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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Feb 03. 2020

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슬기로운 이별생활 (2)


슬기로운 이별생활

(2)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나는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싫어한다. 그것이 필수와 의무로 엮인 가느다란 종이끈에 매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고지식한 나는 사족을 달 필요 없이 본론부터 꺼낼 수 있는 상대가 내 곁에 있을 때 안도한다. 안 그러냐? 그럼 그럼. 하는 식의 허술한 대화가 가능한 상대와 함께 있을 때 스스럼없이 웃을 수 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한 사람을 오래 관찰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 뒤에야 친구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약점투성이인 관계다.           



원치 않는 형태의 용서를 거듭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너무 어렵게 마음에 품은 친구이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내 안의 것을 함께 공유해온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섣불리 그들을 잘라내지 못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받은 뒤에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믿거나 상처받은 사실 자체를 숨기게 된다. 마음속 불만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데도 문제의 이유를 내게서 찾거나 잠시 거리를 두는 정도로 상황을 무마시키려 든다.           


상대를 잃을까 봐, 인연이 끊어질까 봐 두려워서다.           



나는 좋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어느 정도의 손해는 우정이란 이름으로 감수하는 그런 친구. 그러나 때로 나는 어떤 만남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오다 우뚝 멈춰서고 만다. 



나 혹시, 호구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른 고개를 젓지만 마음속에 부듯이 밀고 올라온 의심을 쉽사리 뽑아내지 못한 상태로 꺼림칙하게.                






            

친구는 삼십대 초반에 서둘러 결혼했다. 서둘러, 라고 말하는 이유는 오롯이 결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을 거듭한 뒤 성사된 결혼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무원 4년차였고 그 세계에선 지긋한 압박 같은 것이 있다고 설명했다. 빈약한 사회경험 뒤 일찌감치 프리로 전향한 나는 잘 모르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프리랜서라 잘 모르지, 이런 구조나 서열 같은 거.”

“짐작은 가는데 잘은 모르겠어.”

“야, 야, 짐작도 하지 마라. 사무실에서 내가 싹싹하고 부지런한 여직원인 건 내가 프로이기 때문이잖아? 근데 그치들은 그걸 맏며느리감이랑 결부시킨다니까.”          



저 만나는 사람 있어요, 라는 말을 하기 위해 친구는 몇 차례 선을 봤다. 이후에는 결혼의 필요성을 느껴 소개팅과 선을 거듭했다. 결혼을 결정한 뒤 친구가 데려온 사람은 얼굴이 밝고 선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애초에 영혼 한 쪽이 묶여 있었다는 듯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비슷하게 행동했다. 몰랐는데 저 사람 집에 갔더니 프라모델이 한 가득인 거야.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과거에 그녀는 오타쿠들에 대해 상당한 혐오감을 드러낸 바 있었는데 그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싫어졌어? 내가 묻자 그녀는 냉큼 고개를 흔들었다.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꼬물꼬물 팔 한쪽을 만드는데, 귀엽더라고.”          



그 귀여운 남자와 결혼한 친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      



우리가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으나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대화 사이사이 남편과 시댁 얘기가 첨가된 느낌이랄까. 재미있는 부분도 답답한 부분도 있었으나 친구는 제법 잘 대처해나가는 듯 했다.          


      

친구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좋은 이모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외동딸이었고 자매간의 우애를 신기할 만큼 동경하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중학교 시절부터 근 이십년이 넘게 친구였으니 친자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이는 귀여웠고 내 친구의 아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종종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의 탄생도, 백일과 첫돌 맞이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친구는 내내 행복해 보였다.                



“온도, 너는 모르지."



친구의 언사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삶이란 모든 것이 달라밑바닥부터 완전하게 다르다고. 친구는 가끔 회한 섞인 목소리로 그런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의 부침이 그녀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임신출산육아의 사례들은 최악이었으므로 나는 되도록 그녀에게 맞춰주고 싶었다.           



“온도 네가 우리집으로 오는 게 어때? 알다시피 나는 나갈 수가 없잖아.”      


친구의 집 위치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 주택가 가장 끝까지 들어가야 했는데 편도로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나는 길을 잘 헤매는 체질이라 택시를 타려 해도 택시가 잘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하루는 그녀의 집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친구의 직장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 선물로 내복을 하나 샀으니 오늘이나 내일 갖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머, 언니, 여기 길이 얼마나 불편한데 우리집까지 와요. 내가 이따 나갈게. 차 끌고 나가면 십분이면 가요.”      


