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근대 소설의 효시다.’
이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가장 우수한 비평가라고 일컬어지는 알베르 티보데가 <돈키호테>를 평한 것이다. 2002년 노벨연구소에서는 전세계의 유명 작가 100인에게 역사상 최고의 책을 선정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1위를 차지했으며 투표한 작가들의 50퍼센트 이상이 이 책에 투표했다.
나는 <돈키호테>를 미친 기사의 무모한 모험기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이 책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유는 이 책이 쓰여진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돈키호테>가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널리 칭송 받고 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기 1453년, 당시 약관의 나이에 불과했던 오스만 제국의 군주 메흐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다. 그와 동시에 1000년 가량 지속되었던 길고 긴 서양의 중세는 막을 내린다.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은 서쪽으로의, 즉 유럽 진출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이에 대항하여 신성로마제국과 베네치아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오스만 제국에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럽의 보석, 콘스탄티노플을 손에 넣은 오스만 제국은 너무나 강성했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둘러서 가지 않는 이상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교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은 신항로 개척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1492년 콜럼버스는 뜻밖에도 신대륙을 발견한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중상주의의 시대가 시작된다.
<돈키호테>는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중세가 종언을 고한지 15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1571년에 일어난 레판토 해전은 <돈키호테>에서도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써 등장하는데, 기독교 동맹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과 맞붙어서 오스만의 유럽 진출을 저지한 전투이다. 실제로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 전투에 참전하여 왼손을 잃었고 이후로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기사도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중세 기사의 갑옷을 입고 편력기사 활동을 하는 것은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도포와 갓을 쓰고 과거시험을 보겠다고 걸어서 한양으로 상경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이 범람하던 시절에 그것을 180도 뒤집어 미친 기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함으로써 포스트 모더니즘, 아니 포스트 중세 소설의 시대를 훌륭하게 열어젖혔다.
<돈키호테>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도 소설에 푹 빠져서 사냥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은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이달고(하급 귀족)이다. 그는 수많은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가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고 미쳐버리게 되어 스스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편력 기사 중의 하나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줄 자신의 비쩍 곯은 말에게는 나흘 간 고민한 끝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자신에게는 위대한 기사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 다시 여드레를 고민하고 난 후에 ‘돈키호테’라고 스스로 명명한다. 마침내 돈키호테는 세상에 정의를 내리고 불의를 타파하며 약한 자들을 돕는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서 전속력으로 돌진했다가 땅바닥에 나뒹굴기도 하고, 양떼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 두 군대의 싸움이라 착각하여 그곳에 뛰어들어 양떼를 학살하기도 한다. 물론 몇 차례의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대부분 돈키호테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끝으로 돈키호테는 우리 안에 갇힌 채로 소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미치기는 하였으나 곱게 미친 사람이다. 미친 돈키호테에게는 자기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 예를 들면 먼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넓은 땅을 다스릴 기회가 그에게 거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도에 따라서 자신의 귀부인 ‘둘시네아’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그 기회를 대번에 박차버린다. 기사 서품을 받기 전날에는 훌륭한 기사라면 의례 준수하는 법도에 따라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마당에 세워둔 자신의 갑옷을 지키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쉬운 길이 있음에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길이 아니면 절대 그 쪽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줏대 있게 미친 돈키호테는 매사에 위엄이 넘치고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매달 초 카드명세서를 들여다보고, 매달 말이면 월급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을 확인한다. 부동산 가격과 주식의 등락에 일희일비하고, 때로는 그것이 결혼이나 이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한순간이라도 현실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죽기 전에 떠오르는 건 못 먹은 밥일까, 못 다 이룬 꿈일까?’
돈키호테는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미쳐버린 사람이다. 물론 미치지 않고서는 현실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돈키호테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 풍차 날개에 쳐 박힐지라도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인을 쓰러뜨리고자 달린다. 그렇기에 <돈키호테>는 우리 시대에도 통용되는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돈키호테>를 읽어야 할 이유를 거론하자면 다른 어떤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이 책은 재미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이기는 하지만, 700 페이지가 훌쩍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을 가진 책이기는 하지만 읽는 내내 단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돈키호테의 기행과 그의 종자인 산초의 재기 넘치는 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편력 기사가 이유가 있어서 미친다면 감사할 일이 뭐가 있겠나. 핵심은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미치는 데 있는 것이야. (본문 중 p. 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