수가 없었다. B는 힘들 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들었고 그 순간 나는 B의 지갑에 꽂혀진 나의 졸업식 사진을 발견했다. 나와 B가 나란히 찍힌 그 사진은 마치 부적처럼 B의 지갑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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