그녀는 동료의 퇴근 시간에 맞춰 인근 쇼핑몰로 나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름이 익숙해 물어보니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쇼핑몰이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고작 십 분을 운전해 나오는 방법도. 나는 약간 멍한 상태로, 그럼 나랑도 거기서 만나면 되겠네, 했다. 친구가 말했다.           



“퇴근하고 나면 얼마나 피곤한데. 너랑 직장인은 다르지.

“뭐가 다른데?”

“넌 시간 많잖아.”           



마침 낮잠에서 깬 아기가 우는 바람에 친구가 방으로 들어갔다. 아기를 다시 재울 셈인지 친구는 삼십분이 넘도록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친구 집 거실에 멍하니 앉아 낯선 이들의 생활상을 마음 없이 들여다봤다. 네게 프리랜서의 정의는 그런 것이었니. 따지고 싶은 마음이 문득 솟아올랐으나 가만히 말을 삼켰다.         


  




아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쥔 뒤 친구는 내게 어른의 역할을 하려 들곤 했다. 대단한 역할은 아니고 뭐랄까, 자신의 연륜을 강조해 잔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정도랄까. 나는 프리랜서 7년차였고 나름대로 생활이 정돈되어 간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궤도의 정점을 찍은 건 아니지만 이제야 비로소 궤도 위에 올라섰다는 느낌.      


정직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누구도 나를 어린 여자, 서툰 인간 취급하지 않고 

존칭을 붙여 프로로 대우해주는 느낌이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           



내가 새로 맺은 계약에 대해 얘기하던 중 친구가 말을 잘랐다. 단기계약이지만 조건도 급여도 상당했고 내 이름을 단독으로 박아 넣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 기획으로 유효한 커리어를 쌓은 선배를 나는 몇 명이고 알고 있었다. 나는 내심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런 나를 쳐다보는 친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너도 이제 자리 잡아야지.”

“이게 그 발판이 되어줄지도 몰라.”

“그런 거 말고, 답답아. 내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살아보니까 이제서 한 사람 몫을 온전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봐야 나중에 뭐가 남아? 결혼해서 남편이 서포트해주면 훨씬 안정적인 상태에서 일하게 될 텐데 그럼 그때 작업 퀄리티가 더 높아지지 않겠어?”      

“남편이 무슨 스폰서야, 부모야. 왜 말을 그렇게 해.”     


“옆에서 보기 답답해서 그래. 이십대 꽃청춘도 아니고 언제까지 꿈만 쫓으면서 살래? 너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까 세상에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더라. 요즘은 전에 멋있어 보이던 사람들이 다 철딱서니 없는 이상주의자 같아. 아니, 뭐,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거지. 막말로 너 좀 있으면 재처 자리밖에 남는 거 없어. 친구로서 너 보기 안타까워서 그래.           



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날만큼은 그녀가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 나왔다는 사실만이 위안이었다(그놈의 쇼핑몰 카페에서의 만남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녀에게서 서너 번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온전한 한 사람 몫이라. 그러니까 네 눈에 나는 철딱서니 없는 반푼이로 보였다는 소리구나. 내 노력이, 필사적으로 이끌어온 나의 삶이 너에게는. 나는 그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적어도 내 입으로 내 스스로를 부정하는, 그 따위 소리들을 뱉어내고 싶진 않았다.        


        




친구와 다시 만난 건 그녀의 생일이 있는 5월 마지막 주였다.     


앙금처럼 남아 있는 감정들을 나는 모른 척 꾹꾹 밟아 납작하게 뭉갰다. 그녀는 드물게 약속 장소를 내게 가까운 곳(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내 집의 중간 지점)으로 잡았다. 나는 일전에 그녀가 보내왔던 장문의 사과문을 떠올렸다. 그래, 그냥 묻어두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생일선물을 주문했다.           


“온도야, 미안. 우리 금요일에 만나기로 한 거 화요일로 바꾸자.”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약속이 좀 겹쳐서. 화요일 괜찮지?”          


