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갈빗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과 그간의 회포를 풀던 날, 오른쪽 아래 작은 어금니가 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그냥 술을 먹었으니 그런 것이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어차피 술은 계속 넘어가고 있었고 더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술을 진탕 먹어서 머리가 아픈 상태로 눈을 뜬 토요일 아침이었다. 아직 위장에 남은 술이 자꾸 마중을 나오는 바람에 점심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술이 점점 깰수록 사악한 기운이 입안에 흘러 들어왔다. 치통이 시작된 것이다.
치과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치과들이 토요진료를 마친 시간이었다. 어떤 악마가 오른쪽 아래 작은 어금니를 곡괭이나 낫으로 내리치는 듯한 고통이 계속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기는 커녕 악마는 점점 진화해 사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주말이 채 지나기도 전에 치통으로 한 청년이 사망했다고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 싫어서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달려갔다.
"치통이 너무 심한데 제일 빨리 드는 약으로 좀 주세요."
약사님께 애써 고통스러운 표정을 숨기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뽑았니?"
"아뇨, 그냥 아파요"
약사님은 박스에 든 약과 봉지약을 하나씩 내밀며 같이 먹으라고 했다. 곧바로 약을 먹고 평소에 믿지도 않는 신께 치통이 가라앉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 어딘가의 신이 들어주셨는지 1시간 후에 점점 치통이 가라앉더니 곧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휴."
죽다 살아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약발이 좋아서인지 이후로도 치통이 없어 화요일이 되어서야 집 근처 치과에 갔다. 진단 결과는 당연히 신경치료였다. 이전에 큰 어금니 신경치료를 해 본 적이 있었고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찰나 의사 선생님이 사진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음, 위쪽 작은 어금니도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신경치료를 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때우긴 해야겠어요."
"아...? 아... 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래쪽은 당연히 치통도 심했고 '이건 무조건 신경치료다'라며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위쪽도? 평소 오른쪽으로 잘 안 씹어서 내가 잘 몰랐던 건가? 그럴 리 없다. 이건 그냥 소리 없이 찾아온 날벼락이었다. 사탄이 아래쪽 작은 어금니를 아작 내는 동안 무장공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쪽에도 침투 중이었던 것이다.
"... 둘 다 치료해 주세요."
곧 내 몸은 눕혀졌고 신랄한 드릴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어떤 병이든 꼭 병원에 가야만 하는 상황, 그러니까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이미 돌이키기엔 늦은 경우가 많다. 시간이든 돈이든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상황만 놓고 보면 마치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경찰서에 출두했을 때와 같다. 만약 죄를 저질렀고 경찰서에서 '오셔야 해요'라고 말했다면 더 이상 그 죄를 짓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어쩌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병원과 경찰서는 '별일 없을 때는 그냥 가기 싫은' 부분이 닮았다.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을 갈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경찰서에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이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병원에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을 것을 꾸준히 권장한다. 건강이라는 게 앞에서도 말했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악화되다가 어느 순간 아프다고 인지되는 순간이 왔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경찰서에서는 내가 죄를 지었는지 짓지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죄는 내가 지으면 누군가 신고를 하겠지만 병은 내가 걸리더라도 누군가 대신 병원에 알려주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환자 개개인의 건강을 알리가 없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내원하여 검진을 받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비록 내 자아가 시켜서 '아래쪽 작은 어금니 말고도 전체적으로 한 번 검진을 받으러 가볼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위쪽에도 내가 모르는 충치가 있었다. 이 것을 일찍 발견한 것에 대한 효과는 확실했다. 아래쪽처럼 신경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되기도 전에 발견했으니 심적으로도, 고통적으로도, 그리고 비용적으로도 모두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아프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플 때까지 버티고 버티는 짓은 미련하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정신, 건강 등의 비용을 지불하는 꼴이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참고 있었어요?'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아프다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곧바로 행하면 되는 것이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곧바로 어디가 이상한지 확인해 보면 된다. 그것이 아주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더 나은 지름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치료 경과와 소감을 전했다. 대충 예전에 받았던 신경치료보다는 덜 아프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치아 건강은 오복 중에 하나이니 잘 관리하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