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칸의 강남역 계단은 마치 아오지 탄광으로 향하는 길과도 같았다. 출근 시간대 전철에서 쏟아지듯 나온 사람들은 누구든 그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밑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발소리 이외에는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으로 터벅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히 고개를 푹 숙이고 그렇게 계단을 오른다는 점이 왠지 모르게 스산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뒤통수 또는 발을 보고 있으면 '출근하기 싫다'는 말이 무한 반복 재생되어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강남역에 도착해 전철 문이 열리면 A는 가장 먼저 계단에 오른다. 외길로 나있는 계단이지만 그가 선두에 선 만큼 뒤따르는 우리를 보다 평온하게 데려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A는 사력을 다해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두 칸씩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며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빠져나갔다. 아마 A는 화장실이 굉장히 급했거나 아침부터 회사에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말 회사가 좋아서 다니는 워커홀릭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앞에서 이끌어주는 리더의 시대는 이제 정말로 저물어 버린 걸까? 우리는 A가 날아가듯 계단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았다.
A가 빠져나가고 난 뒤 B그룹은 누가 선두라고 할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B그룹 사람들은 계단에 오르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앞사람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향한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촘촘한 계단보다 더 촘촘하게 걷다 보니 앞사람이 잠시 휘청이면 그 줄 모두가 휘청인다. 가끔씩 고개를 획하고 들어 위쪽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계단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는 모양이다. 이 계단만 끝나면 진짜 이제 출근을 해야겠구나. 남은 계단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는 소리가 발소리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B그룹을 지나면 행렬의 후미에 다다른다. 이들은 B그룹이 계단을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처음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 첫걸음을 조심스럽게 걷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는 시야를 내던진다. 후미 그룹은 그렇게 앞사람 뒤통수를 보는 듯하면서도 앞사람 발 뒤꿈치를 밟지 않게, 또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뒤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여유롭게 걸어도 되지만 B그룹과 멀어질 수는 없기에 고개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나는 대체로 여기, 후미 그룹에 속해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무게로 인해 고개를 저렇게 떨구고 계단을 오르는지, 얼마나 저 계단을 오르기 싫을지 감히 망상을 하며 함께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망상에 빠져있는데 뒤쪽이 어수선했다. C가 가지런히 정렬된 줄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어떻게든 빨리 가야 한다는 듯 눈치를 줬다. 외길로 나있는 계단에서 좌우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밀치더니 쏜살같이 나를 지나갔다. C가 한 명을 밀 때마다 같은 줄 모두가 휘청거렸고 사람들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C는 잠시 뒤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더니 주변을 잠시 확인하고는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다. 1년 가까이 강남역으로 출근하면서도 한 두 명 볼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까. 분명 C는 A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앞서 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고 싶었으나 앞에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니면 정말 화장실이 급했는지도 모르지. 어제 마신 술이 자꾸 마중을 나왔다거나. 계단을 다 오르고 주변을 확인한 것이 가까운 화장실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지.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오지 탄광을 가본 적은 없다. 누구든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괜히 그 다섯 글자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죽더라도 가기 싫은 곳이라는 것을. 요즘 회사를 가는 것이 그렇다. 그냥 다시 돌아서 전철을 탈까. 오늘 하루쯤 나 없다고 회사가 망하지는 않잖아. 더욱이 내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가야겠지. 나 하나라도 먹고살아야지. 저녁에 술 한 잔 하려면, 주말에 친구랑 놀려면 오늘도 벌어야지.
어쨌든 나도 계단을 끝까지 올라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한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은 10개가 넘는 강남역 출구 중 자신의 회사와 가까이 있는 출구를 찾아 빠르게 멀어져 갔다. 지하를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영 어둡다. 이런 식으로 출근하는 날 따위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 계단은 없지만 괜히 고개가 숙여진다. 어깨가 무겁다. 이제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