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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Mar 22. 2023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

[서평] 편의점 재영씨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어폰으로 나오는 노래를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며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간다. 밥을 해먹기는 귀찮고 거창하게 시켜 먹기에는 배달비가 너무 비싸니 끼니라도 떼우자며 도시락 코너를 어슬렁거린다. 그 마저도 마음에 드는 도시락이 없으면 김밥과 컵라면 쪽으로도 고개를 돌려본다. 그렇게 대충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저녁 거리를 사들고 카운터로 간다. 익숙하게 바코드를 찍는 알바생. 전체 금액을 알려주는 듯 뭐라 말을 하지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카드를 내밀고 다시 익숙하게 결제를 한 뒤 영수증도 받지 않은 채 편의점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편의점을 이용하다 보면 숱하게 마주칠 수 있는 장면이다. 나만 하더라도 편의점 알바생과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잠깐 들리는 그 편의점에 내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이런 생각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나뿐만 아니라 그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편의점 알바들에게도 나는 그저 편의점을 이용하는 수십 명의 손님 중 한 명일 것이며, 내가 매일 와서 똑같은 라면을 고르든, 습관적으로 매일 소주 한 병을 사가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재영씨’는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에 찾아온 손님들을 항상 관찰했고 그들만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재영씨는 누군가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손님들을 관찰하고 말을 걸고 글로 남겨 의미를 부여해 주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의 따뜻함이니 우리는 재영씨가 그린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다.


- 잘하네. 야야 니 이것 쫌 해봐라.
- 뭐요?
- 여다 여를 여고 야한테 여를 보낼라 카는데 쟈가 여 없어서.
번역 들어간다. 카톡에 꽃 사진 이미지를 어떤 분에게 전송하고 싶다. 평소에는 또 다른 어떤 분이 그걸 대신 해줬으나 현재는 그이가 여기에 없다. 따라서 당신이 도와주길 바란다.


재영씨는 ‘꽃보다 할매’ 에피소드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어려워 하는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도와드린다. 사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저 대화에서도 재영씨는 파파고 뺨치는 번역 능력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고 그저 일 잘하는 편의점 알바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럼 다른 이야기도 살펴보자.


-네에, 저기 근데…….
-눼?
-저기…… 애들 고모세요?
-아 눼. 얘덜 울 오빠 자식덜유!
-아, 그렇구나.
-넘들은 지가 엄마인줄 알유! 흐흐흐.
(미안, 남들은 아빤 줄 알아.)
그들이 가고 재영씨는 멘붕이 왔다. 김 병장이 고모라는 현타가 오기까지는 그러고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여름이 가고 초가을 께 김 병장은 치맛단에 레이스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심지어 머리띠까지 장착한 채 나타났다.
(외박이야? 휴가야?)


재영씨는 편의점에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마치 병장처럼 그들을 다루는 (’그’인 줄 알았던)그녀에게 ‘김 병장’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관련 에피소드를 마음의 소리까지도 여과 없이 꺼냈다. 김 병장이 어딘가 데이트라도 가듯 한껏 꾸미고 온 날에도 그 컨셉을 꾸준히 유지한 채 ‘외박이야? 휴가야?’ 하는 마음의 소리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에서 나와 이 책에 박힌 것처럼 자연스럽다.


외국인 노동자들, 인종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ATM기를 자주 이용한다는 것! 출금보다 입금이 대부분 많은 걸 보면서 ATM기를 자주 찾을수록 가족 간의 사랑도 커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방 외곽에 있는 편의점인데도 외국인이 많은 걸 의아해했던 재영씨는 같이 일했던 M으로부터 그 이유를 듣게 된다. 알고 봤더니 근처에 공장이나 S대기업에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던 것.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그들의 ATM기 입금을 통해 재영씨는 먼 타국까지 전해지는 가족애를 느끼게 되고 우리도 그런 재영씨를 통해 같은 마음을 느끼며 흐뭇해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연간 편의점 이용 건수는 117억 1,574만 건, 일평균 32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전국에는 수많은 편의점이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유독 재영씨가 있는 편의점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편의점 이용 수가 일평균 320만 건에 달하는데 우리 집 앞 편의점이라고 평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주변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에게 묻거나 실제로 편의점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신의 편의점에는 눈에 띄게 특별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재영씨는 그들을 그저 지나치는 손님으로 보지만은 않았던 것뿐이다.


서민들의 삶이란 게 그저 삼양라면을 먹어볼까 너구리를 먹어볼까  하는 작은 선택의 과정 그리고 여기서 소확행 할 수 있는 것이 전부라면 전부다.


이 책의 뒤표지에도 일부 인용된 이 문장이 유독 여운에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 ‘혹시 우리 집앞 편의점에도 재영씨가 있지 않을까?’ 하고 달려갈 필요는 없다.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재영씨처럼 따뜻하고 재치있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어느 편의점에도 어느 ‘재영씨’가 있으며,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도 분명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또한 그걸로 됐다. 책이 벽돌처럼 쌓인 그곳에서 편의점 재영씨를 찾아냈다면 오늘 저녁은 삼양라면과 너구리 중에 무엇을 먹을지 한 번 고민해보자.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다른 ‘재영씨’가 등 뒤에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용 : 신재영, 『편의점 재영씨』, 에쎄, 2023.01.20.


http://m.yes24.com/Goods/Detail/117289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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