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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Feb 04. 2020

어떤 절연은 필연이다

슬기로운 이별생활(3)

슬기로운 이별생활

(3) 어떤 절연은 필연이다               





인상 좋은 강사가 있었다. 젊고 강의에 열정적이고 전공 분야에 대한 적절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강의하는 내내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열렬히 고백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가 불안정한 계약에 묶인 시간 강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전임교수보다도 그를 아꼈다.      


추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를 의심하기보다 의아해했다.      


추문의 근거는 쉽게 짐작이 갔다. 그는 전공 관련 실무자였고 전임교수들보다 진입장벽이 낮았다. 강의가 끝난 뒤엔 교단에 선배고 후배고 까만 머리통들이 조랑조랑 매달리곤 했다. 혹자는 그에게 취업관련 정보를 얻고 싶어 했고 혹자는 슬럼프 극복을 위한 조언을 얻고자 했다. 개중에는 사적인 호감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젊은 강사에게는 연구실이 없었으므로 학생과 상담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강사는 처음엔 학교 건물에 위치한 카페테리아를, 이후에는 학교 근처 스터디카페를 상담실로 이용했다. 찾아갈 연구실이 없었으므로 강사는 자신의 메신저아이디와 핸드폰번호를 학생들에게 일러주었다. 강사는 우리에게 멘토였으나 제3자가 보기에 그는,           



학생들과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고 
허가된 교육장소에서 벗어나 학생들과의 사적인 만남을 일삼는
파렴치한이었다.           




소문은 무성했다. 그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얘기부터 지위를 빌미로 그를 스토킹했다는 얘기, 그에게 기형적인 집착을 보이던 학생이 구애를 거절당하자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는 얘기가 동시에 돌았다. 어느 쪽도 가능할 것 같았고 어느 쪽도 믿고 싶지 않았다.      


강사는 다음 학기 재계약에 실패했다.      


강사가 그만둔 자리엔 전임교수의 직속제자가 들어섰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그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질문조차 벽을 치고 차단했다. 문의사항은 강의 공식게시판에 올려주세요. 강의가 끝나면 그는 도망치듯 강의실을 나섰고, 강의가 종료될 때까지 우리 중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새로운 강사가 온 뒤 돌았던 소문이 하나 더 있다. 전임교수가 강의평가에서 지나치게 좋은 점수를 받는 강사를 내내 못마땅해 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강사는 평가 최고점을 받아 전임교수들을 제치고 최우수교수총장상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강사에 대한 열등감과 자신의 제자에게 강의를 주려는 전임교수의 욕심이 그의 계약종료를 이끌어냈다는 소문이었다.      


     

어느 쪽이 진실이었든, 소문 모두가 거짓 혹은 진실이었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피해자가 생겼다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우리.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었다.



  

           






어떤 일은 소문이 아니라 실제이기도 하다.      


필수전공 강의 교수는 스펙이 화려했다. 프랑스에서 관련 학위를 받았고 이십여 년을 프랑스에 머물다 최근 한국으로 넘어온 사람이었다. 전임교수는 강사 직위이긴 하지만 ‘미래를 보고 어렵게 모셔왔’으니 절대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교수로 깍듯이 대하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숙제처럼 그의 강의를 신청했다.     

 

그의 강의는 별 것 없었다. 말 그대로 진짜 남는 것이 없는 강의였다.           



그는 교재를 몇 줄 읽은 뒤(그마저도 그의 저서였다) 돌연 프랑스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지역 어느 좌표에 자신의 영혼을 묻었으며 얼마나 많은 그곳의 여인들이 자신을 사랑했는지,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세 시간씩 심취해 떠들어댔다. 수강생들은 주섬주섬 뒷문을 열고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나간 채로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뭐든 상관없다는 듯 그는 추억 속 여인들의 이름을 읊기 바빴다.      



기말고사를 치를 때 그는 기묘한 당부를 하나 했다. 시험과 성적 관련 확인할 사항이 생길지 모르니 시험지 상단 이름 옆에 꼭 전화번호를 적어두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후에 생길 어떤 부당한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모를 협박과 함께였다. 우리는 시험장을 나오며 수군거렸다. 이것은 정말 ‘요구’이고 ‘협박’이지 않은가. 전화번호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과 1학년 부대표인 여학생과 나에게였다.           



부대표에게 전화를 건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성적에 관련된 중요한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도와주지 않으면 성적이 나갈 수 없다고, 당장 내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그가 말한 역으로 갔다. 그는 두꺼운 코트에 빵떡 모자를 쓰고 역 앞에 서 있었다. 맞은편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저기가 내 사무실이야. 올라가자.”      



내심 의심스러웠으므로 나는 거절했다. 교수님 개인공간에 들어가는 건 어려워요. 제가 도와드릴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으니 과 조교에게 연락해드릴게요.내 말에  그는 한사코 손을 젓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다음으로 가리킨 곳은 상가건물에 즐비한 PC방 중 한 곳이었다.       


