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 되면 네가 생각 나

by 데어릿

길거리에 있는 아무 꽃이나 사진으로 찍어도 예쁜 계절이 왔다. 노을 아래에서 꽃이 빛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마음을 흔드는 봄이 왔다. 이어폰을 꽂고 공원에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커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으면 바람에 실린 봄 냄새가 좋다가도 괜히 혼자 청승을 떨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욱신거린다. 그러나 그런 욱신거림 마저도 봄의 설렘이라고 애써 감춰볼 만큼 날씨는 너무 완벽했다. 그리고 이런 날에는 항상 네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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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벚꽃은 좋아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강 공원에서 여느 커플들처럼 손을 꼭 잡고 벚꽃 사이를 거닐기보다는 벚나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호텔이 있기를 더 좋아했다. 한강뷰도 좋고 오션뷰도 좋지만 벚꽃뷰는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거라며 너는 항상 벚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겨울이 천천히 물러가고 옷이 점점 가벼워질 때마다 상기되는 너의 기분에 나도 덩달아 설렜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우리는 왕벚나무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을 예약해 체크인 시간이 되자마자 들어갔다. 너는 가방을 대충 침대에 던져두고 곧바로 뛰어가 발코니 문을 열더니 호텔방을 봄바람과 벚꽃 풍경으로 가득 채웠다. 발코니 문을 열자마자 '살랑'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너의 긴 머릿결이 흩어졌고 그 뒤로 벚꽃잎이 흩날렸다. 그 풍경은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온전히 담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연신 '아 너무 좋아'를 외치는 너를 잠시 감상하다가 가방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미리 준비되어 있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너는 잠시 뒤 커피 냄새를 맡았는지 나를 홱 돌아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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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걷다가 마침 비어있는 벤치가 보여 앉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다리를 꼬고 지나가는 커플들을 눈길로 따라가 보았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가려지지 않는 행복한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걸어 다니며 봤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는 듯했다. 생각의 텀이 짧아지고 아무 생각이나 하면서 가만히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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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발코니에서 두 시간쯤 수다를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너는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발코니까지 올라오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직장상사 뒷담화도 하고 잘 나가는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하며 해가 점점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도 않았지만 너는 벌써 저녁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이런 날에는 또 술이 빠질 수 없다며 미리 준비해온 와인과 잔을 꺼냈다. 너는 이런 데서는 또 우리 전용 잔을 써줘야 되지 않겠냐며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잔을 닦았다. 나는 또 그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이런 점은 너와 참 잘 맞았다. 비록 나는 소주를 좋아하고 너는 와인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게 그렇다는 것일 뿐 둘 다 주종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술을 대하는 그 마음가짐이 항상 좋았다. 좋은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항상 술이 빠질 수 없다는 그 마인드는 그 어떤 술친구도 부럽지 않았다. 심지어 둘 다 숙취도 심한 편이라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다음 날 몹시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눈앞에 있는 술에 충실했던 네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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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앉았다 걸었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해가 점점 지는 걸 보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가서 소고기 구워서 소주나 한 잔 해야지. 해 지기 전에는 집에 도착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 때보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커플들과 벚꽃 사이를 헤집으며 걸어갔다. 더 이상 풍경이나 커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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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에 스테이크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내려가 받아오는 동안 너는 방에 남아 세팅을 했다. 방에 돌아오니 너는 나보다 스테이크를 더 반기는 듯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테이블에 음식을 먹기 좋게 꺼내 놓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이 모두 펼쳐질 때까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던 너의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천천히 음식을 꺼냈더니 '아 오빠 빨리 좀!'이라며 나를 다그쳤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한 번 웃어주고는 스테이크를 꺼내고 와인을 따라 주었다.

"짠!"

와인잔이 서로 부딪히며 예쁜 소리를 냈고 우리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너는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썰어 입에 넣더니 당장이라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듯이 좋아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빤히 쳐다봤더니 너도 괜히 민망한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근데 식당 가서 먹어도 되는데 왜 시켜먹자고 했어?"
"뭐 어때~ 우리가 와인이랑 잔도 준비해왔고, 또다시 나가려면 귀찮잖아."

비록 고급 레스토랑도 아니었고 멋스러운 식기에 올려진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너는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그저 좋은 풍경에, 넉넉한 술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소탈한 너의 대답에 나는 또 기분이 좋아져 연신 와인을 마셔댔다.

"오빠랑 같이 있으면 항상 편안해."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뒷정리는 내일 하자며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네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몸을 꼼지락거리며 너를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왜?"
"몰라. 그냥 같이 있으면 편안해 너무 좋아"

너는 내 품에 더 깊숙이 파고들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속눈썹이 내 가슴팍에 닿아 간질거렸다. 조심스럽게 너의 얼굴을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에 질세라 너의 입술은 내 볼에, 입술에, 그리고 온몸에 와서 부드럽게 닿았다. 그날 우리의 밤은 어느 봄날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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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소고기에 소주를 마시며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봤다. 언젠가 너랑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일 수도 있겠다. 너랑 본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너 없이 지낸 날들도 수도 없이 많으니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마지막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설거지를 하며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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