화요일은 당장 다음날이었다. 친구가 다급히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싶어 나는 일정을 조정했다. 금요일로 약속을 잡은 건 목요일까지 마감인 작업이 있기 때문이었고, 나는 매일의 작업량을 세밀히 분배해놓는 타입이었다. 화요일로 약속을 바꾸려면 그 날 해당하는 작업을 밤새, 적어도 60퍼센트 정도는 완성해놔야 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조금 일찍 헤어져서 밤에 또 작업하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밤새 일한 뒤 친구를 만나러 갔다. 수면부족으로 눈이 뻑뻑해 렌즈조차 낄 수 없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친구가 없었다. 친구는 한 시간여가 지난 다음에야 카페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한테 애 맡기고 나온다는 게 늦어져서 말야. 일하고 있지 그랬어.”

“일?”

“너 원래 카페에서도 일하고 그러잖아? 프리랜서는 좋겠다. 아무 때 아무데서나 일할 수 있어서.”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 레스토랑으로 옮겨가자고 재촉했다. 프리랜서가 정말 프리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그렇게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걸까? 나는 자꾸 뒤처지는 걸음을 억지로 재촉했다. 친구가 나를 돌아보며 웃을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죄책감과 분노, 자기방어적인 공격성과 체념이 뒤섞인 이상한 기분이었다.      



친구가 고른 레스토랑은 SNS에서 핫하다는 브런치 전문점이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친구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접시를 놓아주거나 뒤쪽의 화려한 배경이 잘 잡히도록 신경 쓰며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애 키우느라 내가 아무것도 못해. 친구는 틈틈이 한탄했다. 나는 충혈되어 쓰린 눈에 인공눈물을 집어넣었다.           



“근데 금요일엔 무슨 일이야? 시댁에라도 가는 거야?”

“아니? 시댁엘 왜 가?”

“갑자기 약속 바꾸길래 중요한 일이 있나 했지.”

“아. 대학 때 동아리 애가 금요일에 보자고 해서.”     


나는 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내가 선약인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친구가 얼른 맞받아쳤다.           

“걔는 출근하잖아. 금요일밖에 시간이 안 된다는 데 어떡해. 너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으니까 시간 조정하기 편하잖아.

“너는, 내가 노는 것 같아?”

“에이, 뭘 그렇게 정색을 해.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응?”          



입에 든 프렌치토스트가 소태처럼 썼다. 친구는 채끝스테이크와 리코타치즈 샐러드를 빠르게 씹으며 화제를 돌렸다. 내가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몸도 온전치 못한데 애는 너무 활기차고. 엄마한테 맡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오늘도 봐봐, 약속시간도 못 맞출 정도로 내가 아주 정신이 없다니까. 한참을 하소연하던 친구가 그래서 이번 일 끝나면 너는 뭘 해? 라고 물었다.      



“좀 쉬어야지. 다음 작업 준비도 하고.”

“그럼 시간 널널하겠네. 야, 그럼 잘됐다.”     



친구가 테이블에 상체를 바짝 붙였다. 시야 안으로 쑥 들어온 그녀의 얼굴이 아주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빛났다.                



“그럼 너 우리 애 좀 봐줘라.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내가 시급도 챙겨줄게. 어때, 괜찮지?”


            

내가 당시 그녀에게 쏟아냈던 말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상처 입히고 내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주는 소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들을 해야 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녀와의 인연인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서.      



하지만 마지막 말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조차 네 시간보단 소중해.”               



친구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너무 쉬워서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그녀에게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었다, 라는 것만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지금도 간혹 친구 같은 사람과 마주할 때가 있다.      



상대의 삶을 부정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사람. 이를테면 ‘너는 비혼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결혼에 실패했을 뿐이고, 결혼생활도 사회생활도 인류의 재생산도 경험해보지 못한 너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라고 무조건적인 비난을 일삼는 사람.      


자신의 고난과 불행만이 제일인 사람. 그러니까 ‘너 고작 그걸 가지고 힘들다고 징징대면 어떡하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 직장에서 까이고 집안일에 치이고 육아에 집중해야 해서 하루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네가 어디 힘들다는 말을 해’라고 우겨대는 사람.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는다. 그들을 대하며 스트레스 받고 고뇌할 시간에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내가 선택한 나만의 시간이며, 그것을 침해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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