    

나는 교수와 나란히 앉아, 불편한 마음으로 성적을 입력했다. 정말 일 때문이었나? 그가 서류가방에서 출석부와 서류들을 꺼내 펼쳐놓기 시작하자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임하는 사람들이 흘금대는 가운데 그가 입력해야 할 성적을 불렀고, 나는 입력했다. 입력이 끝나갈 즈음 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그저 마우스를 클릭해 성적을 입력할 뿐인 이 일이 반드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고?      


십오 분 만에 입력은 끝났다. 그가 ‘몹시 고생을 하였으니’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입력한 것은 다른 대학의 학부생들 점수였다. 입력 중간에 그는 이런 말들을 했다.           



“이동훈 C+. 어? 잠깐만 가만 있어봐. 얘가 씨뿔이라고? 강의 열심히 듣는 놈인데 시험을 못 봤구만. B로 해, B+로.”

“그럼 성적비율이 안 맞는데요.”

“그래? 그럼, 어디 보자. 이 놈, 이 놈 이거 싸가지 없는 놈이 A네. 시험만 잘 보면 뭐해 싸가지가 없는데. 이놈을 씨뿔로 해. 그럼 되지?”           



나는 그가 시험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성적을 뒤바꾸는 걸 막 목격한 참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테이블의 퓨전일식집에서 그는 내게 묻지도 않고 초밥세트와 대구탕정식을 시키더니 음식이 나오자 내 앞에 대뜸 초밥을 내밀며 말했다.           


“아가씨들은 초밥을 먹지.”



나는 그에게 접시를 밀고 대구탕을 끌어왔다. 아뇨, 전 비린 거 안 먹어요. 대구탕을 뒤적이는 나를 그가 불만스럽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가씨들이 입가에 벌건 거 묻히고 먹는 거, 그거 별론데.”



아가씨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그와 만난 건 낮이었지만 한겨울이었으므로 식당을 나섰을 땐 햇빛이 한껏 기울어지고 있었다.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역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그가 앞장섰다. 그러더니 이내 되돌아와 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봐봐, 우리가 이렇게 손을 꽉 잡고 걸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연인으로 볼까 다른 관계로 볼까? 우리가 이렇게 깍지를 끼고 걸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연인으로 볼까? 여기서 너랑 내가 키스를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아빠와 딸로 볼 텐데요.”     


내가 말했고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나는 스무살이었고 그는 오십이 다 된 나이였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노여움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도 그는 내가 손을 빼려는 걸 용납지 않았다. 그는 역사에 있는 노점상으로 가더니 굵고 흰 털실로 짠 목도리와 장갑을 샀다. 나를 마주 세운 그가 내 목에 목도리를 두 번, 세 번 감았다. 돌아가는 동안 내가 너를 감고 따뜻하게 해주는 거야, 뭐 그런 식의 헛소리를 지껄이며.           


나는 지하철 승강장에 내려가자마자 목도리를 풀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옆 사람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으나 나는 모멸감 때문에 속이 비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왜 그의 눈앞에서 이걸 내던지지 못했나. 왜 뒤돌아 나온 다음에야 몰래 이걸 버리고 있나. 몇 수저 먹지도 않은 대구탕이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 뒤 성적이 공표되었다. 강의에서  A+을 받은 이는 나와 부대표 여학생밖에 없었다. 사실 그 강의를, 매 시간 뛰쳐나가지 않고 앞자리에서 들은 이는 부대표와 나를 포함한 너덧 명 뿐이었다. 시험지를 마지막까지 작성한 사람은 소수였고 나는 그의 교재를 통째로 외워 시험을 치렀으니 그것은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점수였으나,          



나는 부끄러웠다.           



우리가 각자 받은 성적을 공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학생회를 주축으로 우리는 강의와 관련된 기나긴 설문 조사지를 작성했다.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수강생 설문조사 결과지를 들고 학과장을 찾아갔다. 학생들이 증명한 그의 무능과 강의내용의 저속함을 고발하는 자료였다.      


형편없는 강의평가점수와 학생들의 직접적인 항의를 받아들여 그의 재계약은 불발되었다. 그를 ‘어렵게 모셔왔’던 전임교수가 학생회장을 불러다 욕을 퍼부었다는 말이 들렸으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었다.             


   

             





이후에 나는 나를 아가씨라 불렀던 그 교수를 한 번 더 본 적이 있다.      


시사프로그램이었고, 거기에 빵떡모자를 쓴 그가 어느어느 학교 교수, 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문가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이 화면에 올라오자마자 나는 비명을 질렀다. 힘주어 깍지 끼던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목을 조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 때 그를 분명하게 잘라냈어야 했는데.           



학생회에서 나서 강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그의 재임용을 막았을 때,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손 안 대고 코 풀었다는 무책임한 안도감도 들었다. 이미 잘렸으니, 라는 생각에 나는 내게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그는 두 차례 더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서둘러 번호를 차단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일상에서 그를 끊어냈을지언정 미래의 학생들에게서 그를 끊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그의 부적절한 언행을 공론화했다면 적어도 그는          



더 이상 어떤 학생도 ‘아가씨’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초밥을 삼키려 동그랗게 벌어지는 아가씨 입이 섹시하다 같은 헛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드시 끊어내야 할 인연은 도처에 있다.
어떤 절연은 필연이다. 
그리고 필연적인 절연은 미래와 타인의 안전까지 고민한 형태의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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