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슬픔은 망설임으로 잊혀진다

by 데어릿

그 골목길은 사람이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만 그 모습이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그는 그곳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는 그대로 뒤돌아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혹시나 그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퉁이를 돌았는지 이제는 어느 가로등에서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흔한 이별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나를 떠났다. '잘 지내'라고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행복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형광등도, 무드등도 켜지 않고 새까만 천장을 바라봤다. 항상 이때쯤에는 잘 들어갔냐며 나를 찾던 작은 휴대폰 불빛도 이제 없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겨우 손을 뻗어 협탁에 올려둔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곧바로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였다. 사진, 지워야겠지. 갤러리를 열고 가장 최근부터 가장 오래된 사진까지 천천히 음미했다. 참 많이도 찍었네. 여전히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진짜 매몰차다 매몰차."

다음 날 친구가 술이나 마시자며 나를 끌고 나왔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있던 골목길에서 그가 나를 떠나갔던 일을 얘기해줬더니 친구는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연신 욕을 해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실 때마다 나와 친구의 기억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너희 되게 좋지 않았냐며, 여행 간다면서 방방 뛸 때 기억 안 나냐며 계속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심지어 네가 걔한테 헤어지자고 했을 때는 걔가 울고 불고 하면서 매달렸다며."

"그랬지. 그렇게 우는 모습이 짠해서 결국 다시 만났는데... 결말이 이렇다."
좋았을 때를 떠올릴 땐 아련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화해서 이걸 따져?

"아 맞다, 전화번호."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도 아직 안 지웠다. 연락처를 켜보니 맨 위에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하트까지 달려있는 상태였다. 곧바로 그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그러나 휴대폰에서만 지워졌을 뿐, 그의 번호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전화는 언제든 걸 수 있었다. 별 수 없이 다시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술 마시고 기억이 끊기듯 그의 번호도 잊을 수 있을까.

그 골목길은 이보다 훨씬 어두웠다 (출처 : pixabay)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계속 망설였다. 처음 그가 나를 떠나던 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달려가 붙잡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인사도 없이 떠나는데 굳이 가서 잡을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지금 잡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으니까 가서 잡아야 할까? 망설임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우리가 찍은 이 수많은 사진들을 지금 당장 지워야 할까? 말아야 할까? 친구와 술을 마시던 날, 그에게 전화해 내 억울한 심정을 토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수많은 망설임의 끝에 결국 나 또한 돌아서기로 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도 달려가 붙잡지 않았다. 우리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통째로 삭제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절대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돌아서는 순간은 너무나 아팠다. 그냥 그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왜 이런 아픔을 느끼고 왜 이렇게까지 망설여야 하나 눈물이 났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면서 참았다. 떠난 것은 그 사람이었지만 그런 그를 놓아주기로 한 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렇게 아픈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에게 돌아가지 않는 게 당연해질 때쯤, 더 이상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별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하던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이별 당시에는 곧 죽을 것처럼 마음을 옥죄이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망설임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잦아들었다. 처음엔 그 사람 생각만 해도 아팠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졌다. 이제는 누군가 그 사람 얘기를 해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망설임은 이별의 슬픔과 함께 희미해졌고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확실히 시간은 약이었다.

만약 어쩌다 우연히 그를 마주친다면 그때도 나는 웃을 수 있을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어쩌면 나를 매몰차게 떠나던 그날의 기억에 다시 삼켜질지도 모르겠다. 아, 몰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날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오늘도 그와 마주치지 않길 바란다.


* 위 사건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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