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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Feb 02. 2020

슬기로운 이별생활

슬기로운 이별생활         



      

이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나를 상처주기 위해 살고 있지 않고, 이제는 명백히 타인이 된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이것은 그저 나를 살게 하기 위한 기록일 뿐이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나는 상처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했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말하고 싶다. 어떤 기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온전히 내 몫이다. 어느 때의 나는 비겁했고 어느 때의 나는 무모했으며, 어느 때 내가 한 선택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 어떤 관계는 원치 않음에도 회복되었고 어떤 관계는 간절했음에도 영구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          



내가 있었다. 

늘 내가, 혼자 남겨져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경험’이 간절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몰랐고 실수투성이였으며 일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 파묻혀 밤새 울었다. 자괴감이 만들어낸 거대한 수렁이 늘 내 발밑에 있었다. 나는 온종일 나를 의심하고 매순간 나를 한심해했다.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시려고?      


나는 나를 향해 진심으로 비아냥거렸다. 자존감이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다름 아닌 내가 분주히 나 자신을 갉아먹던 그 때, 그 사람이 내게 왔다.                



그는 내 칠년 차 선배이자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 가든 그의 이름이 들렸다. 어느 술자리에서든 그가 있는 테이블이 가장 활기찼다. 그는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고 일정 부분 이상의 지분을 차지했다. 시스템, 인간관계, 업무, 친목. 그러니까 그는 ‘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찾아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를 동경했고, 그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 애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그의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종종 나를 불러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직 어려서 그래. 온도는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금방 좋아질 거야.”           


그가 말하면 정말로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주위 사람들 말을 빌자면 그는 나를 ‘귀여워’ 했던 것 같다. 그는 때로 나를 어린이라고 불렀다. 어린이는 이런 거 신경 쓰는 거 아냐. 어린이가 이만큼 했으면 잘한 거야, 충분해. 그러면서 그는 내 어깨를 꽉 붙안아주거나 뒤통수를 가만히 쓸어주곤 했다. 보스에게 욕설에 가까운 훈계를 들었을 때 사무실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나를 데리고 나가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커피를 사준 사람도 그였다.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십여 분이었지만 그는 내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언도 위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 나란히 앉아만 있어 주었다.    

  

이런 게 어른이구나. 이게 사회인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그를 절반쯤 짝사랑하던(온전히 사랑하기에 그는 다소 가벼운 캐릭터였고,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다) 동기와 선배를 적어도 세 명은 댈 수 있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무언가 보답 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둡고 숨 막히는 자학의 세계에서 그가 나를 끌어내줄 거라고, 드디어 나도 내 자리를 찾게 된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을 비밀로 했다. 회식이 끝난 뒤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2차에 갔다가 택시를 타고 몰래 길을 돌아 내게로 왔다. 그의 핸드폰에 나는 막둥이로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건 조금도 특별한 호칭이 아니었다. 업무 관계된 사람들 앞에서 그는 나를 투명인간 대하듯 했다. 간혹 농담을 건네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의 행동은 자연스러웠고 나는 자주 삐걱거렸으나 실수할 때 외에는 그다지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어떻게든 넘어갔다.     

 

집과 회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누구에게도 연고가 없는 곳이 우리의 데이트 장소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오해받는 게 싫어서, 라고 답했다.          

 

“너를 위해서야. 너 아직 회사에 적응도 못했는데 연애사부터 터져봐.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기 시작하면 회복하기 어려워.”           


그의 조언이니까, 나는 믿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오히려 일에 익숙해지면서였다.      


나는 하루빨리 한 사람 몫을 하고 싶었다. 나의 지나친 자괴감의 원인은 사실 내가 일을 극도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을 사랑했고 잘 하고 싶었고 일에 관련된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열망의 근원을 확인하고 나자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나는 일에 집중했다. 선배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타인의 경력을 구걸하는 것 같아 초라해질 때도 있었지만 선배들 대부분이 그런 시절을 버티고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디든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고 어떤 모임이든 틈이 보이면 끼어들었다.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을 즈음, 그가 나를 불렀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뭐가요?”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헤집고 다녀야 하냐고. 어리다고 귀엽게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렇게 나대고 다니다가 안 좋은 말 나오는 거 순식간이야.”      



그럼 선배는요?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럼 선배가 알려주면 되잖아요. 기껏 돌려 말한 것이 그것이었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는 일에 관련한 얘기를 내게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게 일을 알려준 적도, 선배들이 할법한 기본적인 조언조차도 해 준 적이 없었다. 나를 만나면 그는 수없이 많은 말을 했는데 대개 자신의 피로와 고충을 토로하는 얘기들이었다. 나는 그를 위로해주는 역할이었고 업무에 관련된 것을 물으면 그는 철벽처럼 말을 잘랐다. 그는 추임새처럼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는 편해서 좋겠다.” 
“네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래.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어린 게 무기지. 옆에서 백치처럼 웃고만 있어도 귀여워해주잖아.”




상냥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기에, 매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기에 나는 그 말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저변에 깔려 있는 무시와 멸시의 그림자들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친목모임(업무 관련 사람들이 아닌 고향친구나 고교 동창 같은 식의)에 동행했을 때 나는 그가 데려온 여자, 정도로만 취급되었다. 어린애 낚았구나, 이 도둑놈. 친구들이 야유를 보낼 때 그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회의실에서 상급 관리자들이 내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가 뭐라고 말을 잘랐던가. “에이, 얘 입사한 지 일 년도 안 됐어요. 애기예요, 애기.” 꼭 그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내가 내는 의견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가 한 말로 치부되어 종종 삭제되었다.      



나는 왜 그런 형태로, 그가 명명하는 대로 어린이인 채로,
의존적이고 기형적인 형태로 그의 곁에 멈춰 있었을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온도 너, 송차장이랑 잤냐?”               



부산스럽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송차장은 나의 사수였다. 입사 초기엔 내게 데면데면하게 굴었지만 그즈음 열성적으로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온도씨, 초반엔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잖아. 기획안을 일곱 번쯤 고쳐 써 다시 가져갔을 때 송차장은 모나미플러스펜을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었다. 대충 시간 때우다 이직하든가 시집가버리든가 할 작정인가 싶어서 온도씨한테 정이 안 붙더라고. 이 일이 우스운가 싶어 솔직히 짜증나고. 근데 요즘 온도씨 보면 마음이 가. 뭐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나는 송차장의 인정이, 은근한 격려가 고맙고 고마웠다. 그런데 그와 잤냐니.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가 역시, 라는 표정으로 화를 냈으나 어떤 오해도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뒤 나는 ‘어떤 소문’에 시달렸다. 어지러운 일이었다. 소문의 정확한 서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것이 졸렬하고 불결한 형태의 서사라는 것만은 전달되었다. 누군가는 믿지 않은 채 내게 확인했고, 누군가는 그저 흥미 위주로 나를 떠보았다. 소문을 믿는 누군가는 나를 대놓고 무시했다.         

  


나는 그저 일을 했다.           



나를 독립시키는 것, 나를 누구보다 단단하고 견고하게 완성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이고 그저 누군가의 옆에서 방싯방싯 웃으며 분위기를 띄울 뿐인 역할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직이나 결혼으로 손쉽게 도망칠 수 있는 여성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가 내린 편협한 정의이지 내가 아니다. 

그건 그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경박한 사고방식이지 내 생각이 아니다.           




상대방을 낮잡아 이르는 이는 결코 성인이 아니다. 
상대방을 끌어내려 자신을 우위에 두고자 하는 사람과는 연인도 친구도 될 수 없다.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그와의 연애에서 얻은 단 하나의 교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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